숲 속의 단상(斷想)

-부석사를 놓치고, 백두대간길만 걷다가...(영주 선달산)

천지현황1 2010. 9. 6. 16:03

-부석사를 놓치고, 백두대간길만 걷다가...(영주 선달산)

 

* 2010.09.05 / 오전약수(10:50)-박달령-1245봉-선달산-늦은목이-생달마을(16:30) 13km...5시간40분

 

부석사를 놓치고 백두대간길만 걷다가 돌아온 날의 허전함은 허퉁시럽다.영주 부석사하면 떠오르는 잔상이 하나 있다.20여년 전 경북 내륙지방으로 가족여행을 하다 부석사를 갔던 늦은 여름이다.하안거를 마친 젊은 스님 한 분이 밀집모자에 바랑을 걸러맨채 길을 가는 모습이다.(그 때 스님은 시골 가게에서 아이스케키를 사들고 나와 더위를 잊으려 한 입 베어 물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도를 구하러 또 어디로 길을 떠나고 있는걸까.그 모습은 가끔 부석사를 오갈 때나 책에서 부석사를 대 할 때마다 어김없이 잔상으로 떠 오른다.그의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니었을까? 나는 마음 한 구석에 늘 부석사를 품고 있었다.그리고 안양루에 비켜 서서 부석사 무량수전을 응시하는 잔상이 하나 더 붙여저 있는 채로.

 

 선달산은 부석사를 품고 있는 산이다. 하산 길에 부석사를 둘러 보는 계획이 잡혀있었다. 추석이 가까워서인지 벌초객들과 이른 성묘객들로 인하여 고속도로는 정체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다가 고속도로를 빠저나와 국도를 탄다.결국 들머리 오전약수에 계획보다 30여분 늦게 산객을 토해 놓는다. 그래도 A팀은 에정대로 박달령에 올라 백두대간 길을 걷다가 선달산에서 부석사로 하산하기로 하고 약수한 잔을 마시고 입산한다. B팀은 생달마을로 해서 지름길을 택하기로 한 탓에 오전약수터에서 일행은 선달산 정상행사를 미리 치른다. 오늘 회갑을 맞는 최ㅇㅇ님의 선창으로 "대한민국 만세,선달산 만세,오륜산악회만세!"를 부른다. 이 구호는 20여년 동안 우리 산악회에서 내려오는 정상행사 구호다. 그런데 산 정상이 아닌 들머리에서 정상행사를 치르기는 내가 회원으로 입회한 후로는 처음인 듯 싶다. 그리곤 우린 각각 헤어저 약수터를 떠났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산 길에 오르자 얼굴에 잔뜩 해학스런 웃음을 머금은 장승 둘이 거시기를 내 놓고 누구 것이 더 큰지 뽐내고 있다. 앞 서가던 여성산님 둘이 이를 훔쳐보며 쑥스럽게 웃는 옆 얼굴이 시야에 잡힌다. 우리 민족의 해학을 어느 민족이 따르랴. 전국을 다니다보면 이런 멋스런 장승을 많이 만난다. 그러나 오전약수터에서 만난 이 장승이 가장 멋있는 장승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산 길에 접어든다. 그들은 '오전약수터'를 지키는 이 마을의 수호꾼이다.나도 10년만 젊다면 그들옆에 발가벗은 채로 서 있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마 내가 그들 옆에 서 있는다면 멋진 그림은 영락없이 파괴될 것이다.   

 

                                                                                                                            

 

 

 

  한시간쯤 오름길에 숨을 헐떡인다. 햇살이 나무 이파리 사이로 삐죽이 얼굴을 내밀 땐 바람도 박달령을 넘다가 숨는다. 산 능선길을 두고 갈지로 난 오솔길은 여느 산에 비해 덜 가파르다. 낙엽이 쌓여 부토가 된 자리엔 융단을 밟는 기분이 든다. 일행이 드디어 임도를 만나고 그곳엔 정자와 함께 박달령 표시석이 서있다. 아직 12시 전이나 누군가 정자에서 도시락을 까 먹자는 제안에 비실비실 주저 앉기에 바쁘다. 아직도 늦 여름 날씨탓에 지쳐보인다. 최선배가 내민 서울막걸리가 동나기전에 한 잔 받아 마시고 갈증을 푼다.그리고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앉아 도시락을 까먹기에 바쁘다.

 

 박달령에서부터 선달산까지는 5km로 백두대간길이다.길은 순하다.가끔 오르내리막이 있지만 아내가 힘들어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선 순한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중에 아내는 실토한다. 일행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다 했다는 고백을 듣는다. 그녀는 아직도 산타기 연습중이다.아직은 초가을이라고 하지만 여름의 끝자락이라 더운 날씨탓에 비지땀을 훔친다. 선달산정상에서 B팀 조대장으로부터 늦은목이에서 부석사로 내리는 길을 통제해 다시 생달로 원점회귀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는다.송이채취를 할까봐 통제를 하는 모양이다.우리 일행은 늦은목이까지 하산해서 의견을 조율한다. 부석사로 하산할 것인지,아니면 생달마을로 하산할 것인지를. 통제하는 사람은 없으나,예정시각을 훨씬 넘기고 있어 B팀과 합류하기위해 부석사로 내림길을 취소한다. 생달로 내리는 길에 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있던가. 삼삼오오 떼를 지어 계곡물에 뛰어든다. 여름산행에 알탕하는 맛이라니. 여름산행이 즐거운 또 하나의 이유다.예정보다 늦어 부석사 둘러보는 것을  취소하고 상경길에 오른다.어디메쯤 왔을까? 아직도 영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길은 사방팔방으로 뚫려 있는데도 차도는 막힌다. 늦은 김에 쉬어간다. 장호원 '나의 살던 고향은' 오리백숙집에서 뒤풀이를 하고 자동차 후미등을 따라 서울에 도착하니 밤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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