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신산방에서 월악으로 (월악산)
----------------------------------------------------------------------------------------------* 2006.07.08 (토) / K형과
* 수산리-보덕암(08:10)-하봉-중봉-월악산 정상 (영봉)-신륵사(13:10)-덕산매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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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부부와 며칠 전 늦은 밤 올림픽 공원 산책길에서 C형으로 부터 반가운 전화 한통을 받았다. 주말에 특별한 약속 없으면 살구따러 '곡신산방'(谷神山房)에나 가잔다. C형은 10여년 전에 어래산아래 월악산자락 광천마을에 1,000 여평을 사 과수원을 만들어 놓고 콘테이너 두 동을 세워 한채는 숙소로, 다른 한 동은 서재로 '곡신산방'이란 서재명을 붙였다. 주말이면 150여 km나 되는 그 곳까지 한 숨에 달려가 자연 속에 파뭍여 기를 받고 상경하곤한다.
어젯 밤 우리 셋은 서울에서 밤 10시가 다 된 시각에 월악산 자락으로 베낭을 꾸려 반개한 달의 호위를 받으며 곡신산방에 도착하였다. 광천마을에서 산길 오솔길 농로를 따라 300여 m를 올라가 산방에 도착하니 계류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운다. 시각은 자정을 이미 지나 00:30분을 가르키고 있다.
산방은 개울을 앞과 옆에 두고 운무에 쌓여 있는지라 그 밤 정취 또한 그윽하여 뜨락에서 계류소리와 솔바람소리를 들으며 바로 술상을 벌린다. 옛 선비들이 이런 풍류를 즐겼으리라. 주말에 한번씩 내려와 과수원도 돌보고 밤에는 산방에서 독서하는 그의 모습이 상상되어 부럽기 한이 없다. 이런 저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두시가 훨씬 지났다.
산방 숙소에서 계류소리에 눈을 떴다. 이른 새벽 5시에 계곡을 산책하고 오니 주인장은 벌써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두세시간 밖에 눈을 붙이지 않았는데도 몸이 날아갈듯 사뿐하다. 텃밭에서 상치 한줌을 뜯어 쌈을 하니 꿀맛이다. 주인장은 과수원 일을 하기로하고 K형과 둘이서 염치불문하고 월악영봉을 오르기로하고 수산리 보덕암 주차장까지 자가용으로 안내를 받았다.
# 들머리 보덕암을 들어서고
월악산을 홀로, 아내와 둘이서 그리고 어떤 묘령의 아가씨하고 세 차례 오른 적이 있다. 모두 송계계곡 방향을 들머리로 했다가 날머리로 같은 원점 회귀 산행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월악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는 하봉-중봉 코스라 오르기 전부터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보덕암 주차장에서 산방 주인장은 우리를 내려놓고 날머리 신륵사에서 오후1시에 만나기로하고 헤어지는 마음은 미안하고 염치없는 마음 뿐이다.
산길을 돌아 조금 오르니 아담한 보덕암이 나타난다. 절집 대웅전이 산을 뒤로하고 정좌하고 있다. 요사채 댓돌에는 스님의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정적 속에 놓여 있어 인기척 내기가 미안하다. 절집 옆 오솔길로 접어드니 숲 향이 그윽하다.
산길은 월악 여느 코스보다 오름길이 가파르다. 이따금 이슬 먹은 들꽃이 반길 뿐 고요하다. 길 섶에 산수국이 요염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검단산엔 산수국이 7월 하순경에 개화하는데 이곳은 개화 시기가 조금 빠른 듯하다. 까치수염은 벌써 반은 꽃이 털려있다.
아침 반주때문인지 숨이 턱까지 차 오른다. 가파른 오름길엔 땀으로 미역을 감는다. 땀을 훔치며 산아래를 내려다 본다. 운무 속에 마을과 광천이 흐릿하다. 그러나 기분은 숲 속 길인지라 상쾌하기만하다.
