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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4-08.29 (5박6일) / 날씨 ; 흐린 날 많음 그리고 비, 백두산 서파 5호 경계비에 서니 강풍 동반 강한 비바람
*<산이 좋은 사람들> 26명과 함께
*여행코스 : 인천(동방명주 페리호)-중국 단동-집안-통화-송강하-서파 산문(08/26.09:15)-5호 조중경계비-서파산문-송강하-이도백하-북파산문-장백폭포-달문-천지물가-북파산문-이도백하-송강하-통화-청산리-호산장성-단동-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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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명주(東方明珠, Oriental Peals)호에 몸을 싣고
동방명주호
선실에서
소풍날 받아놓은 초등학교 학생시절이나 중년의 지금이나 소풍이나 여행은 마냥 마음을 들뜨게 한다. 갑작스럽게 촉박한 여행일자가 목전에 잡히는 것 보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잡힌 여행일정은 몇 날을 두고 더 즐겁다.
여행일 5주전에 여행사와 여행자료 등을 인터넷 서핑을 통하여 충분하게 검토후 최종 예약을 끝냈다. 그리고 “아는 것만큼 느낀다.”는 명제처럼 시간 날 때마다 여행지의 자료들을 검토해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여름의 끝물이 다 하기 전 8월24일 오후 6시 30분에 인천연안부두에 정박해 있던 동방명주 호는 안개 낀 서해를 항해하기 시작한다. 중국 화물선을 개조한 이 여객선은 11,000 톤급으로 500명의 정원을 싣고 갈매기들의 환송을 받으며 중국 단동을 향하여 그렇게 유유하게 인천항을 출발했다.
선상낙조를 즐기러 갑판으로 나간다. 안개로 자욱한 바다는 갈매기 떼만 간간이 보인다. 망망대해를 배 지나가는 자국을 남길 뿐 선상낙조는 안개 속으로 숨는다. 패키지여행이라 다인 실을 이용한 잠자리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오직 백두산 트레킹과 천지를 본다는 생각으로 불편함은 참을만하다.
선실 안은 떠들썩하다. 백두산 트레킹과 고구려 유적지 답사팀이 어우러지고 남녀노소가 선실 이곳저곳에서 얘기꽃을 피우는 소리에 이른 잠을 청하기엔 너무 시끄럽다. 갑판을 몇 차례 나와 보지만 어둠을 가르며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기관 소리만 귓전을 울린다. 어렴풋이 잠이 들다 깨 보니 아직도 어둠 속이다.
# 단동에서 집안까지 압록강과 동행하며
▲단동항 근처에서 북한선박
15시간의 항해 끝에 단동 항에 도착한다. 관광객과 어울려 인천-단동간의 보따리 장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수많은 조선족의 얼굴에서 궁핍을 읽는다. 마약만 빼고는 돈이 될만한 물건들을 갖고 단동과 인천으로 오가는 그네들의 삶의 무게를 잠깐 생각해본다. 갑판 한 구석에 이동식 간이침대하나에 지친 몸을 뉘고 담배연기를 깊숙이 들여 마시며 허공을 응시하던 그 지친 모습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단동시내에서 점심을 들고 집안까지 5시간쯤 달리는 길은 압록강과 동행한다. 33인승 미니버스는 좌석 간격이 좁아 무릎 펴기가 불편하다. 차창에 비치는 북한의 산과 중국의 산들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풍경이 다르다. 북한의 산들은 거의 정상 부근까지 개간하여 민둥산이다.
6.25 때 폭격으로 끊어진 단동-신의주간 철교는 역사를 뒤로 한 채 새 철교와 함께 길을 잇고 있다. 가깝게 북한 땅이 조망되나 사람들의 자취는 눈에 띄질 않는다. 강 건너 마을에 연기도 나지 않는 공장 굴뚝이 휑하니 눈길을 사로잡는다. 착잡한 심정으로 그네들의 삶을 그려본다. 민둥산과 폐허나 다름없는 건물들의 모습들이 집안으로 가는 길 내내 길손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단동이나 집안 역시 타임머신을 뒤로 돌려 우리나라 60년대 말의 풍경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도 가도 옥수수 밭과 단층으로 된 허름한 농가 가옥들은 영락없는 우리네 60년 대의 모습이다.
