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여행기
* 뉴욕행
2003.5.17 나는 동경을 거쳐 뉴욕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딸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2년 전 뉴욕에 있는 Parsons school에 입학했었는데 벌써 졸업을 하게 되어 일주일간의 휴가를 내어 졸업식에 참석 차 가는 길이다. 아내는 교육 공무원이다 보니 학기 중엔 사적인 해외여행이 금지된 터라 혼자 쓸쓸하게 간다.
인천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 (KE 001)는 2시간을 날라 나리따 공항에 도착하였다. 나리따에서 3시간 정도 웨이팅한 후 Continental 008 편으로 갈아타고 미국 뉴악 공항으로 향한다. 직항 비행기 싹이 너무 비싸 여행사의 할인 항공 티켓을 이용하다 보니 동경을 경유하게 된 것이다. 비행기 속에서 많은 상념들이 머릿속을 메운다.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흐르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그려보며 창밖에 펼쳐지는 태평양 상공의 흰 구름을 쳐다본다.
이번 여행은 일정관리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딸아이가 룸메이트 둘과 뉴저지 뉴포트에 있는 한 아파트를 같이 사용하고 있어 잠자리 때문에 여행사의 미 동부 패키지여행 프로그램에 끼어 여행하다가 졸업식 날 뉴욕에 잠깐 들러 졸업식에 참석하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딸아이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개별 출발하기로 하고 딸아이의 아파트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맨하탄을 중심으로 뉴욕 관광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
* 뉴욕 도착 첫날
오후 4:20. 동경을 출발한 후 태평양 상공을 나는 비행시간은 12시간이 걸렸다. 날짜 변경선을 지나니 미국 현지 시각으로 17일 오후 4:00 가 되었다. 나는 타임머신을 탔기 때문에 내 생에서 12시간을 번 셈이다. 돌아 올 때는 12시간을 까먹겠지만. 공항에 마중 나와 있어야 할 딸아이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 한 참을 기다렸다. 열차가 연착을 하여 시간이 늦었단다. 뉴욕에선 연착이 가끔씩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외국에서 만나니 더없이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상봉하였다.
뉴악 공항의 모습은 인천 공항처럼 깨끗하지도 않았고, 나 같은 촌사람에게는 복잡하고 어수선한 모습으로 비쳐졌다. 비행기 속에서 잠을 청해 보았으나 정신만 말똥말똥하여 소설책 두 권만 읽어 치웠더니 몸이 나른하기만 하다. 뉴저지 파보니아역 근처 딸아이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하니 내가 뉴욕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아파트 창 밖으로 펼쳐진 허드슨 강과 맨하탄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샤워를 한 후 나는 딸아이로부터 아파트 내 생활에 대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룸메이트 둘은 집에 없어서 마음이 편했으나 밤에 돌아오면 좀 머쓱할 것 같다. 방 하나에 거실하나인 아파트인데 31살의 민O는 방을 쓰고 29살의 승O와 딸아이는 거실을 가리개로 나누어 둘이 나누어 쓰고 있었다. 다 큰 처녀아이들 셋이 사는 아파트에서 내가 일주일간 같이 잠을 잘 일을 생각하니 참으로 어색했다.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면서 나는 놀라고 있었다. 쌀과 김치만 공유하고 다른 반찬들은 각각 소유한다며 냉장고 문을 열더니 위 칸 하나는 민O 것, 둘째 칸은 승O 것 세 번째 칸은 딸아이 것이라며 다른 것은 손대지 말란다. 화장실 문을 열더니 세면대 서랍장도 3분되어 있다. 게다가 두루마리 화장지도 세 개가 있는데 제일 왼쪽 것, 비누도 욕조위에 있는 것이 딸아이 것이란다. 나는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문화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었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했더니 당연히 그렇다는 대답이다.
