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구천동계곡은 33 비경을 품고 (덕유산 )

천지현황1 2005. 8. 2. 15:57
 -구천동계곡은 33 비경을 품고 (덕유산 )

               

--------------------------------------------------------------

* 2005.06.12 (일) / 40년 지기 6가족

*삼공리 매표소 (09:06)-인월담-비파담-백련사-향적봉 정상-설천봉-무주  리조트(15:10)

--------------------------------------------------------------

 나 지금이나 구천동계곡 길에 들어서면 울울창창한 숲길과 ‘돌돌돌’ 돌 구르는  계곡 물소리는 이곳이 바로 선계(仙界)임을 말해준다. 마음을 씻지 않고는 이 길을 걸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아~’하는 탄성과 함께 폐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숨까지도 뱉어내고, 짙은 숲 향으로 대신 채운다.

 라제통문(羅濟通門)으로부터 백련사(白蓮寺)에 이르는 20여 km의 굽이치는 계곡 길은 심산유곡의 33비경을 감추고 나그네를 맞는다.  40년 지기 여섯 가족이 서울, 익산, 정읍 그리고 전주에서 모여들어 무주리조트 콘도에서 밤새도록 웃음꽃을  피우고, 늦은 아침식사를 마친다. 한 팀은 삼공리매표소를 들머리로 인월담과 안심대를 거쳐 백련사 천왕문을 통과 향적봉(덕유상봉, 1,614m)을 오른다. 나머지 한 팀은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으로 해서 향로봉에서 만나기로 한다.

  
 

  막 매표소를 통과하자 졸참나무, 까치박달, 야광나무가 섞여 숲 터널을 만들고 도열해 있다. 층층나무, 신갈나무, 산딸나무 그리고 물푸레나무도 얼굴을 내밀고 맑고 신선한 숲 향을 선사한다. 사자담, 구월담을 휘감아 쳐 내리는 계류는 백련사까지 5.5 km를 동행하며 하얀 포말을 만들어 내려 보내고, 계곡의 돌은 서서 물소리를 듣는다. 계곡이 깊어 수량도 풍족하다. 계류는 노래하고 나무들은 청중이 된다.

 오늘은 나그네도 심산유곡의 한 가족이 되어 풍류도인이 된 듯 하다. 이 선계를 노닐고 있으려니 잠시나마 모든 세속의 시름이 녹아난다. 안심대를 지나 구천동계곡의 28경인 구담폭포를 만난다. 2단 폭으로 물줄기를 휘감아 돌리며 흐르는 물줄기가 바위에 맞아 졸도를 하더니 이내 깨어나 돌돌거리며 노래를 계속한다. 

 

 산문에 들어선지 한 시간 반 남짓 지나 백련사 일주문을 만난다. 계단을 올라서니 천왕문이 절집 수문장을 맡고 있다. 향적봉을 머리에 이고 가부좌를 튼 채 다소곳이 앉아 있는 대웅전 법당에선 중년의 스님 한 분이 염불을 독송하고 있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발뒤꿈치를 들고 절 마당에 들어선다. 절집 약수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요사채 위 등로로 발길을 옮긴다. 

 여기서 향적봉 정상까진 2.5 km의 산길이다. 계단이 많아 오름길이 편안하지가 않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계단 길을 오른다. 구슬 같은 땀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른다. 숲 속 태양은 따가운 빛을 발산하지만, 머리위로 울창한 산림에 가려 빛이 조각나 있다.

 7부 오름길 쉼터에서 잠시 쉬는데 익산의 정카수가 나지막하게 노래 한 곡을 선사한다. 역시 언제 들어도 꾀꼬리 소릴 닮았다. 그러나 저 지난 겨울 내장산 까치봉에서 듣던 그녀의 예전 목소리보다는 조금 쇤 듯 하다. 세월이 흐른 탓인가, 아니면 어제 밤 과음 탓일까?   

    

  루한 계단길을 오르면 8부 능선에서부터 주목이 눈에 띈다. 구상나무는 빙하기의 역사를 간직한 화석나무라는데 최근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거의 고사되어 도태과정에 놓인 듯하다. ‘생천년, 사천년’한다는 주목나무와 키 작은 침엽수가 고산지대임을 말해준다. 태양 빛이 따갑다. 그러나 지대를 높일수록 바람 세기가 강하다. 

 향적봉 정상엔 산객으로 꽉 차있다. 우리 2진 팀도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을 거쳐 이미 도착해 있다.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기념사진박기에 분주하다. 정상에서 바라보니 중봉을 향한 오솔길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정상에 서니 지리산 천왕봉이 구름 속에 아스라이 가려 있고, 삿갓봉이 뾰족하게 삿갓을 쓰고 있다. 그 뒤에 남덕유산이 손에 잡힐 듯 그리 멀지 않게 조망된다. 일행을 따돌리고 능선길을 종주하고 싶은 욕망이 불처럼 일어나나 후일을 기약하는 수밖에.


   남서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대둔산과 가까이 적상산이 다가온다. 청명한 날씨 탓인지 조망이 좋다. 산님 중에 비구니 여성 두 분이 눈에 띈다. 아마 우리 2진 팀처럼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을 경유해서 향적봉 정상까지 온 듯 하다. 정상의 바람은 세서 여승의 밀짚모자를 날린다. 그걸 보고 나도 모자 끈을 동여맨다. 

 시장기가 들어 전을 펼만한 자릴 찾는다. 땡볕만 내려 쬐어 여성 가족 때문에 그늘을 찾아보지만 열명이 빙 둘러 앉을 만한 곳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설천봉 방향으로 내려와 숲 속에 먹자전을 편다. 컵라면과 찰밥이 금방 동이 난다. 어제 밤에 먹다 숨긴 소주 한 병의 인기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오솔길을 내려오니 설천봉 팔각정 상제루가 고풍스럽게 서있다. 설천봉 쉼터에서 마시는 산상의 생맥주 한잔의 맛이 폐부까지 시원하다. 땀은 이미 식고 바람은 세게 불어 배낭에서 윈드 자켓을 꺼내 입는다.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자는 사람, 곤도라를 타고 가자는 사람 의견이 분분하다. 땡볕이라 일행 모두 곤도라를 타고 하산한다. 

 40년 지기들이 헤어지기가 섭섭하여 구천동 심곡마을 계곡에 차를 세우고 도란도란 옛 이야기하며 탁족을 즐기니 30여분이 금방 지나간다. 무주읍 금강식당의 ‘어죽’맛이 일품이라고 하며 선도차가 계곡의 비경을 벗어나고, 우리도 비경을 뒤로하고 어죽 맛을 보러 선도차를 따른다. (2005.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