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토요일의 신선놀음 - (검단산-용마산)

천지현황1 2005. 7. 27. 18:58

 

 

<숲속의 단상 6> 토요일의 신선놀음 - (검단산-용마산)

 

검단산정상에서 바라본 용마산

  

 안창모루에서 시작한 산길엔 어제 내린 눈 때문인지 땅이 촉촉하게 젖어있다. 들머리를 막 지나니 겨울 차비를 서두르는 나목 군상들이 초라하게 서 있다. 가을이 여인처럼 떠나버렸나! 어슴푸레하게 열린 나목 사이로 산새들이 아침잠에서 늦게 깼는지 조잘대고 있다. 저쪽 나무 가지에선 청설모 두 마리가 벌써 사랑 싸움을 하는지 쫒고 쫒기고 있다.

  

 흐르는 강물이 마치 세월처럼 기약도 없이 먼 바다로 떠내려간다. 나는 지금 여느 때처럼 또 토요일을 맞이하여 검단산을 오르고 있다. 검단산, 용마산 연계산행을 계획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검단산 5부 능선 바위쉼터에 잠깐 앉아 숨을 고른다. 팔당 땜 수문을 거쳐 팔당대교를 막 지나는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화순 운주사 와불(臥佛)이 예봉산과 검단산 사이에 강물이 되어 누워 있다. 강물이 왜 와불로 보이는지 검단산에 올라 강물을 볼 때마다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본다. 산새 몇 마리가 역 바람을 타고 힘겹게 날개 짓을 해댄다.

  

 작년 하남에 1년 살며 자신과의 약속, 1년 안에 검단산 100회 산행약속을 지켜낸 것을 흐뭇하게 생각한다. 나와의 약속을 확실하게 지켜낸 것이다. 아내와 같이 또 직장 동료들과 같이, 때로는 혼자 더 많이 이 산 길을 오르며 나는 무념 무상으로 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들고 올랐다. 오늘 같이 토요일엔 다른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엔 어김없이 산을 찾는다. 비 오는 날, 눈 내리던 날,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던 날, 청명한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맑았던 날의 검단산을 나는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

  

 오늘은 산객들이 뜸하다. 주 등산로를 제외하고 샛길을 모조리 막아놓고 입산통제 팻말을 군데군데 붙여 놓았다. 서울 근교 산들은 주말엔 산객들로 붐빈다. 검단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에 10여명의 산객만 만난 오늘 같은 산행 길은 드문 경우다. 8부 능선부터 어제 내린 눈이 낙엽위에 쌓여 있다. 잠시 아이젠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걱정해 본다. 그러나 영상의 날씨 탓에 하산 길엔 녹을 것이라고 위안을 한다.

  

 정상에서 땀을 식히니 상쾌한 기분이 든다. 고개를 반대로 돌려 서울 하늘을 쳐다보았다. 북한산 산자락을 중심으로 검은 구름 띠가 무지개처럼 아롱져 있다. 참으로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광경이다. 정상엔 10여명의 산님들이 휴식 중이다.

  

 어렴풋이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었다. 가깝고 먼 것이 그 까닭이리라. 올망졸망 병풍처럼 빙 둘러 쌓인 높고 낮은 저 산들의 모습들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다. 겸재 정선이 검단산을 올라 보았다면 운무에 쌓인 두물머리를 배경으로 진경산수화 한점은 남겼을 것이다.

  

  눈을 들어 용마산을 바라본다. 운무에 쌓인 탓에 산이 더 정겹게 다가온다. 용마산을 향하여 조용한 발걸음을 내 딛는다. 지난 늦 봄 철쭉꽃이 낙화하여 융단을 깔아 놓았던 그 조용한 길이 이젠 낙엽으로 이브자리를 깔아 놓았다.

  

 고추봉에서 잠시 땀을 식히는데 산곡동을 들머리로 시작한 부부 산님을 처음으로 만났다. 한적한 오솔길을 무심으로 걷는다. 까마귀 한 쌍이 소리치는 바람에 잠시 고요에서 깨어났다. 검은 색이 까마귀 옷 색깔보다 더 검지는 않을 것이다. 까마귀를 떠나보내고 다시 고요 속에 묻힌다. 용마산 정상에서 잠시 다리를 쉰다.

  

 은고개에서 올라온다는 7명의 젊은 직장인 산악회 회원들과 만난다. 산에서 그것도 인적이 뜸한 곳에서의 만남은 왜 그리 반가운지. 차를 나눠 주니 오가피주를 석 잔이나 돌려준다. 즐거운 산행하라는 인사들이 교환되고 또 고요 속으로 들어간다.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락 내리락 하기를 몇 번하니 오가피주 탓인지 다리가 풀린다.  날머리가 보인다. 광지원 초등학교 옆길을 돌아 해초나라(음식점)에 들러 동동주 한잔을 하니 시장기와 네 시간 반의 산행길 피로가 가신다.

  

 나는 토요일을 요일 중 제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의 일을 아무 부담 없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별난 약속이 없으면 어김없이 산을 찾는 날이기 때문이다. 또 하산 후 송글송글 벤 땀을 따뜻한 온천욕으로 씻거나 대중탕의 온탕 냉탕에 씻는다. 그리곤 도서관에 들러 일주일동안 읽을 책들을 고르는 재미를 빠트릴 수 없다. 노자의 철학도 좋고, 다산의 산문집도 좋다. 요즘 젊은 새내기들의 청춘 연애소설도 재밌다. 이해인 수녀의 글모음도 청순하고, 법정 스님의 글 또한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느끼게 한다. 이경교님의 글 또한 맛깔스런 뚝배기 맛이랄까, 아니 차라리 관찰력과 은유법의 비교 표현이 돋보인다.

  

  토요일 점심엔 아내와 맛있는 잔치국수에 이동 막걸리 한 사발은 나에겐 차라리 보약이다. 그리고 나른한 몸을 등나무 의자에 기대 잠깐 눈을 감으면 ... 아- 나는 오늘 하루 신선놀음을 한 셈이다. 토요일은 이래서 즐겁고, 나는 길 아닌 길을 오늘도 걷는 게 즐겁기 만하다.        (2004.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