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꾸러기와 1촌맺기
"떡갈나무잎도 그런대로 먹을만 하겠군".딱정벌레목의 콩풍뎅이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습니다.콩풍뎅이는 주로 콩과식물에 무리지어 모여드는데 주위를 돌아봐도 콩과식물은 눈에 띄질 않습니다.아직 여름꽃의 개화가 드문 시절입니다.대부분의 곤충들은 전형적으로 꽃가루를 먹는 동물입니다.때로는 꽃잎이나 다른 부분을 먹어 치우기도 하지요.6월 숲 속 큰꽃으아리의 큼지막하면서도 소담스럽게 핀 꽃받침 위에는 어김없이 딱정벌레목의 갑충이 앉아 있습니다.이들은 잘 날지 못하기 때문에 잎이 넓은 식물을 찾아갑니다.해가 늬웃늬웃 서산마루에 걸려 넘기기 힘든지 잠시 멈추어 섰습니다.랜턴을 준비한 채 청강생 한 사람과 함께 검단산을 오르다 떡갈나무잎 밥상을 들여다 봅니다.
듬성듬성 뜯어먹다 놓아둔 이파리가 많이 보입니다.그런데 유난히 이 이파리는 달콤했는지 뜯긴 자국이 많습니다.보통 진딧물이나 애벌레,왕거위벌레들이 좋아하는 먹잇감들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먹는 과정에서 나무가 아파서 방어물질을 내 보내기 때문인지 한 잎 전체를 다 먹지 않고 다른 잎으로 옮기나봅니다."하기사 다 먹어치우다 보면 나뭇잎 그림이 이상하겠군.역시 디자인도 생각하나봐".혼자 생각을 날립니다.
콩풍뎅이 몇 마리가 떡갈나무잎에 앉아 있습니다.아마 그들이 떡갈나무잎을 뜯어먹은 것인지 아니면 날다가 지쳐서 이 떡갈나무 잎에서 휴식하는지 자세히 관찰해 보지 않아 뭐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옆에 상수리나무잎은 멀쩡합니다.아마 떡갈나무잎보다 맛이 없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그러고보니 온통 떡갈나무잎이 곤충의 밥상 흔적이 역력합니다.
문헌을 조사해보니 멧팔랑나비 Erynnis montanus BREMER가 이른 봄에 야산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나비로 3월 말에서 5월 중순에 걸쳐 연 1회 나타난다고 합니다. 암컷은 앞날개의 표면 중앙에 띠무늬가 있고 앞날개의 뒷면에 노랑색의 무늬가 크게 있어 암수가 쉽게 구별됩니다.주로 야산의 잡목림에서 살며 진달래, 민들레, 제비꽃, 나무딸기 등의 꽃에서 물을 즐겨 먹는답니다.쉴 때는 낙엽이나 잔 나뭇가지, 길바닥 등에 앉으며 알을 떡갈나무의 어린 잎 밑에 1개씩 낳습니다.우리나라 전역과 제주도, 일본, 중국, 아무르 등에 분포하고 있습니다.(남상호,<한국의 곤충>에서 인용)그렇다면 이 떡갈나무 잎 밥상은 멧팔랑나비의 애벌레가 받은 밥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보니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관찰의 대상입니다.섬초롱꽃도 초롱을 닫고 휴식에 들어갔습니다.금낭화도 시절을 넘기고서도 낙화를 미룹니다.산딸기 세 알 중 두개를 따서 아내와 하나씩 나눠먹습니다.나머지 하나는 까치밥 남기듯 남겨 두었습니다.사람이 먹든 새가 먹든 벌레가 먹든 숲꾸러기 가족이 먹을 것입니다.숲꾸러기 가족들의 밥상을 앗아 먹은 것 같아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참으로 으아하고 기특한 생각까지 드니 나도 이제 꾸러기가족이 다 된 듯 합니다.늦게나마 철이 드는 게지요.무심코 지나친 길목엔 연리목이 서 있군요.늘 지나다니던 길목인데 왜 오늘에서야 눈에 띄었을까요?꿀풀도 키를 낯추고 길손을 올려다 봅니다.존경의 뜻을 담았나봐?착각인 듯 합니다.길손도 하심의 자세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넵니다.
며칠 전 부터 숲 공부를 시작했습니다.숲 속 가족들을 초대해서 숲꾸러기라고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그리고 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아니 내가 입양갔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그러자 길가에 핀 들꽃과 나무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습니다.숲 속 나무와 들풀과도 1촌맺기를 시작한 셈입니다.모든 것이 새롭습니다.숲꾸러기들은 나와 1촌맺기를 한 후 앞 다투어 악수하자고 달려듭니다.마치 내가 유명인사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착각은 자윱니다.사실 내가 그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습니다."나,숲 늦깎기,천지현황일세,그리고 이쪽은 청강생인 아내이고","어이,꾸러기님,당신 성함은 뭐래요?" 숲꾸러기와의 소통이 인간세계에서의 소통보다 훨씬 재밌습니다.그들은 천진난만한 성품으로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뿐,배신이나 배반을 모릅니다.또한 서로 헐뜯지도 않습니다.좀 넓게 살겠다고 지위를 이용하여 탐욕을 부리지도 않습니다.오손도손 조화롭게 살아갑니다.부정,부패도 저지를 줄도 모릅니다.지위가 높다고 거만하지도 않습니다.키가 크면 큰 대로,작으면 작은 대로 우애합니다.반값 등록금 데모에도 동참하지 않습니다.그들은 무상교육이 가능한지,학교 구조조정이 먼저인지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는 것 같습니다.오직 겸손과 존중의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숲 속에서의 시간은 왜 이토록 빨리 지나가는지 허기를 느낍니다.숲 속 어디메 쯤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어둠이 빛을 서서이 밀어내고 있군요.숲꾸러기들도 달콤한 휴식시간을 가질 시간입니다.성철스님보다 더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고고하고 기품있게 서 있는 저 나무는 누굴까? 아직 나와 통성명을 못했습니다,그저 바라만 볼 뿐.계속해서 하루에 숲꾸러기 한 가족 만이라도 1촌맺기를 해 가는 것이 꿈입니다.야무진 꿈이지요.그러다가 '숲통령이 되겠다구요".천만에요,그저 그들과 서로 존중하는 숲꾸러기 친구사이가 되고 싶을 따름입니다.나무와 들꽃들이 두런두런 얘기하며 소통하는 숲 속 세상,그 곳에 가면 한 껏 기분이 좋아진 나 자신을 만납니다.
* 성철스님옷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나무는 '물박달나무'로 나중에 판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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