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 카시오페아 별자리는 어디에 있을까..(지리산/백무동-천황봉-대원사)

천지현황1 2005. 10. 24. 22:59

 

 

        -카시오페아 별자리는 어디에 있을까...(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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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3 (일) / 산행거리: 21.2km / 안내 산악회를 따라서

*백무동 (03:00)-장터목 대피소-천왕봉-중봉-써레봉-치밭목산장-대원사-주차장(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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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무동의 새벽하늘엔 환상적인 별들의 잔치가

 

 지리산 북쪽자락에서 산객들을 제일 많이 불러 모으는 곳, 백무동.

백무동은 한신계곡과 백무동계곡의 우람한 폭포들을 많이 품고 여름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어 누구나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마을이름이다.

 

 전국 무당들이 천왕봉을 받들며 백 명의 무당들이 기거 했었다는 백무동(百巫洞)의 지명이 흰 안개가 많이 낀다하여 白霧洞이라 표기되기도 하다가 지금은 옛 한자 이름과는 달리 白武洞이라 표기한다. 백무에서 ‘무’자는 무사같은 강건한 ‘산객’들을 뜻하는 건 아닌지 생각을 해본다.

 

 서울에서 세 시간 반 동안 밤길을 달려온 관광버스는 길손들을 백무동 주차장에 토해 놓자 우릴 제일 먼저 반기는 자연풍광은  은은한 달빛과 초롱초롱한 별들의 한마당 잔치다. 백무동의 새벽하늘은 온통 별 빛으로 가득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버스를 내린 산객들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내지른다.  이렇게 가깝게 별들이 보이는 곳, 백무동의 새벽하늘엔 지금 별들의 환상적인 굿판이 벌어진다.

 

 지리의 새벽은 냉기와 함께 별빛이 흐르는 산골마을이 우리를 어릴 적 옛 추억의 시골 풍경 속으로 밀어 넣는다. 북두칠성이 또렷하게 똥바가지 모양(시골 태생인 필자에겐 그렇게 보임)으로 하늘을 가르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시오페아 별자리도 이디오피아의 왕 케시우스별과 함께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겠지만 그 위치를 쉽게 찾아보기엔 세월이 너무 흘렀다. 아마 북극성 반대쪽에 W자로 반짝이는 저 별이 아닌지.

 

# 달빛과 별빛 속을 거닐어

 

 나뭇가지 사이로 은은한 달빛과 별빛을 받으며 산행 길에 가끔 랜턴을 끈 채 계단 길을 오른다. 산 그르매의 운치가 감흥을 불러오고 산죽길은 지리의 샛바람을 몰아 사그락댄다. 뒤돌아 본 능선 저 멀리 순례자의 불빛이 장관이다.

 

 장갑 낀 손이 시렵다는 아내에게 타올로 붕대처럼 둘둘 말아주지만 스틱 잡은 두 손은 불편할 텐데도 잰 발걸음은 가벼운가보다. 하동바위를 지나 두 시간 40분 만에 장터목산장에 도착한다. 산장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고요하다. 빨간색의 앙증맞게 작은 우체통이 서리를 맞고 서서 추위에 떨며 동쪽하늘의 붉은 해맞이를 준비하고 있다.

 

 

꿈속의 장터목대피소  

                                     

우체통이 추위에 떨며

 

# 천왕봉의 일출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자연 친환경적인 산장의 해우소(解優所)는 어떤 모습일까? 길손의 근심은 천왕봉에서 꼭 일출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암모니아 냄새를 맡으며 잠깐 근심을 털어낸다. 결론은 명쾌하다. 무리하게 내친걸음을 쉬엄쉬엄 오르기로 하고 제석봉 어느 능선에서 구름사이로 오르는 일출을 본다. 아직도 사위는 어둑어둑하다. 멀리 반야봉도 아침잠에서 아직 덜 깬 듯싶다.

 

 고산준령의 파도 타기하는 모습이 장쾌하다. 구름바다가 펼쳐지는 어머니같이 온화한 산, 지리의 모습이 일출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니 장관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산, 산, 산이다. 반야봉을 내려다보며 아내는 말한다. “설악산이 남성 같은 산이라면 지리산은 여성스럽다”고.

 

 조용하던 천왕봉엔 중산리 법계사 방향에서 산님들이 떼 지어 올라오는 바람에 갑자기 만원이다. 세찬 바람에 모자가 날려 가려한다. 천왕봉 정상엔 정상석을 붙들고 산님들이 흔적 남기기에 바쁘다. 1915m의 높은 산을 올라와 누구나 정상석 앞에 서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으리라.

 


 

# 중봉, 써레봉으로

 

 세찬 바람은 천왕봉에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산님들을 독려한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보아도 장대한 산무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곱은 손은 디카 셔터를 누르기가 힘겹고 밧데리는 금방 방전이 된다. 목덜미를 파고드는 찬 바람은 산상의 초겨울이 머지않아 시작됨을 알린다. 바람막이 양지 돌 벽에 기대 주먹밥 한 덩이로 조반을 대신하고 중봉을 향하여 길을 내린다.

 

 드물게 산객을 만난다. 아내와 호젓한 중봉길을 가며 산상 고사목의 쓸쓸함을 본다. 이따금 산길에 벌써 나뒹구는 낙엽에서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는 모습도 본다. 오르락내리락 산길에서 기암에 달라붙은 풀 한 포기가 어제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본 석파 이하응 (흥선대원군)이 친 석란(石蘭)같다.


 

 

           

 

# 치밭목산장을 내려서니 끝없는 산죽길이

 

 치밭목 산장을 내려서며 단풍 든 계곡을 만난다. 아마 뱀사골이나 피아골엔 지금쯤 단풍 유산객으로 초만원을 이루겠지만, 이곳 동부 능선 계곡엔 단풍도 인파도 한적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산죽길이 바람에 사그락 댈 뿐 적막강산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저 산죽은 구한말 서화가 탄은 이정의 풍죽(風竹)그림의 소재인가. 바람에 나부끼는 댓잎을 농묵과 담묵으로 표출된 현묘한 필치의 그림과 눈앞에 펼쳐지는 산죽길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우리 부부 발걸음을 조금은 가볍게 하는 듯 하다. 일년에 봄가을 두 차례 문을 열어 그림 애호가들의 갈증을 달래주는 간송미술관의 고마움을 음미해보며 그 길고 긴 산죽길을 내려선다. (200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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