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동 심은 뜻은....(불수사도삼 / 5산종주기)
-------------------------------------------------------------*2005.11.04(23:00)-11.05(17:30) / 한국의 산하 가족 17인과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삼각산
*도상거리 45-50km (18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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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보문능선 계곡에서 만난 만추(2005.11.06 촬영)
최근 20여 km 이상의 장거리 산행을 몇 회 하고 나니 갑자기 더 긴 산길을 걷고 싶어졌다. 지리산 태극종주 길도 있지만, 서울 근교의 여러 산들을 연계해서 산행하는 맛도 좋으리라 생각하던 차에 <우리 산내음> 카페로부터 5산 종주산행 공고가 났다.
잠을 자지 않고 하는 장거리 산행 길을 마음에 두고 있던 터에 어찌 보면 자신의 체력과 인내를 시험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얼핏 보기엔 무모한 산행길이기도 하지만 은근히 기대되는 산행길이다.
요즘 산꾼 들에게 지리산 태극종주(88km), 5산 종주산행(45km) 등이 심심치 않게 한번 쯤 감행해 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산행기가 가끔 인터넷에 올라와 더욱 흥미를 유발시키곤 한다.
# 2005.11.04. 23:00 불암산 들머리를 들어서며
일행 17명은 상계역을 출발하여 불암산을 오른다. 달빛도 없는 칠흑같은 어둠이 내린 산길을 해드 랜턴 불 빛 따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조용한 산길을 오른다. 이번 산행길엔 부산, 포항 그리고 춘천의 산님들도 멀리에서 동참을 했다.
장시간 지구력과 체력을 요하는 산행길이라서인지 동행하는 산님들의 실력들이 보통이 아니다. 여성 산님들도 두 명이나 동참한 산행길인데 하나같이 준족들이다. 일행 중엔 이순(耳順)을 훌쩍 넘긴 달력 나이지만 펄펄 날으시는 40대 같은 생체나이를 갖고 계시는 산님도 세분이나 계신다.
오르막 안부에서 잠깐 쉬며 내려다본 서울 야경은 한 밤중이라 옅은 안개 속에 졸고 있다. 하늘엔 이따금씩 별 빛이 보이지만 지리산 백무동의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본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감흥이 별로 없다.
거북바위를 지나 정상에 서니 서울 야경이 또 펼쳐진다. 불암산 정상은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어 우리 산님들이 모두 올라오니 꽉 찬 느낌이다. 지방에서 오신 산님들이 야경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 다시 수락산을 향하여
조심조심 바위 암릉길을 내려와 동물 이동통로를 타고 덕능고개를 경유해 수락산을 오른다. 수락산도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산세로 산님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는 산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르는 산길엔 침묵이 흐른다. 묵묵히 걷는 산길에서 여러 상념들이 밀물처럼 떠올랐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전망바위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도솔봉을 돌아 주능선 길에 접어든다. 한 밤중이라 아기 코끼리의 잠을 깰까봐 뒷굼치를 들고 코끼리바위를 지난다.
어둠 속의 철모바위는 더욱 검은 빛으로 우리 앞에 당당하게 서서 길손을 맞는다. 드디어 수락산 정상에 서니 지나온 산 능선 길이 실루엣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 ‘백오동’이 ‘105동’이라나
벽오동(碧梧桐)의 꽃말은 사모, 그리움이다. 함께 종주하는 산님 중에 닉네임이 비슷한 여성 산님이 있다. 목천 요물님의 지리산 태극종주 산행기에서 얼굴을 숨긴 채 등장하는 산님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벽오동’으로 닉네임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백오동’이란다.
수락산 홈통바위를 지나 동막골로 내리면서 산까치 뜀박질 주법으로 산을 내리는 그 산님 뒤를 열심히 뒤따라 내달리며 몇 마디 얘기를 나눈다. “닉이 벽오동인줄 알았습니다.” 어느 산님이 “백오동이 무슨 뜻 입니까?” 하고 다시 물으니 “제가 105동에 살거든요.” 한바탕 웃음바다가 동막골을 흔든다. “그럼 친구분(요물님)은 106동에 사나요?” 그래서 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 ‘청춘을 돌려다오’가 아니라 ‘인생은 60부터’
“못 다한 산 사랑도 태산같이 많은데 나에게 청춘을 돌려다오” 이순을 훌쩍 넘긴 세 분의 산님은 나이 컨셉(Concept)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어쩌면 그 연세에 발걸음이 그토록 가벼울까? 동행하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세월을 거꾸로 돌리는 저 힘의 바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도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세 분의 산님들처럼 저런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산길 내내 맴도는 화두 중의 하나였다.
