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본 일주 (2007.01.31-02.04)
* 니카타(1)-닛코-도쿄(1)-하코네-신후지-토요하시(1)-교토-오사카(1)-간사이
여행은 설렘이다
나이가 들어도 설레이기는 마찬가지다. 여행은 일상에서의 일탈이기도 하고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의 삶에 생동력을 불어넣는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뭐니 뭐니 해도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다 주는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서 바쁜 일상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굳이 여행 목적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호기심과 즐거움 그리고 설레임을 동반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2007.01.31 오후 5:30 발 KE763 편을 타고 아내와 함께 일본 여행길에 나선다. 해마다 방학을 이용하여 해외여행을 즐기는 아내는 겨울방학 말미에 일본여행을 하자고 하기에 자유여행을 할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패키지 여행으로 변경하고 길을 떠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여행 코스가 18년 전에 직장에서 떠났던 코스와 거의 같다. 조금은 신선하지 않으나 세월이 흘러 기억 속에 가물가물한 추억을 끄집어 낼 수도 있겠다 싶어 군말없이 따라 나선다.
니카타 시나노강의 밤 풍경을 즐기며
인천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한시간 30분을 날라 어둠이 깔린 니카타 공항에 승객을 토해낸다. 우리에게 감정상으로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은 시간적 개념으론 아주 가까운 나라이다. 김정산의 역사소설, '삼한지'를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불고기 백반 기내식이 나온다. 와인 한 잔을 청했으나 짧은 거리 탓인지 캔맥주 밖에 없다며 '버드와이즈' 한 캔을 건네준다. 느긋하게 맥주를 즐기며 인디케이터 맵을 바라보니 벌써 동해를 건너가고 있다. 상념에 잠긴지도 얼마되지 않아 비행기는 막 혼슈 본토로 막 진입 중이다.
니카타라는 도시는 만경봉호 입항지라 귀에 설지 않다. 아마 핵 문제로 지난 몇 개월간 그 배의 일본 출입이 금지되었다. 최소한의 연료와 빈 배로 입항하여 기름을 연료 탱크에 가득 채우고 생필품도 바리바리 싣고 떠날텐데 몇 개월간 입항하지 못해 많이 물자 부족에 시달릴 것이다. 어둠이 깔린 니카타 공항은 작은 공항이다. 얼마 전 비가 내렸는지 보도가 촉촉하게 젖어있다.공항에서 버스로 20여분 달려 니카타시 오쿠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 11층에 자리한 방 커텐을 열어제치니 환상적인 전망을 선사한다. 시나노강(Shinano River)이 동서로 흐르고 호텔 바로 앞엔 반다이다리(Bandai Bridge)가 강을 가로 지르며 멀리 시내를 배경으로 가로등이 졸고 있다. 인적도 끊긴 길에 간혹 차 몇 대가 다리를 지날 뿐이다.
아내와 서둘러 호텔을 빠져 나왔다. 시나노강변을 거닐기 위해서 작은 도로를 건넌다. 강변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니 멀리서 자동차 한대가 오면서 아무도 없는 작은 도로 신호등에 멈춰서서 파란불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모습이 교통규칙을 잘 지키는 그네들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나도 귀국하면 아무도 보지 않는 야간에 작은 길에서도 교통도덕을 잘 지켜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둑을 따라 산책하다가 허기를 느껴 편의점을 찾는다. 호텔옆 도로는 어둡다. 그리고 8시를 조금 지났는데도 인적이 없다. 골목을 몇 개 돌아도 편의점이 보이질 않는다. 건너 편에 직장에서 돌아오는 듯한 한 젊은이에게 편의점을 묻는다. "스미마생. 페이니 샹디엔가 도코데스까?" 그 젊은이는 알아듣지 못하고 두리번거린다. 다시 "컨비니언트 스토어가 도코데스까?" 하자 "하이, 콘베니언또 스토아" 하면서 영어로 "고 스또레이또, 턴 투 더 롸이또..앤도 ..."하고 알려주자 "아리가도우 고자이마스"하고 인사하고 헤어진다. 아내와 길을 가면서 "왜 편의점 발음을 못 알아 들었을까"하고 얘기하다가 문득 중국어 단어로 편의점을 물었으니 그 젊은이가 헷갈렸나보다. 나도 어설픈 외국어 실력에 중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쓴 것을 나중에야 알고 헷갈린 쪽은 그가 아니라 바로 나인 것을 나중에야 알고 한 참을 깔깔 웃어댔다. 편의점에 가서 기린 캔 맥주와 원컵 정종 그리고 야식용 먹거리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와 시나노강을 내려다 보며 오랜만에 그윽한 밤 풍경을 즐긴다.
