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운악산을 경기5악 중 으뜸이라 했던가 (운악산)

천지현황1 2005. 11. 1. 20:07

 

                  -운악산을 경기5악 중 으뜸이라 했던가 (운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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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30(일) / 산하가족 정ㅇ ㅇ님 부부와

*운악산휴게소(10:45)-운악사(구 청학사)-궁예성터-망경대-정상-미륵바위-정상-애기봉-궁예 대궐터-신선대-무지치폭포-운악산휴게소(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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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번 일동 가는 국도 변 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산이 붉게 불타오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까지 빨갛게 물드는 듯 하다. 저만치 달아나는 가을이 온몸으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듯 산은 그렇게 시절을 노래하며 불타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금년 여름 땡볕에서 경기 북부 여러 산들을 함께 산행한 산하가족 정ㅇ ㅇ님 부부와 시간이 맞아 오랜만에 운악산의 가을을 배웅하기로 하고 길을 떠난다. 하판리 현등사 방향에선 몇 차례 산행한 경험이 있어 들머리를 서쪽 운악산 휴게소로 정한다.

 

# 운악산을 경기5악 중 으뜸이라 했던가

 

 

 신라 고찰 현등사를 품고 있어 현등산이라고도 칭했던 운악산은 그리 큰 산세를 자랑하진 않지만 경기 가평과 포천을 경계를 이루며 우뚝 서있는 산세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산세가 험하고 기암괴석과 계곡이 어울려 절경을 갖춘 탓에 이름하여 경기의 소금강이라고 예찬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경기5악(관악산, 감악산, 화악산, 송악산 그리고 운악산) 중 으뜸으로 치는데 주저하지 않는 산이다.


# 운악사 보살님의 친절한 인사말과 정성어린 국수 점심공양

운악사(구 청학사)

 

 들머리를 들어서서 한 30여분 산길을 오르며 작은 안부를 올라서면 독경소리와 함께 협곡 속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암자를 만난다. 지금 이 절은 운악사(구 청학사)로 지금 중창 불사 중으로 어수선한 모습으로 다가서지만 문 앞에서 가마솥을 돌보다 앞치마에 손을 닦고 정중하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합장하며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하며 반기는 보살님의 인사가 인상적이다.

 

 입석 간이 식대를 기다랗게 배치한 자리엔 산님들이 도열해서 ‘무료’ 국수 점심공양을 받고 있다. 우리 일행도 나란히 서서 보살님이 건네주는 국수 한 그릇을 잘 익어 감칠 맛 나는 무우청 김치와 함께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비운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어머니가 해 주시던 바로 그 맛이다. 국수장국 맛이 어머니의 손맛을 닮았다.

 

 무료지만 정작가님이 점심공양 값을 지갑에서 꺼내 불전 함에 넣는 모습이 눈에 띈다. 어리석은 이 중생은 공짜 점심 공양을 받았다고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아내가 곁에 와서는 내 얄팍한 지갑에서 배추 잎 한 장을 덥석 뽑는다. 역시 나는 욕심 많은 중생의 표본인가.

 

# 보살님이 건네 준 맞이인사와 배웅인사가

 

 암자 뒤 협곡 오른 편에 소꼬리폭포가 있다는데 비가 오지 않아 물 내림이 없다. 암자를 돌아서며 “맛있게 잘 먹고 갑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니 하던 일을 멈추시고 처음 맞이인사 때처럼 90도로 허리를 굽혀 합장하시며 “또 오십시요, 잘 가십시요”라고 배웅인사를 하신다. 나도 모르게 “성불 하십시오” 라고 응대하고 자리를 뜬다. 산 오름길 내내 보살님의 친절과 보시가 이 못난 중생에게 세상사는 지혜를 가르쳐 준다

 

 7~8년 전인가. 직장에서 고객만족(CS : Customer Satisfaction)경영이 화두로 떠올랐을 때 그 일환으로 직원들에게 친절교육을 시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친절한 맞이인사며 배웅인사 그리고 전화 받는 예절 등이 잘 되어 있다고 매스콤을 탄 병원이 있었다. 안동에 있는 어느 병원을 벤치마킹해서 견학까지 갔던 일이 새삼 떠올랐다. 그런데 이곳 운학사에서 보살님의 정성어린 맞이/배웅인사를 받으니 친절교육의 산 교육장이 바로 이곳임을 피부로 느낀다.