# 하봉 릿지
구슬 땀을 흘리며 한 시간 이상을 훨씬 넘겨 하봉 안부에 닿는다. 갈증에 토마토 한 입을 베어문다. 산에서는 갈증을 해소하기로 물도 자주 마시지만 과일을 먹는게 갈증해소엔 더욱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안부에 도착하니 하봉아래에 '등산로 없음' 'No Trails'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그러나 하봉을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엔 영 찜찜하고 서운하다. K형이 "하봉에 올라가 볼까?"하고 먼저 제의한다. 홀로 산행시엔 릿지를 즐기지만 동행인이 있을 땐 내가 먼저 릿지를 제안하지는 않는다. 속으로 "그래, 잘됐다"싶어 그러자고 하고 밧 줄을 잡는다.
하봉 정상에 올라보니 전망이 좋다. 운무에 가렸지만 가끔 씩 바람에 실려 베일을 벗 곤한다. 반대 쪽 암벽 길을 조심해 내려간다. 하봉 우회길이 있겠지 하고. 어렵게 크랙에 의지하고 암릉을 내리니 소로길이 열려 있다. 오솔길을 한 참을 내려가도 우회길은 보이지 않고 내림 길 연속이다.
내려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하봉을 반대로 오른다. 다시 밧줄을 타고 안부로 내려와 중봉 가는 길을 들어선다.
# 중봉-영봉은 운무 속에 너울대고
중봉-영봉가는 길은 좀체로 편안한 길이 없다. 가파른 오름길과 많은 나무계단이 호흡을 거칠게 한다.
영봉 아래 갈림길까지 산행객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갈림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한무리 산님들이 내려온다. 서로 산행인사를 나누며 지나는데 나이 지긋한 한 산님이 머뭇거리다 "막걸리가 좀 남아 있는데 드실려우?" 그러신다. 베낭 속에 물과 과일만 달랑 있던차에 "예, 주십시요,고맙습니다."하고 넙죽 받아 챙긴다. 뚜껑도 따지 않은 포천 이동 막걸리 한통을 선물 받으니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댄다.
이를 본 K형 왈, "술꾼은 얼굴에 씌였나봐, ㅎㅎㅎ" "그러게 말이유"하고 둘이서 마주보며 웃어제낀다.
정상에 오르니 산님 두분이 휴식하고 있다. 이 산님들과 보시받은 막걸리로 목을 축이니 폐부까지 찌르르하니 술내리는 느낌이 시원하다. 흘러가는 운무 속에 산그림은 한 폭의 동양화다. 한참을 서성이니 산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구슬 땀을 흘리며 영봉으로 모여든다. "자, 우린 방 빼줍시다"하고 계단길을 내린다.
# 신륵사 내림길
지도에서 영봉에서 신륵사까지 한시간 10분거리라고 읽었는데 발이 좀 빠른 편이라 한시간이면 되겠지하고 길을 내린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이정목 거리 표시엔 1km라고 표시되어 있다. 또 한참을 내려 왔는데도 0.7km ? 어찌 거리감이 정확하지 않은 듯 하다.
약속시간을 넘겨 터벅터벅 길을 내리니 저편에서 산방 주인이 슬리퍼를 신은채 우릴 마중하러 오고 있었다. 길가에 복분자나무가 많아 복분자 얘길 하다보니 어느덧 신륵사 절집이 보인다. 산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산채비빔밥 한그릇 하러 음식점에 들렀으나 준비가 안된단다.
저녁에 구울려고 덕산면 소재지까지 나가 정육점에서 고기 600g을 사왔으니 그걸로 참숯 숯불구이나 하자고 길을 재촉한다.
# 산방 손님 역할을 끝내고
산방 뜨락에서 참숯에 불을 일궈 늦은 점심과 함께하는 고기맛과 소주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술을 많이 들지 못하는 K형도 거의 한병 가깝게 마시고서는 단잠에 떨어졌다. 잠시 눈을 붙이고 깨어보니 주인장은 제초기를 매고 넓은 과수원의 풀을 거의 다 정리한 상태다. 미안한 마음으로 장갑을 끼고 뜨락의 잡초 몇 뿌리를 뽑는 것으로 일을 막음한다.
산 속이라 어둠이 빨리 오는지라 흐린 하늘에선 빗 방울이 하나 둘씩 내리기 시작한다. 짐을 정리하여 산방을 뒤로하고 월악의 영봉을 바라보며 국도를 달려 충주 시내 중국집에서 짬뽕 한 그릇으로 저녁을 때우고 귀경길에 오른다. (2006.07.08)
# 곡신산방과 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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