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엿보기

-이태리포플러가 우는 까닭

천지현황1 2008. 6. 11. 11:57

-이태리포플러가 우는 까닭

 

나는 가끔 심란하거나 조용히 생각을 다듬고 싶을 땐 올림픽공원으로 불쑥 발 길을 옮긴다. 조각 공원을 지나 꽃동산을 비켜 솔 숲 벤치에 앉으면 어느 때나 할 것 없이 이태리포플러가 우는 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한 줌 없는 날에도 그 나무는 높게 서서 비 내리는 꿀꿀한 날의 빗소리처럼 그렇게 슬피 울고 있다. 무슨 사연일까?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촛불을 켜지 않아서 일까? (요즘 광우병 파동 관련 수입 소고기건으로 촛불시위가 한창이다)

 

오늘도 바람 한 점 없는 꿀꿀한 오후다. 삥 둘러 서 있는 소나무들이 세월을 견디며 내 뿜는 솔향이 그리워 또 찾은 그 자리에서 나는 오늘도 이태리포플러의 바람 소리를 듣는다. 솔 잎도 전혀 미동하지 않는데 왠 바람 소리가 그리 큰지, 비 내리는 소리 같다.

 버드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인 이태리포플러는 높이 30미터 정도로 곧게 자라며, 잎은 광택이 난다. 양버들과는 잎의 길이가 너비보다 길고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것이 다르다..
 
옛날 옛적 판문점 미루나무 도끼 사건도 이 나무 사촌이었지 싶다. 바람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서 있었더라면 아니면 키가 조금만 작았더라면 그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을까?  엉뚱한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간다. 꿀꿀한 오후에 듣는 바람 소리가 너무 크고 슬프다. 생각을 방해 받기 싫어 조용히 자리를 뜬다. 아무 생각없이 토성 길을 오르며 뒤 돌아 보니 또 슬피 울고 있었다.'당신 가면 나는 또 누구를 위하여 바람 소리를 내야 하느냐?'고 말을 건네고 있다. 촛불 대신 침묵과 은둔을 택한  나를 보고 어쩌라고. (2008.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