맨하탄으로 저녁식사 하러 가자며 서둘기에 따라 나선다. 도착 첫날부터 강행군이 시작된 것이다. 패스 트래인을 타고 33번 가에서 내려 빌딩 숲 몇 블록을 이리 저리 걸어 이스트 벨리에 있는 타로차를 파는 카페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였다. 타로차 맛이 구수하니 좋다. 이 카페의 타로차가 제일 맛있다고 소문 난 곳이란다. 딸아이의 설명으론 한국 신촌 어디에도 타로차를 판다는데 맛이 이만 못하다고 설명한다. 카페를 나오니 벌써 어둠이 깔려 맨하탄의 휘양 찬란한 네온사인 불빛이 시야에 들어온다. 밤거리를 돌아다니다 아파트에 돌아와 딸아이의 룸메이트들과 인사를 나누고 뉴욕의 첫 밤을 맨하탄 불빛을 바라보며 꿈나라로 향한다.
* 씨티투어
아침 일찍 우리는 맨하탄 타임 스퀘어 근처에서 뉴욕 관광 2일 짜리 티켓을 98불을 주고 끊어 시내투어를 시작했다. 첫날은 맨하탄 남쪽 다운타운과 브르클린을 돌았다. 2층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며 구경하고 싶은 정류장에서 내려 이곳 저곳 구경하다가 20분쯤 배차간격을 가진 씨티투어 버스를 탑승하곤 했다. 빌딩 숲을 돌며 가이드가 장황한 설명을 한다.
관광객 중에는 동양인은 드물고 뉴욕에 살지 않는 미국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미국 시골에서 뉴욕을 구경온 셈이다. 46번 가와 47번 가 사이에 있는 브로드웨이의 타임 스퀘어는 맨하탄의 중심부로 느껴졌다. 맨하탄의 남단에 있는 배터리 파크에서 커피 한잔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우린 페리호를 타고 Staten Island로 향한다. 가는 중에 자유의 여신상이 사진 속에서 본 것과는 달리 초라하게 서 있다.
다시 나와 타이완 축제가 Union Square Park에서 열린다기에 그 곳에서 축제를 구경하고 댓잎으로 싼 대밥과 버블 티를 사 공원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딸아이는 투명한 화장실이 있는 카페를 구경 가자며 Spring st.와 Broad st. 사이에 있는 카페까지 몇 블록을 걸으며 유명한 장소들을 설명하기도 하고 미국인의 생활 습관들을 들려주기도 한다.
차를 한잔 마시고 2층에 가서 투명한 화장실 구경을 했다. 밖에서 바라보니 화장실 안이 투명하게 다 보였다. 그런데 사람이 들어가 록킹을 하면 유리가 우유 빛으로 변해 안이 보이지 않았다. 재미있는 설계라고 생각이 든다.
다시 투어버스를 타고 브르클린을 둘러보았다. 날이 어두어 지니 맨하탄의 밤거리는 휘양 찬란한 네온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소호에 유명한 주이쉬 음식점(Olive Tree Cafe)이 있다고 해 또 한참을 걷는다. 그 음식점은 만원이다. 30분을 기다려 안내를 받아 식탁에 앉으니 피곤이 엄습해 온다. 메뉴는 어린 양고기 바비큐와 야채 말이에 진토닉 한잔을 곁들였다. 나는 해외 여행 중엔 될 수 있는 한 현지 음식을 먹는 편이다. 딸아이도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어서 특별한 음식점들을 미리 조사 해두고 스케줄대로 안내하고 있었다.
씨티투어 2일째 우리는 맨하탄 북부쪽(Up-town) 관광에 나섰다. 링컨 기념관을 지나 세인트 존 대성당 앞에서 하차하여 성당을 둘러보았다. 성당은 1892년에 착공하여 2050년쯤 완공예정으로 지금도 부분적으로 계속 건축 중이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술 소장품들이 많이 있다. 고대와 현대 미술품, 조각상, 목 공예품, 모자이크, 세공한 철제 출입문, 어린아이들이 그린 재미난 그림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존 세인트 대성당은 프랑스의 몽마르트 성당 구조와 흡사했다. 지하에 여러 개의 예배실을 두고 있는 모양이 비슷하다.
