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여년 전의 팔순 시골 장로님의 졸업식 축사가...
간 밤에 내린 비로 하늘이 맑게 개었다. 창문 밖 삼각산이 코앞에 다가 온다. 멀리 천마산도 우뚝 산세를 자랑한다. 하늘금도 또렸하다. 산 마루금이 더욱 선명하다. 요즘 세상사는 재미가 하나 늘었다. 가끔 흘러가는 마음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뭔가 쫒기듯이 사는 삶에서 벗어나 세상을 관조하며 자유를 만끽하니 나이듦도 서럽지 않은 것 같다.촌음을 아끼며 시간관리하던 지난 세월이 부질없는 일장춘몽처럼 그렇게 삶을 비켜간다. 며칠 전엔 뜻하지 않게 건강검진에서 대장에서 선종이 발견되었다. 항상 건강한 체질이라고 자부해 온 터라 조금은 으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주변 가족 친지들의 아픔과 잦은 병치례를 많이 목격했으나 정작 자신은 일생동안 병원신세를 진 것이 고작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기억이 없다.
부모님으로 부터 건강한 신체를 받은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학창시절 다발성근육염으로 수술한 기억과 사회 초년병시절 치질수술, 몇해 전에 요로결석 파쇄 그리고 그제 선종 제거수술 받은게 병원신세 진 전부이니 얼마나 복 받은 인생인가 감사한 마음 뿐이다. 50여 평생 살다보니 육체도 많이 노쇠화하나 보다. 그러나 마음만은 아직도 이팔 청춘보다 더 젊다. 인생 2막을 어떻게 살까 고민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민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사는 삶은 인생의 덤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요즘 미륵신앙에 관한 책을 보다가 고향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필자의 고향은 미륵신앙의 성지, 김제 모악산아래 금산사가 자리한 곳이기에 더욱 고향생각이 나는지도 모른다. 회귀 타임머신을 타니 갑자기 40여년 전의 초등학교 시절로 인도한다. 시골 금산교회(주석1) 장로 한 분이 팔순의 연세에도 쩌렁쩌렁하게 졸업식 축사를 하시는 기억이 갑자기 회상되었다. 정든 교정을 떠나는 졸업생들에게 장로님의 축사 말씀은 지금도 필자의 귓전을 울린다. 지금 기억하기로 두가지 말씀이 기억된다. 한 말씀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기회가 세번 오는데 기회가 올때 잘 잡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기회란 놈은 뒷 머리가 대머리"란다. "그래서 우리가 기회를 잡으려하면 성큼성큼 다가오다가 막 잡으려는 순간 뒤로 훽 돌아선다"는 말씀이셨다. 잘 준비하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결코 놓치지 말고 잘 잡으라고 하신다. 또 한 말씀은 천당과 지옥에서의 식사장면을 소개한다. 천당과 지옥에 가면 식사때 1 m쯤 되는 긴 젖가락을 사용하는데, 지옥에서의 식사 장면은 가관이란다. 1m나 되는 젖가락으로 자신의 입 속으로 아무리 젖가락질을 하려 해도 음식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지옥에서의 식사 장면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런데 천당에서의 식사 장면은 조용하고 화기애애하게 앞에 앉은 사람에게 긴 젖가락으로 서로 음식을 떠 먹여 준단다. 천당에서는 아무리 어려운 조건이라도 상생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어디 천당과 지옥이 따로 있겠는가? 마음이 슬프고 괴로우면 그 때 그 곳이 바로 지옥이요, 마음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 할 때 그 때 그 곳이 바로 천당 아니겠는가? 미륵 신앙 책을 보다가 왜 갑자기 시골 장로님의 졸업축사가 기억났을까? 요즘 회상의 기회가 점점 많아지는 걸 보니 나이듦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쓸쓸한 마음이 든다. 과연 나는 장로님 말씀대로 다가 온 기회를 잘 잡았을까, 아니면 놓쳤을까를 생각해 보니 명쾌하게 결론이 나왔다. 아직 나에겐 기회가 한 번 더 남은 것으로. (2006.05.07)
(주석1)...금산교회 : 전북 김제시 금산면 용화동 소재,지주였던 이자익과 마방 출신 조덕삼이 만든 교회,1908년 부활절 지내고 헌당예배.
ㄱ 자형 조선집인 교회는 전북문화재 제136호 지정.교회 실내 동편에는 여자 신도,남쪽에는 남자 신도들이 예배보던 공간.
지주와 머슴이 나란히 만든 교회로서 100년이 넘는 전통.머슴 조덕삼은 지주 이자익의 배려로 훗날 신학교 졸업하고 목회자되 어 1915년 금산교회 2대 목사로 부임했던 역사적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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