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협 트레킹 , 옥룡설산 등반기 / 130926-130930
호도협 트레킹
* 130927-130928 / 여강-교두-일출소우-28밴드-차마객잔-중도객잔(1박)-대나무숲-장선생객잔-중호도협-장선생객잔-여강
맑고 밝고 훈훈하다.하늘은 높고 눈이 시리게 맑다.기분은 밝고,마음은 훈훈하다.운남성 리장(여강)으로 날라와 말과 마부들이 걷던 차마고도를 걷노라니 한껏 기분이 상쾌하다.몇 년 전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와서 이듬 해에 가 보기로 약속한 호도협트레킹을 이제야 걷는다.그것도 안타깝게도 아내는 학기중이라 함께 하지 못했다.호도협은 서안이나 사천의 실크로드보다 오래된 옛길이다.운남성의 차를 싣고 장강 상류를 따라 티벳으로 가던 마부들의 차마고도인 셈이다.이 길은 지각충돌이 만들어낸 옥룡설산과 하바설산 사이의 깊고 거대한 협곡으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계곡중의 하나이다.실제 걸어보니 지난 여름 사천성에서 실제로 걷지 않고 차창밖으로 눈요기만 했던 차마고도와는 느낌이 다르다.
이번 호도협트레킹의 들머리,일출소우는 나시족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이 마을까지 리장에서 버스로 두 시간가량을 타고 교두까지 와 미니 밴으로 갈아타고 다시 15분여를 달리다 보면 이 들머리에 닿는다.차에서 내리자 제일 먼저 반겨주는 친구가 있었으니 이곳 들꽃들이다.흰도깨비바늘,산여뀌,덤불쑥,미꾸리낚시,자주쓴풀,개쓴풀,바위채송화 등 하나 같이 우리나라 들풀과 똑 같다.지금부터 해발 2250~2670m의 산상트레일이 펼쳐진다.이틀간 걷는 호도협트레킹은 첫날 중도객잔에서 1박을 한다.
트레킹 초입부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우리나라 종덩굴과 세잎종덩굴을 반반씩 닮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종덩굴이 트레일 곳곳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러 번 눈맞춤을 한다.우리나라 특산식물이라는 왜솜다리도 지천으로 깔려있다.이 왜솜다리는 이미 태항산 산행길에서도 많이 보았던 들꽃이기도하다.절굿대도 하늘을 향하여 둥근 머리를 치켜 세운다.페루꽈리가 꽃을 피우고 객잔 울타리 밖에 서서 보초를 선다.본래 멕시코 원산으로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에 퍼졌고 우리나라 산야에서도 눈에 띄는 메리골드가 이 호도협 트레일에 피어있다니 놀라웠다.어떻게 이 심산유곡까지 왔을까?차마고도 마부의 바지나 말안장에 씨가 무등타고 이곳까지 왔을 것 같다.초여름부터 서리 내리기 전까지 긴 기간 꽃이 피기때문에 프렌치 품종은 만수국,아프리칸 품종은 천수국이라는 정명을 얻은 이 꽃이 호도협트레일에서 만나다니 참으로 반가웠다.
오늘 걷는 길이 15km 안팍 거리인데 들꽃들이 과연 나를 놔줄까 걱정은 조금 된다. 가까이에서 나시족 여인과 눈길을 마주쳤지만,그저 이곳 자연의 한 구성원이려니 생각하고 '니하오?'인사 한마디만 건넸다.그녀도 낮은 목소리로 일상적인 인사투로 '니하오'하고 받는다.일행 중 한 사람이 카메라를 들여대자,찍지말라며 손사래를 친후 집안으로 급히 몸을 숨긴다.일반적으로 여행중 원주민들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곧잘 응해준다.아~,그런데 '이곳 여인은 수줍음을 타는지 아니면 초상권 침해를 아나보다'고 한 마디를 툭 던지고 웃었다.한 참을 걷다보니 웅장한 협곡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민가가 드문드문 산 허리에 모여 있다.거기엔 어김없이 작은 계단논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나는 험하다는 28밴드길을 낙타처럼 반추하며 걸었다.오감을 열어놓고,마음까지 모든 짐을 내려놓자 걷고 있는 이 길이 곧 천국길이다.
