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테'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 2010.09.17-09.24 / 카투만두(1)-포카라-나야풀-비레탄티-티케둥가-힐레(1)-울레리-고레파니(1)-푼힐-고레파니-반단티-간드롱(1)-란드롱-폴카-데우랄리-포타나-담푸스(1)-포카라(1)-카트만두(1)
자유와 낭만 그리고 활력을 갈구하는가? 무조건 떠나라. 욕망을 줄이고 작은 것에 만족하고자 하는자도 떠나라. 큰 집, 큰 차 대신 작은 여행비에 투자하라.그러면 무지와 사치 그리고 집착에서 벗어나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작은 욕망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바람처럼 자유스런 삶을 동경한다.그저 길손이 되어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일상에 묶여 또는 생활에 붙잡혀 떠나지 못하던 나날은 권태롭다. 황금 추석연휴를 이용하여 네팔로 떠나는 마음은 설레이면서도 조금은 무겁다.추석차례를 형님 가족들에게 대신 부탁하는 마음은 염치가 없다.
(안나푸르나 사우스)
지구상 8,000M 이상 고봉, 14좌중 8좌가 솟아 있는 네팔 히말라야는 신의 땅이다 (필자가 말하는 신(神)은 절대자인 대자연을 뜻한다). 6~7,000M 급 고봉들이 장장 800여 km나 펼쳐져있다. 이 길이는 히말라야 전체 산줄기의 1/3에 해당한다. 전문 등산인이 아닌 우리(나와 아내)는 7박8일 일정으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나선다. 우기의 끝자락이라 날씨가 조금은 걱정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트레킹 일정 내내 때때로 비를 만났다.그럼 여행 속으로 떠나보자.
'나마스테!' 카트만두
첫날, KE 695는 오전 08:40분에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7시간의 비행끝에 우릴 카트만두 트리뷰반공항에 내려놓는다.캔맥주와 아내 몫의 와인 서너잔을 즐기며 기내 오디오로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과 차이코프스키의 심포니 NO.4 op70 등을 듣는다. 그러다가 시오노 나나미의 소설,<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재미나게 읽는 사이 비행은 끝이 났다. 입국심사대에서 비자 수속을 받느라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네팔의 더딘 발전상에 잠시 회의감이 스쳐가지만 이내 기대를 포기하니 조금은 편안하다.비자 수속시 스탬프를 활용하면 그만큼 시간 절약을 할 수 있을텐데 일일이 수기로 적느라고 많은 시간이 흘러간다.나에겐 이 기다림의 두 시간이 비행시간과 거의 필적하는 듯하다.
공항을 빠저나와 현지 가이드 미스터 빠담을 만나 시내관광을 한다.구왕궁,꾸마리하우스 및 힌두사원 등을 돌아본다. '카트만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사실 나에겐 동경의 땅이었다.히말라야로 가는 관문이었기 때문이리라.그러나 나의 환상을 깨는데는 채 몇 분이 걸리지 않는다.지저분한 도심거리에,혼탁한 공기하며,무질서한 차량과 오토바이 행렬에 답답한 마음까지 한 몫 거들었다.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꾸니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왔다.비가 살짝 내리는 도심거리를 걷다가 호텔 하이야트에 짐을 푼다.
-네 살난 꾸마리여신
무질서한 도심거리를 가로질러 꾸마리사원으로 향한다.이 사원은 인간이 만든 처녀신이 살고 있는 곳이다.꾸마리 바할은 3층짜리 네와르 전통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건물 내부에 해당하는 꾸마리 촉 (Kumari Chowk)에서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목조 조각들로 만들어진 건물로 창문이 많다. 창문 틈으로 얼굴을 내밀고 관광객에게 얼굴을 보여주던 꾸마리는 더 이상 아무 때나 일반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4세경에 엄격한 조건에 맞는 여아를 꾸마리신으로 뽑아 첫 생리를 할 때까지 이 사원에 머물며 신 역할을 하고 있다.꾸마리는 순결을 상징하기 때문에 생리를 시작하거나 상처를 입어 피를 많이 흘릴 경우는 생명력을 다하고 새로운 꾸마리를 찾는다. 목조 건물 2층 창문으로 빼꼬롬이 얼굴을 내민 꾸마리신은 놀랍게도 4~5세된 여아다.관광객들 틈에 낀 네팔인들이 합장하며 경배를 드리는 모습도 눈에 띈다.평소에는 이 신은 바깥 외출도 할 수 없다고 한다.또한 은퇴해서는 결혼도 하지 않고 처녀로 늙는다는 설명도 곁들여진다.그녀에겐 불행한 일생이 될 듯 하다.