중국은 국토 면적이 남한의 98배나 되는 광활한 땅이다. 금년 2월에 상해와 소주, 항주 등을 여행했을 때의 중국의 모습과는 부(富)의 차이가 크다. 다 쓰러져가는 가옥에도 부(富)와 복(福)을 기원하는 글씨들을 붙여놓고 기원하는 모습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광개토대왕비
어둠이 내릴 때쯤에서야 버스는 집안의 고구려 유적지인 광개토왕릉과 장수왕릉에 내려놓는다. 고구려의 늘름한 기상은 어디로 가고 왕릉엔 어둠만 내리는가. 고구려 최전성기인 5세기의 고구려 영토는 다 어디로 가고 쓸쓸하게 높이 6.39m의 광개토왕비만 비를 맞으며 길손을 맞이하는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화강암으로 된 장수왕릉이 자리하고 있다. 기단의 길이 33m, 높이 13m 로 7단의 계단식 돌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된 채 훼손된 아버지 능곁을 지키고 있다.
압록강 가 북한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2시간 반을 달려 통화에 있는 휘풍 호텔에 여장을 푼다.
# 꿈에 그리던 백두산(서쪽) 트레킹, 그러나 강풍과 폭우로 그만 포기하고
백두산 서파산문
두 시간 쯤 눈을 붙였을까. 모닝콜에 깨어 새벽 3시에 통화를 출발하여 4시간 반 만에 무송을 거쳐 송강하를 지나 백두산 서파 산문에 들어선다. 차창 밖엔 여름비가 간간이 뿌린다. 아뿔사! 서파 산문에 들어서니 폭우로 변한다.
2005.08.26 백두산 산신령은 비, 바람 그리고 구름으로 천지조화(天地造化)를 부리며, 백두산 천지(天池)를 호령하고 계셨다. 모든 자연 사물에 정령(精靈)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Animism)의 원시신앙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필자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대자연, 천지의 모습에 잠깐 넋을 잃고 경외심을 품는다. 그러나 경외심도 잠시, 원망하는 마음으로 돌변한다.
5호경계비
서파산문을 들어서서 천지가 열리도록 기도를 하며 빗속의 계단 길을 오른다. 5호 경계비에 서니 강풍을 동반한 비가 길손의 마음을 여지없이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얼마나 꿈에 그리며 달려온 길인가. 여행가이드는 도저히 외륜 종주를 할 수 없다고 버틴다. 그러나 중국인 현지 가이드는 종주가 가능하다고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던진다. 그러나 우리 측 가이드는 불가하다는 의견을 내 놓고 그야말로 절망의 순간들이 지나간다. 위험을 무릅쓰고 최종 종주 희망자 5인이 뭉쳐 막 길을 떠나려하는데 우리 측 가이드가 중국인 가이드한테 “네가 이런 위험한 일기에 책임을 질 수 있느냐?”고 강한 압박을 하니 중국인 가이드도 결국 한 발 뒤로 빼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 종주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15시간 배를 타고 13시간의 버스를 타고 오직 백두산 서파 종주 일념으로 달려온 이 길을 여기서 접어야 하는가. 혹자는 3대를 덕을 쌓아야 백두산 천지를 본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지만, 하필 우리가 종주를 못 한다고 생각하니 입맛이 소태를 씹은 맛보다 더 쓰다. 20여분의 실랑이 끝에 돌아서는 필자의 이 마음을 천지는 알까? 강풍 속에 내리는 비가 이렇게 얄미운 적도 없었다. 산을 다니면서 맑은 날의 청산보다 운무에 쌓인 산을 더 좋아했던 필자는 그만 할 말을 잊고 야속한 마음으로 산길을 내려선다.