어느 구간에선 아무 상념없이 무념무상으로 걸었다.오직 자연과의 합일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쉼터에서 들었다.하늘,산,들꽃 그리고 굽어 내려다보는 저 협곡의 금사강 강줄기 모두 대자연의 위대한 신령으로 다가왔다.문명과 습관에 익숙해진 나를 송두리째 바꾸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지금까지 자유분방한 삶을 살고자 했던 욕망까지도 추하다는 생각이 든다.길들여지고 갇힌 굴레를 왜 이토록 과감하게 걷어차지 못하는가.나는 위대한 자연을 신이라 믿어왔는데,역시 범접할 수 없는 영원한 상상속의 절대자인가!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야생성을 회복하면 나도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는 어느 시인처럼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들꽃들을 더 치열하게 사랑할 수만 있다면 자연과의 합일도 가능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앞으론 길들여진 습관화된 성품을 지켜내는 것 보다 내 안에 잠재해 있을 야성을 찾을 것이다.그리고 자연에게 더 많이 물을 것이다.그리하면 치유와 자기성찰은 덤으로 얻을 터.
7시간을 걸어 오후6시에 오늘의 숙소인 중도객잔에 도착한다.객잔 전망대에 서니 옥룡설산이 바로 머리 위에서 우릴 내려다본다.'오늘 밤 이곳 성산에서 별굿판 즐기고 꿈나라로 잘 들게.'설산이 어두워지는 사위에 별굿판을 펼치며 당부한다.나시족여인이 담갔다는 독주 몇 주전자를 들며 산과 여행과 인생을 담론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밤이 으슥해지자 쏟아지는 별빛을 품에 안고 꿈나라를 찾는다.
나시객잔 벽화 (호도협트레킹 개념도)
옥룡설산의 여러 모습
금사강
중도객잔
다음날 아침 일찍 객잔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중도협까지 걷기 시작한다.어젯밤 과음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맑아서인지 별 이상 없이 산뜻하다.장선생객잔까지 가는 길에도 들꽃들은 수줍은 듯,돌 틈에 피어 있고,하늘은 청명하다.여우구슬,골담초,싸리꽃,더위지기,지리고들빼기를 똑 닮은 들풀,대극,담배풀,떡쑥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들꽃들이 반긴다.트레일에서 서너살로 보이는 나시족 꼬맹이들을 만났다.손주들의 모습이 겹쳐왔다.배낭을 줄이느라 먹을 것이 없다.하는 수 없이 10위안 짜리 지폐 두장을 형제들 손에 쥐어준다.맑은 눈을 꿈벅거리며 그걸 들고 반대 길로 뛰어간다.가게도 없는 깊은 산 속에서 그 돈은 무용지물이겠지만,그냥 아무 것도 손에 들려주지 않고 지나치기엔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방아풀,덩굴닭의장풀,절굿대가 피어있는 산길을 돌아내려 도로변으로 내려섰다.얼마를 걸어 내려가니 장선생객잔에 닿는다.배낭을 맡기고 중도협으로 내린다.급경사길 30여분을 내려 협곡의 물과 만난다.산이 깊어 수량도 많다.아름다운 경관이다.다시 땡볕에 헐떡이며 된비알 오르듯 땀범벅을 하며 객잔까지 한 시간여 걸려 오른다.객잔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미니밴으로 여강으로 귀환한다.여강 가는 좁은 길에는 낙석이 여기저기 많이 떨어져 있어 조금 걱정이 되었다.현지인 운전사는 아랑곳없이 사정없이 난폭운전을 하며 달린다.호텔에 들러 샤워하고 다시 여강고성을 칮았다.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엔 관광객으로 초만원이다.성벽이 없는 옛고성으로 전통가옥들이 줄지어 서 있고,여행객들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 파는 상점과 음식점들이 즐비하다.사방가에서 반주를 곁들여 생음악을 들으며 저녁식사를 한다.호텔로 들어왔다가 잠시 휴식 후 다시 혼자 고성안의 밤거리를 쏘다니다 피곤한 몸을 끌고 호텔로 돌아온다.옥룡설산이 바라다 보이는 여강의 밤은 적막하다.
