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여름 장마는 예년에 비해 많이 빨랐습니다.서울에도 내리 2주간 거의 비를 뿌렸지요.간간이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지만 장마엔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송죽회 부부 봄 나들이가 이런 저런 이유로 한 달 넘게 미루어져 오늘에야 모임을 갖습니다.1박2일 계획으로 강원도 평창에 있는 휘닉스파크로 모여듭니다.내일은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가 있으나 더 이상 일정 변경을 하지 않고 강행합니다.가는 길에 아내와 함께 청태산에 들기 위해 이른 출발을 합니다.오늘은 비가 오지 않고 흐리나,간혹 햇볕이 살을 그을릴듯합니다.그러나 숲에 들자 시원하네요.여기 저기서 숲꾸러기들이 반깁니다.층층나무도 꽃이 지고 열매만 다닥다닥 달렸습니다.이곳은 북쪽이라서인지 함박나무꽃도 피고 지고 생사를 넘나듭니다.나뭇잎이 꼭 튤립을 닮은 튤립나무가 친구하자고 청합니다.튤립나무는 정명이 백합나무로 바뀌었습니다.서둘러 기쁜 마음으로 1촌맺기를 합니다.들풀들은 목을 내밀고 입을 삐죽댑니다.'나무만 보이고 우리 들풀은 보이지 않느냐'고 성홥니다.얼른 허리를 굽힙니다.'그럴리가 있는가'.하심(下心)의 자세를 취합니다.씀바귀 한 친구를 만납니다.노랑선씀바귀에 익숙하다가 흰 꽃을 봅니다.이 친구가 바로 그 '흰씀바귀'입니다.귀한 손님입니다.돌양지꽃이 수풀 속에서 방긋방긋 인사를 해댑니다.그러나 도무지 그 꽃이 그 꽃 같고 이름이 헷갈립니다.들풀도감을 들이대고서야 '돌양지'라는 이름을 확인합니다.
숲은 청량합니다.이름도 청태산 아닌가요?휴양림에도 많은 캠핑족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하여 나무데크 위에다 텐트를 치기 시작하네요.젊은 날 우리가 친 텐트는 오두막이었습니다.요즘 텐트는 호화주택입니다.도시인들이 주말을 맞아 숲으로 이사와 휴식과 사색으로 하루 이틀을 지낸다면 오죽 좋겠습니까?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풍깁니다.고기 한 점에 술 한 잔이 생각납니다.그러나 꾹 참습니다.지금은 숲꾸러기들에게 열중해야 할 때입니다.저녁에 평창 휘닉스파크에서 송죽회 부부들과 회포를 풀 터이니 꾹 참고 다시 산을 오릅니다.
시계를 들여다봅니다.청태산 정상이 탐이 납니다.시간을 얼추 계산해보니 정상을 다녀와도 그리 늦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그런데 숲꾸러기들이 발목을 잡아 당깁니다.하는 수 없이 두마리 토끼를 잡기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습니다.글렀습니다.7부 능선에서 발길을 돌립니다.한 달 전부터 숲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산행 방법이 바뀌었습니다.이전에는 산행을 울트라마라톤 하는 식으로 다녔습니다.그러다가 조금 속도를 늦추긴 했지만 그래도 걷고 보면 시속 2-2.5km의 산행 속도였습니다.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속도가 시속 500m로 서행입니다.참으로 놀랄만한 변홥니다.시속 500m의 속도에서만이 오감이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이런 세상을 알기까지 60년이 걸렸다는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늦은 통찰입니다.청태산 언저리에서 숲을 만나고 후일을 기약하며 약속장소로 길을 재촉합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주고받는 한 잔 술에 진한 우정을 타 마십니다.하늘이 내린 음식,불의 속성을 지닌 물,어떻게 정의 하던 좋습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40 여년을 줄기차게 이 음식을 즐겼습니다.자리를 옮깁니다.우리도 필남필부입니다.장삼이사이지요.대국민화합방,노래연습실에 갑니다.단연 꾀꼬리부부가 대중을 휘어 잡습니다.두 번이나 결석했던 장여사도 노래 번호를 예약하는 모습이 눈에 잡힙니다.모두가 '나는 가수다' 흉내를 냅니다.다음날 비는 주룩주룩 내립니다.그래도 계획대로 월정사 전나무숲으로 달립니다.잠시 비가 소강 상태여서 걷기에 좋습니다.여섯 부부가 전세를 낸 듯 길은 고요하고 적막합니다.숲길을 걷고 난 후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탄허스님의 글 ''향상일로(向上一路)'의 경구를 만납니다.위로 향하는 외길은 절대의 진리에 이르는 외길을 뜻하는 말이지요.1400년된 고찰, 월정사는 비를 맞으며 지나 온 과거를 토해내고 있습니다.우린 경건한 마음으로 단도리를 합니다.충만한 자연의 기운을 마음껏 받고 속세로 발길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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