다시 센트럴 파크를 북쪽에서 남쪽 끝까지 산책을 하면서 기념촬영을 했다. 많은 뉴욕커 들이 조깅도 하고 잔디밭엔 일광욕하는 가족단위가 눈에 많이 띈다. 울창한 숲 속에 호수가 있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론 최고의 공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원에서 산책을 한 후 다시 투어버스를 타고 42번 가에 있는 햄버거가 맛있다는 가게에 들러 햄버거와 치즈 케익 그리고 레몬 레이드를 주문하여 먹었다. 햄버거 두께가 거의 15 cm는 되는 것 같다. 입이 작아 두 손으로 가까스로 움켜잡고 먹으며 미국 사람들이 왜 비만이 많은지를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량이 대체로 엄청나게 많다.
다시 어제 둘러보지 못한 다운타운 거리를 쏘다니며 거리 구경을 했다. 뉴욕에선 신호 위반하는 것이 다반사다. 나도 거리를 걸으며 그 동안 수 십 번은 신호 위반하며 길을 건넌다. 처음엔 이상했으나 보행자 우선 원칙상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돌아오는 길에 모자 전문점에서 마음에 드는 가죽 캡을 35불을 주고 하나를 구입하니 뉴욕에 와서 첫 쇼핑한 물건이다.
저녁식사는 집에 가서 하자고 한다. 냉장고에서 스테이크와 닭다리 등을 꺼내 맛있게 요리를 해 딸이 해 주는 요리로 식사를 하니 더욱 맛이 있다. 아빠가 온다고 미리 시장을 봐 놓고 요리 솜씨를 선보인 것이다. 한국에선 한번도 요리하는 모습을 보지도 않았고 실제로 밥도 안 해본 아이가 미국에 와서 제법 살림살이하는 실력이 기특하기만 하다.
* 음식투어
오늘은 뉴욕에 온지 3일째이다. 그런데도 아직 시차 때문인지 새벽 3시에 잠이 깨어 거실 창 밖으로 보이는 허드슨 강줄기와 맨하탄의 막대그래프 모양의 빌딩모습이 홍콩 야경만큼이나 아름답게 보인다. 멀리 강줄기를 따라 바라보니 뉴 와싱톤 브릿지의 야광 스카이라인과 맨하탄의 빌딩 불빛이 한 장의 사진처럼 뽐내고 있다. 야경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침대에 걸터앉아 한 참을 바라보아도 그야말로 환상적인 모습이다. 아이들이 깰까봐 조용한 발걸음으로 책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독서를 한다. 내가 이 시간대에 불을 킬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화장실뿐이 아닌가! 며칠 동안 강행군한 탓인지 몹시 피곤한데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새벽 6시에 자명종 소리에 기상한 딸아이가 눈을 비벼대며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뉴욕에서도 아침에 딸아이는 한국식으로 밥을 해먹는다. 빵이나 간단한 우유로 때우지 않고 꼭 밥을 먹는 습성이 어쩌면 나를 꼭 닮았는지! 오늘 점심은 맛있는 파스타를 먹자며 식탁에서 쫑알대는 아이가 사랑스럽다. 잠깐만 쉬라며 컴퓨터 책상에 앉는다. 페이퍼 CD를 구워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데 가이드를 하느라고 미루어 오다 일을 하고 집을 나설 모양이다. 그런데 화면에선 계속 치명적인 오류 메시지만 창에 떠 끙끙대며 벽시계를 자꾸 쳐다보곤 한다. 일을 멈추고 가잔다. 나는 끝내고 가자고 했으나 딸아이는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한다며 재촉한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며칠을 풀로 자기생활을 버리고 내 여행 가이드를 할 모양이다. 오늘은 나 혼자 관광하겠다고 말하니 막무가내로 같이 따라 나선다. 뉴욕에서 길 잃어버린다나.
