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바람따라

대천 바다사랑카페에서 연 작은 음악회 / 2016 송죽회 가을마실

천지현황1 2016. 10. 18. 08:05

대천 바다사랑카페에서 연 작은 음악회 / 2016 송죽회 가을마실  


* 2016.10.15-10.16






2016년 가을마실 모임장소가 대천바다사랑펜션(041-932-8555)으로 정해졌다.가는 길에 익산 영모묘원에 들러 구절초향을 맡는다.대천 가는 길에 논산을 들린다.반야산아래 관촉사에서 은진미륵을 만난다.부여 미암사 시골길에서 만난 엄마표 시골밥상은 '엄지척'표현이 저절로 나온다.펜션에 일찍 도착한 최원장부부와 바닷가 산책길에 나선다.어시장 뒤안길을 돌아 스카이바이크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이 소롯하다.수평선 너머로 막 떨어지려는 석양은 황홀하다.바다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석양 그리고 바다,바다 그리고 석양! 한 마리의 알바트로스가 되어 구만리 창공을 날고 싶다.


서울,목포,광주,익산,정읍 등 곳곳에서 모인 친구들의 얼굴은 빵빵하다.횟집에서 푸는 회포는 넉넉하다.자리를 펜션내 카페로 옮긴다.카페를 송죽회의 작은 음악회 장소로 빌렸다.종달새부부의 무대셋팅이 끝나자 대천의 밤무대는 시작된다.시낭송이 이어진다.어떤 친구는 '차표 한장'인생을 온 몸으로 노래한다.또 다른 친구부부는 '♬언제나 친구 같은 사랑스런 누이가 있어요.♪.'하며 사랑을 절규한다.색스폰을 부는 여인도 멋있다.피아노 연주도 이어진다.나태주의 '풀꽃'시낭송이 뒤따른다.'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이어지는 덕담 속에 대천의 밤은 깊어만 갔다.


바다의 새벽은 '끼룩 끼룩' 갈매기의 울음소리로 동이 텄다.어젯밤 못다한 인생사가 이어진다.황태국 해장국맛이 시원하다.외연도행이 취소되고 태안반도 섬일주 관광유람선을 탔다.비는 오락가락한다.바닷바람이 세다.갑판에서 멀고 가까운 바다와 섬을 바라본다.사자바위,옥새섬,삼형제바위 등이 유람객들과 눈인사를 나눈다.새우깡갈매기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다.물고기 대신 그들이 즐기는 주식은 새우깡이다.내가 술을 탐하듯 바람을 타고 날갯짓을 하며 새우깡을 탐한다.어시장에서 꽃게와 대하를 흥정한다.키토산과 콜레스트롤 숫치를 많이 올린다.비는 부슬부슬 해변을 적신다.건강하게 지내다 다시 만나자며 이별을 아쉬워한다.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천을 떴다.








익산 영모묘원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미륵보살입상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개설]

보물 제218호. 우리나라 석조불상 중에서 가장 큰 불상으로서 크기가 17.8m이다. 일명 ‘은진미륵(恩津彌勒)’이라고도 하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백호(白毫 : 원래 흰 털을 뜻하지만, 후대에 보석 등으로 대체됨) 구멍에서 발견된 묵서(墨書) 기록을 통하여 고려시대인 968년경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 변천]

조선 후기에 찬술된 『관촉사사적기(灌燭寺史蹟記)』에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의 조성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즉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광종(光宗) 때인 970년부터 목종(穆宗) 때인 1006년까지 혜명(慧明) 스님이 장인 100여 명을 거느리고 관촉사와 함께 조성하였다고 한다. 또한 마치 실측이라도 한 듯이 각 부위의 수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상의 높이는 55척(尺) 5촌(寸)이며, 둘레는 30척, 귀의 길이는 9척, 미간(眉間)의 폭은 6척, 입의 크기는 3척 5촌, 보관(寶冠)의 높이는 8척, 대개(大蓋)의 폭은 11척, 소개(小蓋)의 폭은 6척 5촌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미륵보살’이니 ‘관음보살’이니 하는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의 이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불상’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성현(成俔)의『허백당시집(虛白堂詩集)』에 보이는 ‘관촉사’라는 시 외에 많은 시인 묵객들에 의하여 회자되곤 하였다.

[내용]

충남 논산 반야산(般若山) 기슭의 관촉사(灌燭寺)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전통적인 불상이나 보살상의 모습과는 다른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이 존상이 보살상이라는 것은 장방형의 보관(寶冠 : 보배로운 모자)을 쓰고 있으며, 양쪽 귀를 살짝 덮고 흘러내린 세 가닥의 머리카락, 지금과 같이 연꽃 같은 것을 들고 있었을 지인(持印 : 물건을 들고 있는 손 자세), 오른손 손목에 보이는 팔찌가 입증해 준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몸에 비해 머리와 손발이 상당히 큰 편이다. 전체적인 비례도 잘 맞지 않는다. 또한 얼굴에 꽉 차게 표현된 이목구비(耳目口鼻), 부풀어 오른 듯한 양 볼과 이중 턱은 보살상이 갖추고 있어야 할 종교성은 커녕, 살이 찐 세속인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눈썹에 비해 지나치게 길게 표현된 후리부리한 눈, 두터운 입술과 큰 입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어딘지 모르게 미숙하게 처리된 모습은 원통형의 짧은 목, 얼굴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어깨, 그리고 장방형의 돌을 포개어 쌓은 듯한 불신(佛身)에서도 확인된다.

석조미륵보살입상에 보이는 얼굴과 손이 강조된 표현은 고려시대 977년에 조성된 고령 개포동(開浦洞) 마애보살좌상과 981년의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좌상 등 10세기 후반에 조성된 보살상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보물 제217호 부여 대조사(大鳥寺) 석조미륵보살입상 등 고려시대 전기에 충청도 지방에서 조성된 석불 입상의 모델이 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천





















대천 바다사랑펜션 카페에서의 작은 음악회












대천 유람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