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성격이 특이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들어오던 차에 어느 계기가 되어 그 말을 곱씹어 볼 기회가 있었다. 좋게 해석하면 범상하지 않다는 뜻이겠고, 나쁘게 생각하면 보편을 뛰어 넘어 성격이 지랄같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성격이 직선적이라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직장에서 위 아래 가리지 않고 또 장소 가리지 않고 해대는 직언하는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걸까. 아니면 돈도 쥐뿔도 없는 주제에 안분낙도를 추구하는 내 모습이 가련해 보이는 걸까.
최인호의 장편소설 <상도(商道)>에 ‘계영배’ 얘기가 나온다. 뜻을 풀이하면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는 술잔’이라는 뜻이다. 가진 것을 가득 채우려함은 그만 그치는 것보다 못함을 말함일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다. 재물에 대한 욕심 또한 마찬가지다. 욕심을 7부 정도만 채우면 만족하련만, 100% 아니 그 이상 욕심을 부리다 탕진하는 사례를 목격하곤 한다. 안빈낙도하며 사는 사람은 한 칸짜리 집에 살아도 궁전에서 사는 것처럼 만족스럽게 살 수 있고 재미있게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너나 할 것 없이 경제적인 부를 원한다. 돈이 있으면 그만큼 인생살이가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때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같은 사물을 놓고 사람에 따라 느낌의 질이나 깊이는 사뭇 다른 것 같다. 부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많이 소유하면 생활하는데 덜 불편할까? 잘 먹고 좋은 옷 입으면 만족스러운 폼나는 생활이라고 느낄까? H.D.소로가 <월든>에서 '검소한 생활과 검소한 식사를 하는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 했듯이 우리가 검소한 생활에 익숙해지면 보다 많은 재물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매일 매일의 일상을 기쁨으로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거론치 않더라도 스님의 일상은 향기로울 것으로 추측된다. 재물이 적다고 불평할게 아니라 자신의 지혜 부족과 무지를 탓해야 할 것이다. 나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안목이 부족한 사람이 마음에 꼭 새겨 둘 일인 것 같다. 스님처럼 물질의 속박과 집착으로 부터 벗어나고 자기절제를 통한 정신세계의 승화를 욕심내 보지만 그리 쉽지 않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논어(論語)의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이 경구가 새삼 되새겨진다. 탐욕(貪慾)의 반어는 ‘무욕(無慾)’일까. 소유의 반대 또한 ‘무소유’일까. 그러나 필자는 탐욕이나 소유의 반어로 무욕, 무소유라기 보다는 ‘만족’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세상을 살면서 보다 큰 것을 갈구하며 찾기보다 작은 일 작은 것의 성취에 보람을 느끼며 스스로 만족을 느끼는 것만이 행복의 근원이 아닐까 싶다. (200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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