 

# 망경대에 올라서니

 

 기암괴석 오름길에 밧줄이 놓여져 아내에게 유격훈련을 시킨다. 산세가 험하니 오름길이 쉽지 않다. 이 등로 만큼 밧줄이 많이 매달린 산이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어느 산님 말에 의하면 17개의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던가. 오름길 난이도가 도봉산 포대능선을 능가하는 듯하다. 전망바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내려다본 산 계곡과 47번국도 건너편 산은 붉은 빛으로 산이 불타고 있다.

 

 여러 차례 험한 바위 길을 밧줄에 의지한 채 된비알을 오르면 망경대(望京臺)가 나타난다. 우리 산하에 '망경대‘란 이름이 많다. 원래 망경대란 이름은 고려가 망하자 고려왕조를 그리며 신하들이 ‘옛 조국을 회상하며 개경을 바라보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었다고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혹자는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이 한양을 바라다 본 봉우리라 하여 망경봉이라고 하는 얘기도 있다.

 

 관악산의 ‘연주암’ 역시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건국하자 고려 말 신하 강득룡 등 몇몇이 관악산의 외진 암자로 들어가 멀리 개경을 바라보며 살면서 고려 왕조 시대의 임금을 그린다는 뜻을 따 연주암(戀主庵)이라 명명했다. 이렇듯 우리 산하의 지명 등이 옛 역사와 연관되어 명명된 곳이 부지기수다.

 

 망경대에 서니 국망봉, 명지산 등 가평의 산들이 올망졸망 한 눈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보이는 산들의 풍경들이 첩첩이 겹쳐있고 산 아래 도로가 산과 산을 이으며 어디론가 실뱀처럼 기어간다.

 

# 역시 병풍바위와 미륵바위는 운악산의 절경을 이루고

 

 

 

 


 

 가평쪽 정상에서 현등사 방향 내림 길을 조금 내려서면 미륵바위를 만난다. 어찌 보면 남근석 같기도 하고 방향을 달리 보면 한 쌍의 연인이 포옹하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아래 절벽엔 병풍을 두른 듯 병풍바위가 열두 폭 병풍을 치고 암벽에 단풍을 달고 있다. 병풍바위를 내려다보며 늦은 점심을 든다. 정작가 사모님이 맛깔스럽게 준비해 온 점심상은 항상 푸짐하고 넉넉하다. 게다가 일동막걸리 한 사발은 필자에겐 차라리 보약이다.

 

# 애기봉으로 하산 길을 잡고 궁예의 전설이 서린 궁예 대궐터를 지나

 

 

 

 

 

 애기봉으로 내리는 내림길엔 가을이 저만치 가는 듯 온통 낙엽길이다. 이따금씩 부는 바람에 그나마 달랑 붙어 있는 마지막 잎 새 까지 털어 내 벌써 나목 군상들이 많다. 전망바위에 서니 다시 병풍바위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애기봉엔 어느 해인가 아기를 안고 이곳에서 조난당한 가족의 비가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다.

 

 계속 산길을 내려서면 궁예의 전설이 서린 궁예 대궐터를 만난다. 궁예가 왕건과의 쟁투에서 쫒겨 이곳 운악산 자락에 숨어 항전을 했던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지금은 터 자리에 궁예 대궐터라는 팻말만 남아 있으나, 필자의 생각으론 운악산의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항전하기 좋은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에 성곽의 흔적도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정도(正道)를 걷지 않는 위정자들의 쓸쓸한 말로를 보는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아마 궁예는 농부가 휘두른 가래에 맞아 죽었다는 얘기도 있고 보면 그의 인생 말로가 가련하기까지 하다.


 # 무지개 폭포(무지치폭포, 일명 홍폭이라고도 함)는 말라 있고

 

 산을 계속 내리다 보면 폭포 전망대를 만난다. 이름하여 무지개폭포인데 여름 철 폭우가 내려 수량이 많을 경우엔 우렁찬 폭포 소리를 내며 장관을 이룰 것 같다. 지금은 갈수기라 물줄기는 보이지 않고 암벽만 덜렁 그 웅장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겨울철엔 암벽 등반인 들의 연습장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 속의 시각은 빠른지 산 그르매가 어둠을 불러 오고 있다. 붉게 타는 산을 내려서며 도란도란 산 이야기를 하며 내려 오다보니 어느덧 운악산 휴게소 광장이다. 서산의 해도 뉘엿뉘엿 산마루를 넘으며 길손들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200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