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 다시 설악의 비경 속으로 (설악산/한계령-봉정암-백담사)

천지현황1 2005. 10. 3. 10:19

 

- 다시 설악의 비경 속으로 (설악산/한계령-봉정암-백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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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0.02 (일) / 아내랑

* 한계령(02:00)-끝청-중청-소청-봉정암-구곡담-수렴동-백담사(12:45)

* 산행거리 : 2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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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설악으로

 

 정녕 가을인가. 설악은 산꾼들의 무릉도원인가. 설악은 빨간 단풍으로 치장하고 운무 속에 우뚝 솟아 구름바다를 유영하며 수많은 길손들의 감성을 건드린다. 숲 속에 들어가서 숲 전체를 보았는가. 정작 숲 속에 들어서면 숲 본래의 큰 그림은 볼 수 없다. 다만 나무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지난주에 공룡능선을 탔지만, 운무에 갇혀 등천하는 모습만 살짝 보았을 뿐 공룡의 몸체를 보지 못했다. 그 공룡의 늘름한 모습을 다시 보기 위해서 일주일간 어른거리는 산세를 그리며 다시 무박 산행 길을 떠난다. 덤으로 용아릉의 비경을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아내는 지난주에 공룡능선에서 자신의 체력을 체크한 탓인지 군말 없이 따라 붙는다. 50대 용띠 여자가 (그것도 초보 산꾼이) 궂은 날씨에 12시간 만에 공룡을 타다니 부럽다는 주위의 격려에 힘을 얻은 모양이다. 지난여름 뜨거운 땡볕에서 주말마다 경기 북부의 높은 산들을 등정한 탓인지 아내의 체력이 놀랍도록 좋아졌다.


# 어둠 속의 산행 행렬이 마치 순례자의 구도 행렬처럼 이어지고


 설악의 단풍은 대청봉 정상에서 하루에 40m씩 산아래로 내려선다. 소공원까지 만산홍엽을 이루려면 한달은 족히 걸리리라. 동행하는 산님들이 산을 오르며 금년 가을 설악의 단풍은 여느 가을보다 유난히 고을 것 같다는 얘기를 이구동성으로 한다.


 한계령에서 어둠 속에서 오르는 대청봉 길은 8.3km로서 오색에서 오르는 길보다 3.3km가 멀지만 능선길이 완만하여 오색을 들머리로 해서 오르는 길보다 조금은 편안하다. 오늘 새벽도 지난주처럼 밤 산행길이 만만치 않다. 전국에서 설악의 단풍을 보러 무박으로 밀려드는 차량 홍수 때문에 한계령의 새벽은 후끈 달아 올라있다. 산길은 만원이었다  설악의 비경을 즐기러 온 인파로.


# 끝청에서 여명의 설악을 바라보고 / 소청길에서 바라본 설악의 비경들


 한계령을 들머리로 해서 대청을 오르는 길은 낮엔 조망이 좋을 듯싶다. 용아릉의 비경을 즐기며 긴 능선 길을 타는 길이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새벽을 이용하여 산을 오르기 때문에 어둠의 여명 속에서 희미한 용아릉을 본다. 끝청에서 새벽이 잠에서 깨고 멀리 일출이 산등성이를 타고 멀리 속초 앞바다 위에 솟아오른다. 그러나 오늘도 구름이 설악 하늘을 덮고 있어 쾌청한 날씨는 아니다.


 중청으로 접어든 길에서 대청을 바라본다. 많은 산객들이 대청을 오르내리고 있다. 붉은 물감으로 수채화를 그린 듯 산이 막 불타려한다. 소청가는 길에서 본 설악의 진경은 황홀하다. 천불동 계곡을 딛고 일어선 천화대, 등천하려다 운무를 아직 만나지 못한 공룡능선 그리고 그 너머로 울산바위가 속초 앞바다를 배경으로 적당히 어울려 실경 산수화를 만든다.


