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라이프,그것 별것 아니네 (원덕 추읍산)
슬로우,슬로우 / 퀵~퀵.춤 스탭이 아니다.내 생활습관이다.이젠 한 숨 돌리며 살자고 그렇게 마음 속으로 다짐하건만,습관은 이를 용납치 않는다.빠듯하게 일정관리를 하고 짜투리 시간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늘 고민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내 수첩엔 두 세달 앞 일정표로 빼곡하다.아내는 이런 내 성격과 습관 탓에 숨이 턱턱 막힌다고 언젠가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그러나 내 생활은 한 치의 빈 틈도 없다.내가 생각해도 주위 사람들이 숨이 막힐 만 하다.이젠 내려놓아야 한다.욕심도,욕망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그리고 일정도 모두 공란으로 비워놓아야 한다.
처음으로 느긋하게 아침을 열었다.어제 여수 여행에서 돌아와 손주와 놀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그런데 사정이 변해 어젯 밤 늦게 계획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편안한 잠자리가 숙면을 유도한다.오늘 하루는 완전히 비어 있다.오랫만에 맞는 홀가분한 휴일이다.아내에게 물었다."금병산에 갈까?'",무릎이 아파 싫단다.다시 권했다."우리 도시락 싸서 아주 천천히 원족가자".드디어 '오키'사인이 났다.
팔당역 주차장에 차를 댔다.방금 기차가 지나간다.30여분을 광장에 앉아 아무 하는 일 없이 빈둥댄다.아내는 카드를 가지고 오지 않아 '김유정역'까지 승차권을 1매 샀다.그리고 우린 용문행 열차를 탔다.열차는 만원이다.산객으로 꽉 차 있다.게다가 노약자석 부근에 할머니 7-8분이 바닥에 신문을 깔고 아예 진을 치고 계신다.그 분들을 보니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났다.옆에 서 계시는 할머니 한 분에게 말을 걸었다."친구분들하고 어디 좋은 데 소풍가시나봐요"."예,양평가요.오늘이 양평 장날이거든요".할머니 연세를 여쭸다.83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참 정정하셔 보기 좋습니다.건강하시고 이렇게 친구 분들이랑 놀러다시니 100수 하시겠어요." " 아이,백수는 무슨 백수,얼른 가야지요".거짖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내친 김에 취재를 계속했다."할아버지께서는...","아휴,영감 살아계시면 이렇게 못다녀요.뒤치닥거리해야지요".재밌는 대답이 돌아왔다.옆에서 아내가 빙그레 웃는다."용돈은 누가 주나요?","딸하고 손주딸이 줘요,며느리는 안 줘", 하하하,역시 고부 갈등이 있는 건지,아니면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고 웃어 넘긴다.
그러는 사이 양평역에 도착하여 할머니 일행과는 즐겁게 보내시라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잠시 우리의 미래를 들여다보았다.원덕을 지나고 용문에 도착하자 모든 승객이 다 내린다.청소하는 아줌마들이 탑승하여 비질을 해댄다.그 때 까지만 해도 우린 김유정역이 지금 이 방향으로 계속 가는 줄 알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승무원이 지나가며 왜 내리지 않느냐는 물음에 '아~김유정역은 경춘선인데 차를 잘 못 탄 걸 알았다'.
아내는 되돌아가 팔당에서 예봉산이나 가자고 한다.다시 되돌아가는 열차를 타고 가다 다음 역인 원덕에서 용수철처럼 아내의 손을 잡고 좌석에서 일어났다.아까 원덕에서 추읍산 간다고 한 그룹이 내렸던 것이 생각나 우리도 추읍산이나 가자고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리고,가장 느린 걸음으로 역사를 빠져나가 마을 길을 돌아 들꽃 구경을 하며 들머리를 찾아간다. 가는 길에 큰금계국 노란 꽃이 무리져 피어있고,끈끈이대나물이 빨간 꽃을 머리에 이고 여기저기 피어 있다.개망초도 이제 막 피기 시작하여 들판을 수놓기 시작한다.애기달맞이꽃처럼 생긴 꽃이 벌써 피어난건지,연노랑꽃을 달고 서 있고,개울가엔 지느러미엉겅퀴가 빨간 꽃수술을 달고 몸체엔 가시를 듬뿍 달고 서있다.땡볕을 가다서다 반복하며 들꽃에 취한다.드디어 들머리에 도착해서야 숲 그늘막을 만난다.이젠 가장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숲 속 여행을 시작한다.
쪽동백나무,물푸레나무가 잎을 크게 키우고 광합성에 열중이다.다래는 갈기갈기 일어난 수피를 달고 다른 나무를 휘 감고 올라 가 햐얀 예쁜 꽃을 달고 맵씨를 자랑한다.둥굴레가족은 가끔 동물들의 피해를 많이 입었나보다.뿌리 째 뽑혀 내딩굴고 가끔 누워 있기도하다.가끔 제비꽃 가족이 이젠 꽃을 다 떠나보내고 줄기를 키우고 잎도 크게 키웠다.산뽕나무가 오디를 달고 서 있길래 우린 오르던 발걸음을 멈추고 자연식을 즐긴다.산벚나무는 아직 파란 열매를 달고 있다.벚찌가 아직 익지 않아 입맛을 볼려면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다.지그재그 산길을 돌아 정상에 섰다.가장 느린 걸음으로 시간 구애 없이 오랜만에 즐긴 입산인 듯 하다.정상 인증샷을 남기고 부근 숲 속에서 도시락을 까먹는다.아내 몰래 숨겨 온 반주 한 잔과 함께 맑은 숲향을 마신다.계획에도 없던 산행지,추읍산은 우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앞으로는 이런 산행 또는 발길따라 가는 여행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긴 산길을 조심조심 내린다. (120603)
큰금계국
기린초
끈끈이대나물
지느러미엉겅퀴
솔나물
가새잎개머루
다래
으아리꽃 ↑↓
여름잠이 꿀맛이야...
매화말발도리도 열매를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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