닛코를 보지 않고 일본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고
오쿠라 니카타 호텔에서 첫 밤을 보내고 오늘 아침 일찍 닛코 국립공원으로 이동한다. 호텔에서 막 출발할 때 진눈개비가 내린다. 니카타에서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터널 몇 개를 지나자 설국이 펼쳐진다. 가와바다 야쓰나리의 '설국'도 아마 이 고장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기억한다. 닛코는 '이곳을 보지 않고 일본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일본 관광의 메카라고 선전하는 곳이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기에 자신에 찬 선전을 하는지 궁금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자 도쿠가와 이예야스를 모신 신사 동조궁(東照宮)을 관람하며 조각들의 섬세함에 놀랐다. 오래 전에 읽은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예야스'가 머릿 속에서 맴돈다. 사무라이들의 피 비린내 나는 전투속에 오다 노부나가로 부터 토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예야스에 이르기 까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던 수 많은 전투 끝에 최종 승자는 도쿠가와 이예야스였다. 그는 덕으로 다스린 탓인지 일본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동조궁을 관람하고 난타이산 아래 주젠지호수로 올라 가는 길은 '이로하사카'라고 굽이 굽이 49곡을 곡예운전하며 차가 오른다. 우리나라 한계령길 보다 굽은 도로 난이도가 훨씬 더하다. 관광지라 제설차가 눈을 말끔히 치워 도로상에는 눈이 하나도 없다. 길가엔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난타이산(男體山) 화산분출로 흘러내린 용암으로 생성된 둘레 21km의 칼데라호수가 고원에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또 하나 명소 게곤폭포도 99m의 낙차를 자랑하며 흘러 내리고 있다. 설악의 대승폭포가 88m인데 이 폭포가 조금 더 길다. 우렁차게 흘러 내리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바닥엔 고드름이 옥 빛을 띄고 있어 더 장관이다.
추억의 하꼬네, 달걀 세개로 21년 생명 연장을 보장받다
18년 전 하꼬네 오와쿠다니 계곡 온천물에 찐 검은 달걀 먹던 기억이 아련히 떠 올랐다.설레는 마음으로 동경 뉴 타카나와 프린스 호텔에서 일박한 후 조반을 마치고 일본 황궁을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보고 하꼬네 국립공원으로 이동한다. 오와타니계곡 매점에서 검은 달걀 1봉지(6개입)를 500엔에 사들고 후지산을 바라보며 달걀을 까먹는다. 매점 입구에 '이 달걀 한개 먹으면 생명을 7년 연장한다'는 우스개 광고문구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1인당 세개씩 먹었으니 아내와 나는 똑 같이 21년의 생명을 연장시킨 셈이라고 깔깔대고 웃으니 후지산도 함께 빙그레 웃어주는듯 하다.
계곡을 내려와 하꼬네 모리노유 야외 온천탕에 몸을 담근다. 히노끼 온천탕에서 바라 본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한 점 흘러간다.역시 여행중 하는 온천욕은 즐겁고 피로를 씻는데 온천욕 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카페에서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마시니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점심을 마치고 신후지역으로 이동하여 토요하시역까지 신간선에 탑승해 멀리 후지산의 배웅을 받으며 명상에 잠긴다.
같이 여행하는 일행중 일본인 여자분이 계시는데 그 분 말씀이 신간선도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아마 KTX, 새마을호 그리고 무궁화호일 것이다. 신간선이 도착하여 객실로 입장하는데 휠체어를 탄 장애우들도 타인의 도움없이도 편안하게 입장할 수 있도록 플랫폼하고 열차 출입구하고 평행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열차들은 출입구가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노인들이나 장애우들에겐 승차하기가 쉽지 않아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으로 생각된다.
흰 눈으로 치장한 우뚝 솟은 후지산의 여러모습을 디카에 담느라고
후지산은 예로부터 일본 제일의 명산으로 일본인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던 산으로 3,776 m의 높이를 자랑하는 산이다. 산정 화구 지름 약 700m. 깊이 약 240m. 일본 최고봉으로, 후지 화산대의 주봉이며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원뿔형의 성층화산이다. 저지에서 우뚝 솟아 있으므로 닛코에서 동경으로 들어가는 고속도로에서부터 간헐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더니 하꼬네에서 그리고 신후지역에서 신간선을 타고 토요하시로 이동 중에도 그 명산은 나의 시선을 계속 사로 잡는다. 역시 후지산의 앞 얼굴은 신후지에서 바라보는 산 모습이다. 분화구가 산 정상에 하나 있을테고 또 하나는 7부 능선쯤에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들은 화강암으로 거의 골산(骨山)인데 일본의 산들은 거의 다 흙산(肉山)이다. 산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골산이 좋은데 아내는 트레킹하는데 좋은 육산을 좋아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보이는 산 능성이를 바라 볼 때마다 트레킹하고 싶다고 얘기한다.
