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프게 울어대는 백운대 까마귀 (삼각산 숨은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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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6.25 (토) / 나홀로
*효자비(08:20)-숨은벽 능선-바람골-대동샘-호랑이굴-백운대-염초 말바 위 앞-다시 백운대 아래 기암-여우굴-염초 1봉 직벽아래-북문-원효봉- 원효암-시구문(매표소)-미미가든-효자리(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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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에 “숨은 벽 구경시켜 줄께. 갈꺼야, 말꺼야”, “또 내일 검단산-용마산 종주 약속했다며”....... 꿈나라를 여행 중인 아내를 깨워 함께 숨은 벽을 가고자 애걸해 보지만( 지금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못가면 ‘숨은 벽’은 아내에겐 ‘들킨 벽’이 아닌 영원히 ‘숨은 벽’이 될 것이다)
시간만 낭비한다. 동행을 포기하고 몇 숫가락 뜨는 둥 마는 둥하고 배낭을 꾸려 이른 새벽 나홀로 올림픽공원역을 출발한다. 중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젠’의 <영혼의 산>을 읽다가 3호선 지하철 환승역인 종로3가를 놓치고 세 정거장을 회차하여 다시 3호선으로 환승한다. 지하철 3호선 ‘종로 3가’ 플래트 폼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액자에 걸어 놓은 한양대 정민 교수의 ‘공평’이란 제목의 글귀에 눈길을 주니 늘 주변을 정리하며 버리는 삶을 살고자하면서도 아직도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사는 ‘욕망의 나’를 다시 한번 반조하게 된다.
공 평
뿔이 있는 소는 날카로운 이빨이 없다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범은 뿔이 없다
날개 달린 새는 다리가 두 개 뿐이다
예쁜 꽃치고 열매가 변변한 것이 없다
열매가 귀한 것은 대개는 꽃이 시원챦다.
좋은 것만 골라서 한 몸에 다 지니는
이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뛰어난 재주와 부귀영화는 함께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한꺼번에 누리려 하지 마십시오
지금 가졌던 것 마저
잃을 수도 있습니다
다 가지려 들지 마십시오
손에 든 것을 놓아야
새 것을 쥘 수 있는 법입니다.
구파발역까지 가는 동안 내내 ‘욕망, 집착’등의 단어들이 내 뇌리를 파고든다. 역을 내려 김밥 한 줄을 사서 배낭에 넣고 704번 송추행 버스에 몸과 ‘화두(話頭)’를 싣고 효자비에서 내린다. 여느 때보다 이른 시각이라서인지 나홀로 하차하여 효자비를 들머리로 무거운 화두를 짊어지고 한적한 숲 속 오솔길을 걷는다. “인생이 다 그런거여” 친구 최원장이 동행한다면 아마한마디 툭 던졌으리라.
간이 이동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한참을 올라가니 앞서 걷는 산님 한 분을 만난다. “안녕하세요. 이른 산행하시네요”. “네, 안녕하세요”하며 뒤 돌아 보는 산님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어~ 할머니가, 어디까지 가십니까 ?” “백운대요”. “예에,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일흔 여덟 (78)이예요”.“대단하십니다, 그 연세에 그리 산을 잘 타시니요”. “이 길 백운대 가는 길 맞지요?” “예, 조심해서 천천히 안전하게 오르세요, 먼저 가겠습니다”. 내가 저 할머니 나이에 이 산을 저렇게 오를 수 있을까? 아니 아내가 저 할머니를 만났어야 했는데’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날씨가 스모그가 끼어 하늘이 맑지 않다. 요즘 가물어 계곡도 바짝 말라 있다. 생선 비늘처럼 촘촘한 숲 속 오솔길과 가물어 우수에 젖어 있는 계곡 길을 넘나들며 흐르는 땀을 닦기 위해 너럭바위 위에서 잠시 쉰다.
지난 주에 본 숨은 벽은 아직도 승천하지 않고 내 ‘영혼의 산’으로 남아있다. 바람골로 우회하며 너덜길을 오른다. 대동샘에서 목을 축이고 호랑이굴을 만나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백운대 까마귀가 발정기에 접어들었는지 아니면 위험구간을 알리느라고 그러는지 내 머리 위를 맴 돌며 구슬픈 소리로 요란스럽게 울부짖는다. 위험 경고문을 무시하고 굴 입구에서 배낭을 벗어 밀어 넣고 몸을 구겨 넣는다. 다시 배낭을 앞으로 메고 굴 속의 바위를 피아노 치듯 내려서서 굴 밖으로 나오니 피안(彼岸)의 세계가 펼쳐진다.
숨은 벽 정상이 바로 코 앞에 서 있고 인수봉 또한 설교벽을 거느린 채 위용을 뽐내고 가까이 있다. 백운대 정상에서의 조망만 즐기다가 호랑이굴 전망바위에서의 조망을 즐기니 그 맛이 다르다. 위험구간엔 그 보상으로 아름답고 빼어난 조망을 숨기고 있나보다.
백운대 정상엔 태극기와 함께 산님들로 꽉 차 있다. 설교벽, 숨은 벽을 보다가 염초봉에 시선이 꽂이니 “말바위까지라도 한번 가 봐” 나도 모르게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바위 길을 릿지하며 가능할 듯 싶다. 그러나 나처럼 역으로 하산하는 산객은 없다. 말바위 암벽길을 지나온 산님 일행이 지나면서 “역으로 가시게요?”하며 걱정스런 눈길을 준다. “그래 안전산행이 최고야” 독백하며 가던 길을 접고 백운대 뒷 길로 다시 돌아와 숲 속에서 캔맥주 한잔으로 위로주를 든다.
여우굴 체험을 하고 약수릿지 능선을 곁눈질하며 염초1봉 직벽아래에서 또 발길을 멈춘다. 한번 직벽을 타 볼까. 한 참을 망설이다 직벽길을 내려서니 산나리가 위로를 한다. 북문을 거쳐 원효봉에 오르니 정상이 텅 비었다. 왠 일 일까? 아마 더운 날씨 탓이라 계곡으로 다 피서를 간 탓일까? 혼자 터벅터벅 산길을 내려서며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더위를 쫒아본다. 정적에 쌓인 원효암 경내를 둘러보고 시구문(屍軀門)을 내려서며, 조선시대 성안 사람들의 시신이 이 문을 통해 귀천(歸天)했던 길을 살아서 통과하는 나를 본다. (200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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