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엿보기

-서울 행 봉고차에 우정을 싣고

천지현황1 2005. 8. 1. 17:01
 

                                        -서울 행 봉고차에 우정을 싣고


향에서 동문회 정기모임을 마치고 서울행 봉고 차엔 11명의 동문들과 캔 맥주 1박스, 진안산 동동주 6병, 홍어회 1통 그리고 나무젓가락 11개가 실려졌다. 가깝게는 며칠 전, 길게는 34년 만에 해후한 동문들의 전송을 받으며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누런 벼가 익은 벌판을 가로 지르며 호남벌을 떠올리며 교가를 기억해내려 애를 써본다. 반백의 머리카락이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주고 차창밖엔 ,석양이 서서히 타임머신을 탄다. 고속도로에 막 진입하자 베스트 드라이버의 곡예운전을 시작되면서  다시 우리는 추억의 오솔길을 걷다 일상으로 회귀하고 만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는 시속 140 키로의 소음에 묻힌 채 휴대폰 전화 벨 소리가 가느다랗게 귓전에 닿는다. 


 “응, 나여. 많이 보고 싶었어. 자기도 나 많이 보고 싶었지?...... 그래그래, 차 광주로 돌릴까? ......언제 끝나는데, 6시?...... 그 날 후로 난 당신이 어찌나 생각나는지, 정말 참느라고 혼났다. ......나 못 참겠는데......자기도 나 많이 보고 싶었어?”  뭘 못 참겠다는 건지, 이건 중학생들 대화인지, 여고생과 대화하는 건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떠드는 소리가 일제히 멈추고 어떤 사람은 눈을 감은 채, 나도 몇 년 전 몰래 사랑을 생각하며, 전화 속의 대화를 엿 들으며 눈을 감는다.  아~ 인생은 이래서 즐거운 건가!  20여분의 대화를 들으며, 탑승객들은 깔깔 대소회를 열었다. 곡예운전 기사는 주행선과 추월선을 수시로 넘나들며 가속페달을 밟아대는데 차 속 분위기는 웃는 소리에 봉고차 천장이 심하게 덩달아 덜렁댄다.


 화 통화를 끝낸 친구는 42세의 옹녀 얘길 꺼낸다. 누가 ‘음탕하고 상스러운 이야기’를 음담패설(淫談悖說)이라 정의 했는가?  음담패설도 그 친구의 입을 통하여 발설이 되면 구수하고 걸죽한 만담이 된다. 입심이 좋은 그는 거시기심도 자랑이 대단하다. 나는 속으로 내심(?)하고 한번 견주어 볼까하고 속내를 보일까 말까를 한참을 망설이다 꾹 참는다. 한참을 깔깔대다 보니, 어느 사이에 창밖엔 어둠이 서서히 내리고, 차는 논산-천안 민자 고속도로 어느 휴게소에 다다랐다. 서둘러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동그랗게 원을 둘러 앉아 차 속 끝내기 만담에 또 한번 깔깔대며 술잔이 돌아간다.


 성들여 싸준 홍어회 맛은 감칠맛이 났다.  “고향 친구들이 좋기는 조오타”  누군가 그리운 동창생들이 또 생각나나보다. 한 시간 동안 휴게소 잔디밭에서 어둠을 벗 삼고, 홍어회를 안주로 우리의 돈독한 우정을 나눈다. “나가자, ㅇㅇ고 15회 동문의 건강을 위하여” 건배 소리에 옆 자리 쉼터에서 쉬던 사람들이 놀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방광의 오줌도 비운 채 다시 봉고차에 탑승한다. 야그 백과사전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상경 길 내내 오가며 깔깔대다 보니 벌써 서울 하늘이 게슴치레하게 보인다.  우리는 아침 출발 장소인 상도동 돌구이집에 도착하여 베스트 드라이버에게 말로만 수고비를 준 채, 간단한 반주(진안 동동주)와 함께  늦은 저녁식사를 하며 우의를 다시 한번 다지고 각 자 삶의 보금자리로 뿔뿔이 헤어졌다.

(2004.10.17)


'세상 엿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ㅇㅇ초등학교 어린이 여러분, “아리아리!”  (0) 2005.08.05
-까치의 사랑/갈매기의 이혼  (0) 2005.08.05
-독서와 운동  (0) 2005.08.01
-미리 써 본 유서  (0) 2005.07.28
-잠자는 신앙생활  (0) 200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