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를 위한 49재 이야기
지난 주말에 법정 스님이 10년 전쯤 쓴 수필집을 읽다가 다람쥐를 위한 49재 이야기를 읽고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스님은 1980년대 중반쯤 오대산 지장암에서 일어난 실화를 소개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이 조금은 꾸민 얘기처럼 소설 같다.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우리는 곧 잘 다람쥐가 먹이 찾아 참나무를 오르내리는 광경을 목격한다. 가을이 되면 겨울 양식을 준비하느라고 도토리며 밤을 입에 불룩하게 물고 어디론지 바삐 움직이는 다람쥐를 볼 수 있다. 오대산 지장암에 살던 비구니 한사람도 이 광경을 목격한 모양이다. 다람쥐가 들어간 굴을 파 보니 거기에 도토리며 밤이 소두 한말 가량 모아져 있어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도토리묵을 해 먹을 요량으로 모두 파냈다.
문제는 그 다음날 일어났다. 스님이 아침에 일어나 섬돌에 벗어 논 신을 신으려는 순간 섬뜩한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다름 아닌 겨울 양식을 모두 뺏긴 다람쥐가 새끼들까지 데리고 나와 스님의 고무신을 물고 죽어 있었단다. 이에 충격을 받은 스님은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고무신짝을 물고 자결한 다람쥐 가족을 위하여 정성껏 49재를 지내 주었다는 소설 같은 실화를 소개하고 있다.
한낮 미물에 불과한 다람쥐 얘기는 내 뇌리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어렸을 적에 개미집을 장난삼아 부수었던 일, 나무에 올라가 새 둥지에서 알을 꺼내었던 일이 잘못된 행동으로 후회스럽다. 어린 시절 나는 재미 삼아 그랬지만 그 생명들은 나를 얼마나 원망하며 죽어갔을까? 요즘같이 만사가 형통하지 못 한 것이 알게 모르게 저지른 나의 과오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줄곧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업보를 괴로워하며 반성하였다. 다음 주말 검단산에 올라 갈 때 눈 덮인 정상에서 먹이를 찾는 조그만 노랑머리 방울새를 위하여 잊지 말고 모이를 준비해 가야겠다. 그리고 오대산 월정사에 서 너 번이나 갔었는데도 지장암엔 한번도 들르지 않았다. 꼭 한번 들러 다람쥐가 천도 되었는지 확인하고 싶다. (200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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