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대마도 여행기 (역사탐방 및 시라다케 산행)
* 2008.10.10-10.12
* 여행 일정
첫날 : 05:25-08:25 서울발 부산 (KTX)
09:50-13:00 부산발 대마도 이즈하라 항 (Sea Flower 2 호)
13:40-17:30 이즈하라 동네 한바퀴 (수선사,국분사,나카라이토슈 문학관,마리아 신사,대마 역사 자료관,덕혜옹주 결혼 봉축비)
18:30-20:00 석식(어부식당,해물 바베큐)
호텔 숙박 : 츠다야 호텔
둘째날:시라다케 산행(카미자카 들머리 08:40-삼나무 숲 오솔길-정상-스보 날머리 13:25)
산행 후, 관광 (만제키바시/에보시타케 전망대(대마롱 베이)/와타즈미 신사)
호텔 숙박 : 상대마장
세째날:관광 (원통사 /한국전망대/미우다 하마 해변)
13:00-14:20 히다카즈 항 출발 부산행 (드림 플라워호)
17:20-20:20 부산발 서울 착 (KTX)
* 이동경로:주황색 선 따라 (이즈하라-히타카츠)
대마도
국경 다운 국경도 넘지 않고 씨플라워 페리가 부산 앞 바다를 미끄러져 망망대해를 향해 물살을 가르자 국경의 섬이 100여km나 길게 누워서 이방인을 바라본다.섬이 시야에 보이기 시작하고도 족히 한시간 반은 더 걸려 북단의 이즈하라에 도착한다.호기심이 발동할 듯도 한데 그저 무덤덤하다.아마 이웃 동네에 마실가듯 그런 기분이다.그러나 한편으론 그곳엔 어떤 인간이 무엇을 하며 살고 자연 생태계의 모습은 어떠하고 어떤 문화 속에서 일상을 지낼까? 하고 궁금증을 불러오기는 하다.문화 역사는 우리와 어떻게 다르며 생활풍속은 어떨지,모든게 궁금하다.특히 대마도는 더 호기심이 간다. 역사를 과거로 돌려보면 고려,조선시대 우리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섬,대마도. 한 때는 우리의 영토가 아니었던가.특히 대마도는 부산에서 49.5㎞ 거리로 제주도(85㎞)보다 가깝다. 고려 말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쌀 ·콩 등을 답례로 받는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왜구가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출몰하자, 조선시대에 들어와 회유책 ·귀화정책 등을 쓰다가 세종 때에는 이종무 장군이 원정에 나선 바 있다.그러나 지금은 일본땅이다.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망발을 펴자 우리 누리꾼들은 대마도도 우리땅이라고 주장하자는 이론을 편다.하지만 대마도는 일본이 지배하고 독도는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니 영토의 귀속 여부는 명확하다.그런데도 일본의 망발은 귀에 거슬리나 대응 가치조차 없는 일이다.
대마도는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쓰시마 시에 있으며, 면적은 708㎢ 로 울릉도의 약 10배, 제주도의 약40%, 섬 전체 89%가 울울창창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산림지대다. 인구는 약 4만 5천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중심도시는 이즈하라[嚴原]이며 이곳에 섬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이 거주하고 있다. 중앙부의 아소만[淺茅灣]과 인공적으로 굴착된 만제키세토[萬關瀨戶:瀨戶는 水路]에 의해 상 ·하 두 섬으로 나뉘어져 있다. 물론 태초엔 한 섬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러일전쟁시 만제키 다리로 해협을 갈라 두 섬으로 만든 셈이다.섬 전체가 해발고도 400m 내외의 산지이고, 산지의 계곡들은 곡벽이 험준하다. 예로부터 한국과 일본국 사이의 중계지 역할을 해왔다. 동서 폭은 18㎞, 남북의 길이 82㎞이며 본 섬은 두 개의 섬으로 나눠져 있고, 이를 만제끼 다리가 연결하고 있다.우리는 둘째날 산행을 마치고 히타카츠로 올라가는 길에 버스에서 내려 잠시 이 다리를 도보로 통과하며 일본인들의 치밀한 성격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둘린다.
뒤에 쓰시마도주(島主) 소[宗]씨의 간청으로 조선이 삼포(부산포 ·염포 ·제포)를 개항하자, 쓰시마는 에도[江戶]시대 말기까지 대(對)조선무역을 독점했고,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 수군의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으며 러일전쟁시에는 아소만의 지형을 이용한 쓰시마해전으로 대승을 거둬 러일전쟁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중심도시 이즈하라는 13세기 중엽 이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에 이르기까지 쓰시마를 지배해온 소씨[宗氏] 일족의 거성(居城)이 있던 곳으로 성터와 그 시주사 등이 남아 있다.
현재 육상, 해상, 항공 자위대가 주둔하고 있는 일본 최 서북단 군사 요충지이자 이끼섬과 더불어 일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일본 관광객이 왕래하고 있으나 요즘은 한국 관광객들과 낚시꾼들의 왕래로 그네들의 경제생활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대학은 없고 고등학교가 세개 뿐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그러다보니 젊은층은 본토로 빠져나가고 노령화가 가속화 되고 있다. 인공림의 대부분은 쓰기(삼백나무)와 히노끼(편백나무)이며 이를 경제가치로 환산하면 일본 국민이 3년 동안 먹을 식량과 교환이 가능할 정도로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65조원 정도나 된다고 하니 부럽기까지 하다.