해발 1990 m의 5호 경계비에 서서 백두 천지를 만나는 감흥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순간이다. 이 마음을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하랴. 운무에 갇힌 하늘이 조금씩 열리는가 싶더니 천지의 운해는 강풍과 함께 잠시 천상으로 귀천하며 오직 비바람을 동반한다. 신비스런 검푸른 잉크 빛 천지의 속살을 드러내길 고대해보지만 이내 구름안개는 귀천을 멈추고 천지를 구름바다 속으로 서둘러 밀어 넣는다. 보일 듯 말 듯 천지는 안개 속에 꽁꽁 숨어 그 모습을 나투지 않고, 강한 비바람만 계속 토해낸다. 언제 운해속의 천지 모습이 드러날까 숨을 죽이며 한참을 기다려도, 천지는 숲 속에 잠든 요정처럼 깨어날 징후가 없다. 오직 강풍과 폭우만 계속될 뿐이다. 아~ 이럴 수가!
#송강하에서 열차를 타고 이도백하로
주룩주룩 내리던 빗줄기가 서파산문을 내려서니 가늘어진다. 이따금씩 햇살을 내보이며 나그네를 약 올린다. 고산이라 일기가 변화무쌍하다. 한 시간만 서파 산문을 일찍 통과했던지 아니면 한 시간만 늦게 5호 경계비에 섰더라면 꿈에 그리던 백두산 외륜 종주는 가능했으리라. 우리에게 왜 천지는 문을 열지 않았을까 하고 원망해 보지만 이미 물 건너간 시간들이다. 백두산 외륜 종주는 다음을 기약해 보지만 너무 멀고 험난한 고행길이다. 다음을 기약해보지만 마음은 용인을 하지 않는다.
송강하에서 이도백하로 열차를 탄다. 2시간 20여분 동안 타고 가는 열차 속에서도 마음을 고쳐 잡을 수가 없다. 내일 북파에서 일행들을 따돌리고 역종주를 꿈꾸니 조금 마음이 한가로워진다. 열차 속엔 중국인들과 섞여 그네들의 문화를 조금 접할 수가 있었다. 열차 안은 마주 보며 놓인 좌석이 한쪽에 6인 좌석이 다른 한쪽엔 4인석이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배치되어 있는 게 특이하다. 아마 넓은 땅 덩어리이기 때문에 장시간 탑승하며 음식을 들기 위해 그렇게 배치한 듯 하다. 중국인들은 허름한 옷매무새도 보이지만 유행하는 옷으로 치장한 젊은 여인네들도 보인다. 그러나 하나같이 궁핍한 얼굴들은 감출 수가 없다.
#북파 장백산호텔에 여장을 풀고, 장백폭포와 천지물가로
*북파산문
이도백하에 도착하니 아직도 빗줄기는 가늘지만 계속된다. 다시 버스로 장백산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지프차로 천문봉을 향한다. 그러나 필자는 아내와 다른 두 사람과 한 팀이 되어 천문봉을 버리고 내일 새벽에 오를 계획인 장백폭포와 천지 달문을 향한다. 어차피 천문봉에 올라가보아도 천지를 내려다보기는 글렀다고 판단되어 밝은 날의 천지 물을 만져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내일 새벽 일행들이 장백폭포를 갈 때 날이 좋으면 역종주를 하고 송강하에서 다시 합류할 요량으로 한 가닥 종주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장백폭포
시간이 늦다고 장백폭포 입장 매표만 허락한다. 장엄한 폭포가 운무 속에 가렸다가 다시 그 위용을 나타낸다. 폭포아래 도착하니 천지 오르는 계단아래 매표소는 문을 닫고 관리인이 길을 막고 선다. 나는 손 짓 몸짓으로 계단 상층부에서 장백폭포 사진 몇 컷을 찍고 내려오겠다고 겨우 허락을 얻어 계단 길을 오른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아내는 계단 길 오름에 힘들어하고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아내를 긴 타월로 잡아 끌며 계단 길을 쉬지 않고 오르니 숨이 턱에 찬다. 계단 길을 오르던 앞 선 팀을 굴속에서 만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내친 김에 관리인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천지물가로 내 달릴 생각을 하고 더욱 힘을 내 계단 길을 오른다. 3분의 2쯤 계단 길을 올랐을까. 아내는 도저히 더 못 가겠다고 주저앉는다. 그럼 혼자 갔다 오마고하며 성큼 성큼 오름길을 올라 천지 물가에 섰다.