# ‘술꾼’과 ‘산꾼’사이를 넘나들며
세상 사람들은 일 잘하는 사람을 ‘일꾼’이라 부른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을 ‘술꾼’, 산 잘 타는 사람을 ‘산꾼’이라 칭한다. 필자는 산을 잘 타지 못하는데도 친구들은 껄렁한 산꾼으로 알고, 집에서는 필자를 술꾼으로 치부한다. 요즘 ‘술’과 ‘산’을 인생2락(人生二樂)으로 알고 사는 인생이 즐겁기만 하다.
한국의 산하 가족 중에 필명이 ‘술꾼’이란 산님이 진정한 ‘산꾼’으로 술과 산, 인생2락을 즐기시는 분이 아닐런지.
# 여명의 사패산 정상
회룡골 입구에서 이른 조반을 들고 일행은 회룡골과 범골능선을 타고 사패산 정상에서 여명을 맞이한다. 운무가 도시를 구름바다에 밀어 넣고 간혹 보이는 아파트들이 조각 배 처럼 구름바다에 떠 있다. 건너편 불암산과 수락산이 멀리서 우리 일행을 바라본다. 밤을 새워 산길을 잘 지나갔는지 안부를 묻는다.
↑↓ 사패산 정상에서 바라 본 운해
사패능선에서 뒤 돌아 본 사패산
# 도봉산의 백미, Y자 계곡을 지나고
포대능선에서 바라 본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 산객을 맞을 준비를 하는 듯 그 자태를 드러낸다. 도봉의 기암괴석은 참으로 빼어나다. 뜀바위, 칼바위, 오봉 등 기암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산객의 안전을 당부한다. Y자 계곡의 쇠 난간과 쇠줄을 잡고 한바탕 씨름을 한다. 여느 때 같으면 정체가 심할 텐데 이른 시각이라 우리 일행뿐으로 한가하다.
우이암 능선길에서 원통사를 만난다. 절집을 감싸고 두른 암벽위엔 또 다른 오봉 바위가 줄지어 서서 절집을 호위하고 있다. 낙엽 쌓인 산길을 돌아내리니 도봉의 가을도 소리 없이 깊어간다.
↑↓ 포대능선에서 바라 본 도봉의 주능
"천하 무쇠 tdcyoun님 나무 잡고 기 받나요?" ㅎㅎㅎ
↑↓ 도봉의 주봉들
뒤 돌아 본 지나 온 능선길
뒤 돌아 본 칼바위 능선과 신선대
내림길에서 본 오봉
우이암
원통사의 가을
# 삼각산에서 마중 나온 산님들과 날머리를 내려서며
도선사 주차장에서 반가운 만남이 있었다. 조대흠 선배님과 세실리아님이 격려차 마지막 구간을 함께 하기위해 기다리신다. 점심식사를 하고 일행은 깔닥고개와 하루재를 올라 백운산장을 지난다. 산장 가는 길에서 바라 본 인수봉은 또 하나의 큰 바위산이다.
백운산장엔 산객들로 꽉 차 있고 백운대 오름길에도 산님들로 빼곡히 정체를 빗는다. 주말에 삼각산을 즐기러 온 산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백운암문을 통과하여 동장대로 가는 길에도 정체는 마찬가지다. 체력이 바닥날 줄 알았는데 아직까진 버틸만하다.
대남문에 들어서니 황대웅 선배님이 격려차 기다리고 계신다. 사모바위를 지나고 족두리봉 아래에서 또 물안개님 일행의 격려를 받는다. 산하에서 만난 인연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날머리 독바위역에 도착하니 18시간30분이라는 긴 산행시간이 소리 없이 막을 내린다.
산은 필자에게 말한다. "삶이 단조로울 때나 고독을 즐기고 싶을 때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을 땐 언제든지 당신의 품에 안기라"고. (2005.11.09)
백운산장 오름길에서 바라 본 큰바위 얼굴,
인수봉
* -함께 하신 한용수 선배님, 윤도균 선배님, 최윤영 선배님, 양지편사람님, 고순우님, 장충익님, 최구경님, 한서락님, tdcyoun님, 쥐약님, 산하나님, 톰스님, 백오동님, 낮은 울타리님, 해랑님 그리고 김용수님
-그리고 격려차 삼각산에서 함께 하신 조대흠 선배님과 세실리아님, 황대웅 선배님과 후배님, 물안개님, 착한님 그리고 은영님 모든 산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어느 산길에서 다시 또 건강한 몸으로 뵙기를 희망하며 즐산, 안산을 기원드립니다. 천지현황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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