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오후 공원 속으로 (올림픽공원)
비둘기도 오수를 즐기는 텅 빈 공원의 오후 한 낮은 적막하다. 이따금씩 반바지에 구슬 땀을 흘리며 조깅하는 사내, 깊은 모자 챙을 푹 눌러 쓰고 풍만한 엉덩이를 요리조리 유난스럽게 흔들며 지나가는 나이 미상의 아줌마를 제외하면 공원의 오후 한 낮은 고요하다. 간혹 숲 속에서 지저기는 까치소리와 공원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바그너의 음악만이 귓가를 맴돈다.
중나리, 노루오줌, 아기 원추리가 빼꼬롬이 얼굴을 내미는 야생화단지에는 벌과 나비가 한가롭게 꽃과 열애중이다. 숲 속 조각들은 오늘도 늘름하게 그 자리에 서서 나그네를 맞는다. 오솔길을 돌아 가족놀이동산 숲 속에 자리잡고 명상에 잠겨 보지만 까치 한 쌍이 머리 위에서 침입자를 향하여 맹렬하게 짖어대고 있어 정신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명상을 포기하고 최인호의 소설 '영혼의 새벽'을 펼쳐 보지만 눈만 산만 할 뿐 엉뚱한 잡념으로 페이지 넘기기가 미안스럽다. 책을 접고 다시 푸른 숲 속에 한 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보슬비가 물푸레나무잎 사이를 뚫고 얼굴에 간혹 뿌리자 자리를 툭 털고 발걸음을 재촉해 귀가한다. (2007.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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