<대마도 포토기행>
첫날 씨플라워호를 타고 세 시간의 바다 길을 흘러 하대마도의 이즈하라항에 도착하여 첫 관광으로 이즈하라 동네 한바퀴 돌기를 시작한다.우리나라의 작은 어촌을 연상케 하는 이 도시는 대마도에서는 인구의 반에 가까운 2만여명이 거주하는 큰 도시인 셈이다.항구에서 짐은 츠다야 호텔 여직원의 작은 밴에 실려 보내고 골목길 도보로 우린 최익현선생의 얼이 밴 수선사를 제일 먼저 찾았다.
이 배를 타고 대마도로 출발하여 이즈하라에 도착하고
항구를 벗어나 일행은 동네 한바퀴 돌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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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사는 백제의 스님이 건너와 창건하였다는 얘기도 있고, 백제의 비구니 스님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이 절엔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수선사가 중요한 이유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며 충신이었던 면암 최익현 선생(1833-1906)이 74살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1906년 의병을 일으켜 항일 운동을 하다 일본군에 붙잡혀 대마도로 유배된다. 선생은 뜻을 굽히지 않고 단식 투쟁을 하다 그해 11월 순국을 하여 면암 선생의 주검은 이곳 수선사에서 장례를 치른 뒤 부산으로 운구된다. 최익현 선생의 의병일행은 서울로 압송되어 우리 사법부가 아닌 일제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된다. 대마도 감금 3년이 그렇게 시작되었고, 선생은 단식하다 1907년 1월 1일 한 많은 적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영구는 구포, 김해, 성주, 공주를 거쳐 15일만에 정산(定山)에 도착하여 그해 5월(음 4월 초 1일)에 노성 무동산(魯城 舞童山)에 안장되었다.이처럼 대마도는 최익현 선생과 선연 아닌 악연이 깃든 역사의 땅이기도 하다.
일행은 수선사를 나와 국분사를 향해 골목을 걷는다.국분사 일주문의 지붕이 우리나라의 기와지붕처럼 지어져 있어 반가웠다.우리 문화가 곳곳에 배어 있음을 본다.돌아 나오다 비를 만났다.골목 모퉁이에서 한 노인이 나와 일행 한사람에게 자기집에 있던 우산 하나를 건네주는 훈훈한 인정도 느꼈다.
다시 골목길을 돌아 나카라이문학관을 들려 잠시 쉬었다가
일본의 신사문화를 보러 하지만궁신사에 들러 마리아신사를 구경한다.
대마역사자료관에서 조선통신사비와 고려문 등을 둘러보고
조선왕조 비운의 옹주였던 덕혜옹주의 삶이 서린 현지에 섰다.
조선왕조 26대 고종의 왕녀 덕혜옹주는 1931년 5월 19살 나이로 대마도 번주 소우 타케유키(宗 武志)백작과 결혼하였다. 이 비는 두 분의 성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대마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둘 사이에 딸 正惠를 낳아 서로 신뢰와 애정이 깊었으나, 양국의 관계는 갈등이 심화되어 1955년에 이혼하기에 이른다. 덕혜옹주는 1961년 귀국후,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별세하였다.덕혜옹주의 딸이 18살때 자살 하였다고하나 일본군에의해 살해되었다는설이 있어 역사학자가 밝혀야할 부분으로 덕혜옹주의 상심이날로 깊어 실어증등 정신에 이상이와 병으로 고생하여 고국으로 정부에서 모셔왔다. 이런 쓰라린 역사가 일본섬에 남아있어 마음 한 구석 쓸쓸함이 전해온다.
첫 날 동네 한 바퀴 돌기가 마치자 어둠이 내리는 길을 돌아 포구에 있는 조그만 어부 집에서 회를 곁들여 한 잔 술에 해물바베큐를 즐기고 여장을 츠타야호텔에 풀었다.
둘째날
간밤에 호텔을 빠져 나와 시내 밤거리를 배회하다 호텔에 들어왔으나 착잡한 기분으로 잠을 설쳤다.보통 여행할 때는 단잠을 자는 것이 상례였으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까지 여행했다가 다시 동네 선술집에 붙어 있던 '한국인 입점 금지'대자보(취객 난동사건)까지 뒤죽박죽 상념들이 잠을 좇았다.좁아터진 잠자리 탓 만은 아니다.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을 설치고 이른 새벽 호텔문을 빠져 나와 아침 식사 전 까지 홀로 다시 동네 배회 길에 나선다.어둠 속의 거리는 고요하다.정적 속에 저 멀리서 신문 배달하는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옆을 지난다.웃음 띤 목례에 '안녕하세요'라고 화답하고 골목길을 걸어 호텔로 돌아온다.
오늘은 시라다케(519m) 산행하는 날.
(출처:부산일보) |
가벼운 배낭에 도시락과 생수 한 병을 지급받고 삼나무 숲 길을 돌고 돌아 들머리 타미자카에 도착한다.일행은 출발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삼삼오오 줄을 지어 트레킹을 시작한다.향기로운 숲에서 히노끼향이 코 끝을 스며들고 기분은 한껏 즐겁다. 28명 전원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라다케 정상을 밟았다.일행 모두의 얼굴엔 기쁨이 빵빵하다.
산행후 히타카츠로 이동하면서 만제키바시를 도보로 건너고
안내판에 "1900년에 완공된 이 운하는 대마도 동부의 구스보 연안과 서부의 아소만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한글로 된 안내문에도 ‘메이지 33년(1900년) 군사상의 이유로 당시의 제국해군이 만제키 지협을 함선이 통행할 수 있도록 개삭(開削)하여 철교를 만들었다"고 씌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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