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북한산 / 대한민국 명품산 1호

천지현황1 2016. 12. 8. 20:40

북한산 / 대한민국 명품산 1호


* 2016.12.08 /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10:10)-대서문-중성문-대남문-문수봉-사모바위-비봉-향로봉-기자촌공원지킴터-

                    은평경찰서주차장(15:50) ...약 13.5km


대한민국의 명품산 1호를 꼽으라면 단연 북한산을 꼽겠다.30여 년 동안 우리나라 방방곡곡 산을 다니며 느낀 결과 개인적으로 내린 품평이다.서울에 이런 명산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백운대에 서 보라.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들 것이다.비봉에 서 보라.북한산 진흥왕순수비가 역사를 말해 줄 것이다.평일에 만난 북한산은 한적했다.


정치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60평생을 살아왔다.그런데 어제와 그제, '최아무개 국정농단 청문회'를 TV로 시청하게 되었다.질문하는 자들도 대답하는 자들도 속칭 새대가리급이 많았다.30대 혈기왕성하던 시절,연말 송년모임때 모 재벌 총수 자제분 앞에서 술의 힘을 빌어 '재벌은 해체돼야 한다'고 만용을 부렸던 기억이 떠 올랐다.그 자제분도 그룹총수가 되어 증인석에 끼어 앉아 있었다.정경유착의 고리가 과연 끊어질 것인가.청(淸)탁(濁)을 유난히 가리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의문이 들었다.


청문회 7분동안 주어진 질문시간에 옆사람이 질문한 똑 같은 질문을 연거푸 또 한다.새대가리급이 아니고서야 촌음이 아까운데 그 질문을 또 하고 싶을까.질문의 준비가 덜 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팩트와 증거에 근거하지 않고 증인이 거짓말 한다며 자기 손주 나무라듯 호통치는 사람도 있다.천당에 못 갈 사람이라고 구박주는 사람도 있다.염라대왕이 따로 있지 않구나.모르쇠로 일관하는 자도 있다.도대체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이건 완전 코미디판처럼 보이기도 했다.양쪽의 얘기들을 들어보니 어떤 사항이 추측이고 유언비어를 가지고 따지는지 어떤 사항이 진실이고가 대충 줄거리가 잡히는 듯 하다.꼴보기가 싫어 중간에 TV를 껐다.바람직한 미래지향적인 해법이 나와야 할텐데 정치에 무관심한 나도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가 걱정이 된다.내일 탄핵이 가부간에 결정이 되고 나면 모두가 승복하고 혼란이 수습되고 희망찬 미래를 준비해야할 텐데.


어제는 마음이 산란했었는데 오늘은 산길을 걷는 내내 마음이 평화롭다.나는 산이 좋다.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유지

 

사적 제228호. 면적 1,697㎡. 이곳의 비석은 북한산 뒤편 승가사(僧伽寺)에서 위쪽으로 8㎞ 가량 떨어진 북한산 연봉의 비봉(碑峰) 정상에 세워졌는데, 이 비석이 세워진 이래 1,200여 년 동안 잊혀져오다가 조선 말기의 금석학자인 김정희(金正喜)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그는 1816년(순조 16)에 이 비석을 발견하였는데, 당시에는 비 갓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비문은 확인하지 못하였다가 이듬해에 다시 올라가 68자를 확인하고 그것이 신라진흥왕순수비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현재 이 자리는 자연 암반에 얕은 2단의 비좌(碑座)를 내고 그 가운데에는 비신(碑身)을 꽂은 홈이 장방형으로 남아 있으며, 이 비석의 옛터임을 알려주는 표지(標識)가 있다.비석(국보 제3호)은 그간 오랜 세월의 풍화 작용으로 아래쪽 귀가 떨어져나가고 6·25동란으로 인한 총탄자국 등 상처를 입어 이에 대한 보호책이 강구되어 1972년 8월 17일에 경복궁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옮길 당시 이 비석은 아랫부분이 길이 7㎝, 두께 3㎝의 철심으로 암반에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어 이전 작업이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1986년 8월 이 비석은 다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로 옮겨져 보호를 받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Tips :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타 ⇒ 구파발역 1번 출구 - 704, 34, 8772 번 버스 산성입구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