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엿보기

-검단산 봉우리엔 흰 구름만 날고

천지현황1 2005. 7. 26. 08:52
 

-검단산 봉우리엔 흰 구름만 날고


요즘 계속 내리는 비가 이젠 좀 그쳤으면 싶다. 퇴근하여 부어 오른 이빨을 만지다가 풋고추 몇 개를 씻어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창 밖을 보니 이슬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베란다의 등나무의자에 기대어 황인경 지음 소설 목민심서에 마음을 잠시 뺏겼다. 영조 33년 2월,  보령 66세 때 정비인 중전 서씨가 중병으로 죽고, 영조35년 6월 경주 김씨 김한구의 여식이 15세에 중전에 간택되어 66세 임금과 15세 소녀의 야릇한 결합이....  눈이 아파 쉴 겸 책을 덮고, 우산 받고 한강 둔치 산책길에 나섰다. 강물이 많이 불어 둔치 옆 늪지대의 풀과 나무들을 싹 쓸어 새들의 보금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요즘 너무 많이 내린 비 탓에 한강 둔치 길옆도 여기저기 사정없이 움푹움푹 패어져 있다. 비가 내리고 저녁식사 시간이라 그런지 산책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맘껏 바라볼 수가 있어 좋다고 생각하며 길을 걷는데, 저 멀리서 사내 한사람이 자전거를 갈지자로 몰고 아슬아슬 옆을 지나간다. 가던 발걸음을 돌려 눈을 들어 강과 산을 쳐다보니, 강물은 더욱 세게 물결치며 도도하게 흐르고, 검단산 산허리엔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예봉산 산허리에도 흰 구름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멀리 팔당대교는 가로등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한참을 걸어가니 둑에 아까 자전거 타고 가던 그 사내가 자전거를 길에 세워놓고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는 모습이 퍽 애처롭게 보였다. 옆에는 빈 소주병이 장승처럼 서 있고, 그 옆엔 작은 원터치 참치 캔 하나가 속이 빈 채로 비를 맞고 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실연을 당한 걸까, 부인과 싸우고 마음을 삭히고 있는 걸까, 아니면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건 아닌지 흐르는 강물만 하염없이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강물 따라 왜가리 한 쌍이 날개를 치며 어디론지 날아간다. 둔치를 돌아 산곡천 길에 들어서니 청년 너 댓 명이 뜰망으로 물고기를 잡고 있다. 금방  어두어 지는데 저녁식사를 마쳤는지 삼삼오오 우산 받고 산책 나오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난다. 검단산 봉우리에 걸린 흰 구름은 산허리를 돌 뿐 강물처럼 흐르지 않고 안개처럼 피어오르기만 한다.

 

 아파트 샛길 가에 야생화 단지가 있는데 후룩스 한 대가 분홍색 꽃다발을 매달고 있고, 범부채는 목을 길게 뽑은 꽃대에서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지난 번 아내가 하던 것처럼 섬백리향 야생화군락을 손으로 휘저었더니 생긋한 향이 코 속으로 스민다. 지금쯤 아내도 강습 끝나고 나처럼 산책하고 있을까? 한달 일정으로 아침에 율곡 연수원으로 연수간 아내가  불현듯 또 보고 싶다.   (200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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