패스 트래인을 타고 가다가 크리스토퍼에서 내렸다. 맨하탄 빌딩 숲과는 달리 길거리가 시골풍이 나는 한적하고 조그만 도시다. 오랜만에 조용하고 한가롭게 길을 걸으며 미국 사회, 문화얘기를 들려준다. 거리 구경을 하다가 시장기가 들었다. 파스타를 잘 한다는 레스토랑을 찾아가니 15평 남짓 되는 음식점안은 벌써 꽉 차 있다. 안내를 받아 구석진 자리에 앉으니 온 몸이 나른하다. 말린 토마토와 소스를 넣은 파스타는 졸깃하여 맛이 있다. 올리브유를 접시에 딸아 샐러드를 찍어 먹으니 맛이 새롭다. 서구인들의 식생활은 우리 동양인하고 많이 다르다. 그네들은 음식을 즐긴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음식을 먹으며 담소하고 깔깔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한편으론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처럼 길거리나 공원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띈다. 식사 때가 되면 노천카페에서 먹어대는 모습들은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배꼽 티셔츠에 터질 듯 미어지는 몸을 블루진 차림으로 입은 아가씨들, 헐렁한 남방셔츠에 진 바지 혁대를 배불뚝이 때문에 사타구니에 걸친 중년의 남자들 모두 비만의 표상들이다. 그렇게 많이 먹어대니 비만이 비켜 가겠는가! 거리를 쏘다니다 밤늦게 귀가하여 딸아이와 진로 및 인생살이, 가족 얘기 등으로 밤을 지샜다. 딸아이와 나눈 대화 속에서 가족 사랑에 대한 확인이 물씬 베어나 사랑이 찐하게 전해왔다.
* 졸업식
오늘은 딸아이가 파슨 스쿨에서 디자인 & 테크널러지를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는 날이다. 졸업식은 메디어 스퀘어 가든 대강당을 빌려 그곳에서 치러졌다. 어제는 과 졸업식에 해당하는 Fine Art 전공자들의 졸업식이 학교에서 치러졌고, 오늘은 학부생, 대학원생 모두 종합 졸업식인 셈이다. 어제는 리셉션도 참석하여 교수, 친구들과도 인사를 했다. 미국인, 남미, 인도, 중국, 타이완, 이태리, 캐나다인등 세계 각지에서 공부하러 모인 학생들이다. 한국 학생들도 여러 명이다.
여섯 명의 친구들과 한인 타운 음식점에서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는데 각 각 주문한 음식값을 더치페이 하려고 하길래 오늘은 한국식으로 하자고 내가 제안하여 내가 100불을 지불했다. 그랫더니 친구들이 카페에서 커피를 대접하고 싶단다. 실은 어제 저녁식사도 딸아이의 다른 친구들과 태국음식점에서 내가 한국식으로 완불을 했더니 이스트 벨리 어딘가에 유명한 카페가 있는데 그곳에서 커피와 음료를 대접받았다.
노천카페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우린 인생을 얘기하고, 삶의 양과 질을 얘기했다. 젊은이들의 생각, 생활상들을 엿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생기발랄한 젊은이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 대화 속엔 꿈이 들어 있고, 내가 가끔 조언할 거리가 발견돼 기쁘다. 미국에서 대학을 8년이나 다닌다는 한 친구는 고생담을 털어놓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졸업했으니 귀국하여 결혼이나 해야겠다는 푸념도 들었다. 미국에서 직장 잡기도 어렵고 국내에 들어와도 취업이 어려운 현실에 많은 고민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중에도 자O이의 미국 생활 경험담은 꽤 들을 만 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고생담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며 기가 펄펄 살아 있었다. 친구 모두들의 앞날에 서광이 비춰지길 바란다며 자리를 떴다.