천지 물가
아~ 천지다! 한참을 서서 천지를 바라보는데 운무가 또 천지를 감춰버린다. 강풍이 분다. 천지 물가에 서서 다시 천지가 열리기를 기다린다. 자세를 낮추고 빗속에서 디카를 꺼내 보지만 이내 운무와 숨바꼭질을 한다. 10여분 쯤 지났을까. 아내가 일행하고 ‘와! 천지다!’ 하며 도착한다. 다시 10여 분간 천지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지켜보며 기념사진 몇 컷을 찍는다. 일행 넷이서 어두워진 천지 길을 조심조심 랜턴에 의지하며 내려온다. 천문봉에 가지 않고 천지에 오길 잘 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위안을 삼으며 어두운 천지의 밤길을 내려와 식당에서 하산주를 들고 온천욕에 몸과 서운했던 마음을 씻고 잠자리에 든다.
백두산(2,744m, 북한 기록엔 2,750m)의 산 정상부에 함몰로 생긴 칼데라호(*분화구에 물이 괸 호소) 천지(天池)가 16개의 산봉우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비, 바람, 구름을 거느리며 자리하고 있다. 자연의 신이 빚은 우리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다. 천지의 물은 달문이라는 화구벽을 통해 장백폭포를 이루며 쑹화강(松花江)으로 흘러간다.
천지는 동서길이가 3.51km, 남북으로 4.5km, 둘레가 14.4km이고 그 면적이 9.165 평방km라고 하니 여의도 면적(8.48 평방km)보다 조금 더 크다. 한라산의 백록담이 동서길이가 600m, 남북으로 500m, 둘레가 3km인 것에 비하면 그 크기가 5~6배 정도 되는 큰 규모다. 천지의 평균 수심도 213m(가장 깊은 곳은 384m)이고 총저수량도 3,866 입방미터라고 기록은 전한다. (출처:네이버 자료에서 발췌)
백두산 천지를 보고 난 후 필자가 본 것 중에서 자연의 신이 빚은 최고의 걸작품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백두산 천지’를 그리고 인간이 만든 것 중엔 최고의 환경 걸작품인 뉴욕 맨하탄의 살아 숨쉬는 허파 ‘센트랄 파크’를 으뜸으로 꼽고 싶다. 천지는 신비를 감춘 채 필자에게 절대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센트랄 파크는 좁은 맨하탄의 지역에 주민과 환경 친화적으로 설계된 거대한 수림과 호수, 초원을 갖춘 100여 만 평의 공원 환경은 도심 속의 밀림 걸작품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와~ ” 잠깐 나는 꿈을 꾸었던 걸까? 보일 듯 말 듯 보이지 않는 천지의 모습은 실오라기 하나 달랑 걸친 젊은 날의 첫사랑 여인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보다 더 짜릿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 역종주는 접고 이도백하에서 송강하로 다시 열차를 타고, 그리고 단동페리호를 타고
새벽 2시 모닝콜에 깨어보니 비는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린다. 일행들은 장백폭포에 간다고 준비가 한창이고 필자는 역종주를 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빗속의 역종주가 무리일 거라는 생각으로 계획을 접기로 한다. 밖이 시끄러워 깨어보니 빗속에 장백폭포까지 갔다 온 일행들의 발자국 소리에 잠을 깬다. 빗속에서 장백폭포만 보고 왔다는 말을 듣는다. 우린 어제 그래도 천지 물가에까지 가서 천지를 보았으니 서운한 감정이 좀 덜든다.
여진족마을에서
호산장성
아침식사를 하고 이도백하로 가서 다시 송강하 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젠 역순으로 단동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가는 길에 여진족 민속촌마을에서 일박하고 단동의 호산장성을 오른다. 북한 마을이 한눈에 잡힌다. 일보하를 날머리로 해서 내려와 다시 일행은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끊어진 단동-신의주 철교까지 유람하며 북한 마을을 조망한다. 5박6일의 백두산 여행일정은 그렇게 휙 바람처럼 지나갔다. 단동 항에서 인천 가는 동방명주호에 지친 마음과 몸을 싣는다. (2005.08.31)
*압록강 유람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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