# 적멸보궁, 봉정암은 불공드리는 사람들과 산행인파로 만원을 이루고


  불심이 돈독한 칠순을 넘긴 할머니들도 오직 ‘나무아미타불’ 일심으로 오르는 이 길을 속세의 욕망을 털어내며 소청을 내려선다. 해발 1,224m의 설악의 심산유곡 구름 속 선계에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는 봉정암을 만난다. 아마 이 길을 오르내리는 할머니 신자들은 산길을 오르내리며 세속의 번뇌망상을 저 운무 속에 실려 보내고 이미 보살들의 화신(化身)으로 변모하리라. 그리고 기쁨으로 환희하리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을 적멸보궁이라 하는데, 봉정암은 신라의 승려 자장 율사가 당나라로부터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한 5대 적멸보궁중 하나다. 양산 통도사, 오대산 중대,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그리고 영월 사자산 법흥사의 적멸보궁이 그것이다.


 암자 뒤에 오층석탑 앞에 서니 설악의 기(氣)가 사방팔방에서 이곳으로 모여 드는 느낌을 받는다. 기암릉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발아래 용아릉이 막 단풍과 어울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서있다. 공룡능선이 날렵한 자태를 자랑하고 설악은 단풍으로 만산홍엽을 그려내고 있다. 자연 암반 위에 우뚝 세운 이 탑은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했다고 해서 ‘불뇌보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참배객들 틈에 끼여 우리 부부도 속세의 풍진 티끌을 묻혀 온 마음의 때를 이곳 봉정암에서 3배를 올리며 씻는다. 이 순간만은 자신도 모르게 불심(佛心)으로 충만해지는 것 같다.


# 용아릉의 비경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곳, 봉정암 5층석탑


 봉정암에 들리면 산꾼들은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암자 뒤 5층석탑에 올라 용아릉과 공룡의 모습을 볼 것을 꼭 권유한다. 이곳에서 가장 가깝게 만나는 용아릉은 요즘 기암절벽 사이에 점점이 수놓은 단풍과 어울려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 공룡능선의 일곱 봉우리들도 가깝게 조망된다. 봉정암을 거치면서 이곳을 들리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맛일 것이다.


# 구곡담, 수렴동을 내려서며


 지난 산행기에 ‘곡신불사’(谷神不死)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구곡담의 골짜기를 내려서며 이 말을 또 한번 새긴다. 계곡은 수많은 소(沼)와 담(潭)을 품고 비경을 자랑한다. 빨간 단풍이 산허리를 수놓고 맑은 계류는 폭포를 이루며 소와 담을 만든다. 신선들이 노니는 지상의 천국이 여기쯤이 아닐런지. 쌍폭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다 산허리의 빨간 단풍을 또 한번 쳐다본다.


 수렴동을 지나며 쉬고 싶은 발걸음을 맑은 계류에서 잠깐 멈춘다. 발이 시리다. 물의 냉기가 20여km의 산행길 피로를 풀어 내린다. 인파로 용대리가는 백담사 셔틀버스 행렬이 한 시간쯤 걸릴 것을 생각하고 설악의 비경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옥류에 담근 발을 빼고 자리를 툭 털고 산을 내려선다. (2005.10.03)

 

*끝청에서 만난 일출

 

*끝청에서 바라 본 울산바위. 속초는 막 새벽 잠에서 깨어나고

 

 

*소청가는 길에서 뒤 돌아 본 대청도 잠에서 깨어나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소청가는 길에서

 

 

 

 

 

 

*소청 이정목

 

 

 

 

*봉정암뒤 기암과 어울어진 단풍

 

 

 

 

 

 

 

*봉정암 5층석탑-부처님 뇌사리를 봉안한 석탑

 

 

* 5층석탑에서 바라 본 용아릉

 

 

 

 

*5층석탑에서 본 공룡능선

 

*기암과 단풍

 

 

 

 

 

 

 

*구곡담길의 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