중호도협의 여러 모습
여강고성
생음악을 들으며 저녁식사
고성의 밤거리
옥룡설산 등반
* 2013.09.29 / 여강-옥주경천-마황패-전죽림-충초평-녹설해-대협곡(5100m)-전죽림-옥주경천-여강
아침 일찍 서둘러 옥룡설산 산행기점인 옥주경천으로 이동한다.그곳의 해발은 2,750 m이다.그곳에서 말과 마부를 배정받아 전죽림까지 3시간쯤 걸려 오른다.옥룡설산 등반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도보로 걷지 않고 3.670 m 지점까지 말을 타고 이동한다.마부는 거의 나시족 여인들이다.간혹 남자들도 있지만 여인들이 대부분이다.나에게 배정된 마부는 제일 나이가 많이 든 할머니 마부다.그래서 나이를 물어보았다.61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나시족은 모계사회이기 때문에 집안 일부터 사회생활 모두를 도맡아 한다.그래서 여자들의 발언권이 센 모양이다.우리나라도 지금 모계사회로 환원해가는 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고 가는 말에게 미안한 마음이다.구불구불한 소로를 돌며 콧김을 내 뿜는다.힘들 때면 갑자기 멈춰서서 태업을 한다.그리고 풀밭이 나타나면 한 잎 뜯고 간다.바로 앞에 오르는 말이 길을 오르다 서서 오줌을 내 갈긴다.나는 1m 뒤에서 오줌 싸는 광경을 뚜렷이 보아야만 했다.암말이었다.내가 탄 말이 숫말인지 자꾸 거리를 두지 않고 뒤따른다.그런데 나는 끝내 내가 탄 말이 숫말인지 확인해 보지 못했다.
말 위에서도 눈은 풀꽃에 꽂혀있다.구름떡쑥,모시대,충남 부여 고란사에서 자란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고란초가 긴 타원형 잎 뒷면에 두 줄로 홀씨주머니를 달고 바위에 붙어 있는 모습도 띄었다.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볼 기회가 없던 놋젓가락나물도 보인다.투구꽃 같은 꽃이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간다.분명 놋젓가락나물이다.그런데 디카를 들여밀 여유도 없이 말이 훌쩍 튄다.해발 3,000 m지점 숲에는 분비나무들이 즐비하게 숲을 이룬다.장관이다.
옥주경천에서 말을 타고
고란초
전죽림 (3,670m) / 이곳까지 말을 타고 와 된장국과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5,100m까지 자유등반이 시작된다.
등반 중간에 디카 밧데리가 나가 오직 심안으로만 식물들을 관찰하며 설산을 오른다.왕초피나무가 눈에 띄고 처녀치마가 꽃대를 올린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목격된다.산소가 많지 않아 고도를 높힐 때마다 고산증이 서서이 온다.어제,그제 이틀간 호도협 2,600m대에서 고산 적응을 한 터라 4,000m가 넘을 때까지는 그리 고산증이 심하지가 않아 견딜만하다.녹설해를 지나고 대협곡(5,100m)을 오르는데는 열걸음을 걷고 잠시 쉬었다가 오르곤 했다.드디어 옥룡설산 대협곡까지 올랐다.여기까지 등정이 가능한 곳이다.옥룡설산은 히말라야 줄기로 해발 5,596 m의 산으로 최고봉은 선자두이다.1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봉우리엔 항상 눈으로 덮혀있다.마치 한마리의 용이 누워있는 형상이라하여 옥룡설산이라 한다.육십평생 산행 중 해발 5,100 m 의 옥룡설산을 오른 감격이 뿌듯하다.안나푸르나 트레킹때와 중국 황룡을 올랐지만 둘 다 4,000 m급이다.대협곡 정상에서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아무 생각이 없다.엄지 발가락이 땡땡 부어 호도협트레킹때는 등산화를 신지 않고 샌들을 신었으나,오늘은 억지로 등산화를 신었다.발가락 통증이 몹시 심하다.그러나 옥룡설산을 올랐다는 희열에 아픔도 묻히고 만다.산을 내리며 만감이 교차한다.서둘러 전죽림까지 내려와 다시 두 시간 동안 말을 타고 옥주경천으로 회귀한다.
다시 내년엔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꿈꾸며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옥룡설산을 오르며
사진출처 : 대협곡 정상(5,100m)사진과 아래 사진은 이 ㅅ ㅇ 님이 촬영해 보내주신 사진임
정ㅈ ㅈ 님 사진촬영 / 옥룡설산 대협곡 (5,10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