교토의 명물, 청수사와 금각사
교토는 도쿄(동경)으로 수도가 옮겨가기 전까지 오랜 세월동안 일본의 수도 역할을 했던 곳으로 일본의 전통문화가 고스란이 간직된 곳이다. 교토의 명물로는 당연히 청수사와 금각사를 빼 놓을 수 없다. 청수사는 멋진 곳이다. 청수사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바지(산넨자카, 닌넨자카)엔 일본 전통 가게들이 즐비하게 모여 있어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기념품가게며 음식점들이 좁은 길에 줄지어 있다. 그 길을 지나면 절 입구가 나타나는데 절벽에 세운 본당을 비롯하여 여러 당우들이 고풍스런 모습으로 길손을 맞는다. 떡을 좋아하는 아내가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치지 않듯, 떡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나보다. 천엔짜리 못지 한 판을 사 맛을 본다.
또 하나의 교토 명소인 금각사는 3층 구조의 누각으로 2,3층이 금으로 장식된 절로 연못에 그 그림자를 드리운 채 길손의 발길을 붙든다. 연못에 비친 그림자는 수목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그림을 선사한다. 조금 떨러진 곳에 은각사가 있는데 18년 전에 나는 그곳을 관광했지만 오늘은 시간에 쫒겨 아내에게 구경시켜 주지 못해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사카 신사이바시(心齋橋)와 도돔보리(道頓堀)
신사이바시는 옛날의 재래시장이 현대판 아케이드 모습으로 변모하여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을 연상케 한다. 많은 인파로 붐벼 길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번잡하다. 신사이바시에 가기 전 바로 연결 도로에 도돔보리가 있다. 물자수송을 위한 인공수로였던 도돔보리는 에도시대 이후 카부키극장 및 술집들이 들어서 먹자거리로 변한 곳이다. 길을 가다 거리에서 줄을 서서 20분이나 기다렸다가 따끈하게 만들어 주는 명물인 타코야끼(문어빵)을 사 먹어보니 그 맛이 일품이다. 오사카 금룡라면이 맛이 있다는데 라면을 좋아하는 나는 그 맛을 볼 수 없도록 저녁식사를 포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오사카 우동맛은 귀국하는 오사카공항에서 그 맛을 보았기에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성, 오사카성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을 통일하고 3년간의 대공사를 일으켜 완성시킨 성으로 가장 견고하게 지은 아름다운 성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오부나가 친척의 소개로 오부나가가 타는 말을 관리하는 일을 하다가 어느 추운 겨울날 노부나가가 외출을 하려고 신을 찾는데 신이 없어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런데 히데요시가 주인의 장화를 자신의 가슴에 품어 찬기를 없애 건네주는 모습을 보고 노부나가의 신임을 얻어 승승장구하여 결국 2인자의 자리까지 오른다. 작은 체구에 못생긴 얼굴을 한 그가 일본의 천하를 통일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오사카성을 돌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인들에겐 영웅으로 평가받지만 그는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장본인이기도하여 우리에겐 쓰라린 과거를 안겨준 인물이기도하다. 그가 건립한 이 성에서 애첩 차차가 낳은 아들 히데요리는 이 성에서 도쿠가와 이예야스와 항전하다 불귀의 객이 된다. 그 아들은 히데요시가 무정자 인간이었으므로 아마 그의 애첩이 다른 사람하고 사이에서 몰래 낳은 아들이었을텐데도 그 아들을 몹씨 사랑했다. 아마 친자 여부는 그의 애첩 차차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간사이 공항에서 귀국 비행기를 타고
4박5일의 여행 일정이 훌쩍 지나갔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을 주마간산격으로 혼슈 본토를 일주하고 귀국 비행기에 오른다. 도시나 농촌 할것 없이 깨끗한 거리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도로에 중대형 승용차보다 경승용차가 훨씬 눈에 더 많이 띈다. 호텔이나 음식점에서 먹었던 음식들의 맛도 입맛에 맞아 식도락을 즐기는 나로선 그 맛을 즐겼다. 특히 된장국을 좋아하는 나는 일본 된장국 맛도 좋았다. 가는 곳 마다 자판기가 많아 각종 음료를 마시기에도 편리했다. 물론 물은 어느 나라 여행에서와 마찬가지로 호텔에서 녹차를 끓여 여행 내내 페트병에 담아 상용하는 알뜰함도 실행했다.
귀국 비행기안에서 아내는 여름방학땐 동유럽여행을 하자고 한다 이번 일본 여행비는 자기가 냈으니 다음 여행비는 나보고 대라고 한다. 동유럽 여행비가 훨씬 많이 드는데 내가 갑절로 비용이 더 들게 생겼다고 너스레를 떨며 창 밖을 쳐다보니 서해 섬들이 옹기종기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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