* 뉴욕출발 하루 전
새벽 산책길에 허드슨 강이 토해내는 물살 소리를 들으며 맨하탄 빌딩 숲을 바라보니 키 재기를 하듯 그렇게 저만치 서 있다. 소형 페리호 몇 척이 맨하탄 38번 가를 향하여 소리 없이 물살을 가르고 있고, 강바람은 내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헝클어 놓는다. 뉴저지 파보니아에서 바라보는 맨하탄과 허드슨 강변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오랜만에 조용한 시간을 내 한가롭게 산책을 하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골몰하다가 아내와 함께 왔더라면 더욱 뜻 는 여행이 되었을 걸 하고 생각하니 못내 아쉬웠다.
오늘은 간단한 쇼핑을 했다. 나는 여행지에서 쇼핑하는 걸 싫어한다. 그런데도 어제는 딸아이의 졸업선물을 사 주고 싶어 내가 안내를 부탁했다. 핸드백 한 개와 머플러를 샀다. 내가 입을 진 바지도 하나 사고, 티셔츠도 샀다. 딸아이의 물건 고르는 모습이 아내와 닮은 점이 많아 피는 못 속이나보다고 생각했다. 한 참을 기다려야 하는 나는 지루했으나 참을 수밖에 없다.
맨하탄 거리를 쏘다니며 거리구경, 상점구경 등으로 피로해진 몸을 끌고 집에 돌아와 내일 귀국 길 짐을 싼다.
* 후반생을 어떻게 살까?
뉴욕에서 동경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뉴욕 일정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창 밖엔 뭉게구름이 둥실 떠가고 한쪽에선 거품처럼 자꾸 생성된다. 기내식이 한두 번 나오고 나니 벌써 비행기는 하늘을 여섯 시간 반을 날았구나. 기내 벽의 맵 인디케이터는 미국 본토를 벗어나 태평양 상공으로 막 진입하려 하고 있다.
딸아이의 졸업식 축하차 뉴욕에 와서 나는 뉴욕 관광을 즐기고 돌아가는구나! 맨하탄을 남에서 북으로, 동에서 서로 헤집고 다녔고, 배터리 파크 포트에서 페리를 타고 스테이튼 아일랜드에도 가 보았다. 부르클린도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구경했다. 그림 같은 유럽풍의 마을 브롱스의 유미가 살았던 집도 가보았다. 흑인가로 알고 있었는데 이 마을은 이태리 촌이란다. 마피아들이 보호해서 흑인 유입이 안 된 곳이라나. 거리가 너무나 깨끗하여 산책하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조깅하던 여인을 불러 세우고 사진 한 컷을 부탁했다. 물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제자리를 뛰며 정리 운동하는 여인에게 두 동양인의 모습은 무례했을까? 우리는 서로 “해브어 굿 데이” 하며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퀸즈도 주마간산 격으로 보았다. 일주일간의 뉴욕여행은 강행군의 일정이었다.
내가 무슨 미식가라고 딸아이는 맛있는 음식점들을 사전 조사해놓고 차례대로 맛을 보여준다. 내 인생에서 딸아이와 이토록 많은 시간을 단둘이만 집중 밀착해 가진 시간이 없었다. 길에서, 레스토랑에서 나눈 많은 대화는 우리가 친한 부녀사이임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서로의 생각들을 주고받으며 나는 딸아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고, 이미 성숙할 대로 성숙해버린 어른으로 변모됨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시간들이었다. 가족이라는 끈을 다시 동여매는 순간을 가진다. 갑자기 아내 생각이 났다. 아내는 나 없이 일주일간 어떻게 지냈을까? 편했을까? 외로웠을까? 이번 여행을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내 후반생을 어떻게 살까하고 여러 상념 속에 잠겼다가 책을 펼치니 선조 시대 송순의 시구가 눈에 들어왔다.
‘꽃이 진다고 새야 슬퍼 마라.
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
가노라 희 젓는 봄 새워 무엇하리요‘ (200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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