(꾸마리사원에서 현지 가이드 '빠담'이 꾸마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둘째날, 호텔에서 조식후 포카라로 30인승 로컬 비행기를 타고 1시간15분을 날아갔다.미리 예습한대로 비행기좌석 오른쪽에 앉았다.그래야 히말라야 산줄기들을 볼 수 있다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그러나 흐린 날씨에 가까운 산은 보여주는데 끝내 마차푸차레 등의 고봉은 구름 속에 꽁꽁 숨었다.
포카라에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시작지점 나야폴까지 버스로 이동한다.나야폴에서 포터들과 만나 짐을 나누고 우리는 곧 트레킹을 시작한다.좁은 산길에 가끔 짐을 실은 당나귀가 끄는 편대를 만나며
사방으로 호기심어린 눈길을 주며 걷는다.오늘은 워밍업으로 비레탄티를 거쳐 티케둥가를 지나 힐레까지 트레킹을 한다.대략 4시간이 소요된다. 가는 길에 어미닭이 병아리를 몰고 다니는 평화로운 모습이 내가 어릴 적 시골 풍경과 너무 흡사하다.산마을의 계단논엔 산도벼와 귀리가 자라고 논두렁엔 우리처럼 콩을 심었다.가끔 노새가 짐을 싣고 산길을 내려온다.아마 아랫마을 장터에 물건팔러 가는 폼새다.
아내와 선두그룹에 서서 걷는다.현지 가이드 미스터 다와는 스물아홉살의 청년으로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산을 오른다.얘기를 나누다보니 그는 카트만두 유명대학을 졸업한 인텔리겐차다.그런데 하루 300루피를 받는 가이드를 하고 있다.산에서 파는 맥주 한병에 300루피~350루피이니 그의 일당은 맥주 한 병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그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는 산길은 지루하지 않다.네팔의 문화,역사,사회 등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참고로 카트만두에서는 맥주 한 병값이 280루피라는 설명을 들었다.생필품이 아니어서 꽤 비싸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힐레 롯지에 먼저 도착한 나는 샤워를 마치고 롯지 여주인한테 맥주(Everest 상표) 한 병을 300루피를 주고 주문했다.가이드 다와에게 한 잔을 권하자 그는 고맙다며 고개를 돌려 한 잔을 주욱 들이킨다. 마치 한국에서 손아래 사람이 어른 앞에서 고개를 돌리며 마시는 술 문화하고 똑 같은 모양새다.롯지 여주인은 37세로 나이보다 더 들어보인다.그녀의 18세된 동생과 12세된 딸이 제기차기놀이에 한창이다.나는 그녀들과 제기차기놀이에 합세하며 어린시절을 떠올렸다.그리고 기념으로 그들과 한 컷을 남긴다.한 참 후에 후미팀들이 포터들과 삼삼오오 들어온다.키친보이팀들이 무거운 부억살림을 지고 들어와 저녁밥을 준비한다.우리는 트레킹 내내 산에서 한식 조리팀이 합세하여 맛있는 식사를 즐기기로 계획이 되어 있다.롯지는 우리나라 60년대의 나무로 지은 성냥갑방(일명 학고방)이다.나무 침상이 두개가 좁게 들여놓은 2층짜리 집이다.돌아 누울때마다 삐걱대는 소리에 잠이 깨기도 한다.카트만두에서 지급받은 침낭을 꺼내니 쾌쾌한 냄새로 사용하기가 거북스럽다.한국에서 침낭을 준비해 올걸 그렇지 않은게 후회가 됐다.결국 아내는 숄을 덮고 자고, 나는 옷을 껴 입고 자는둥 마는둥 하염없이 내리는 빗소리와 친구를 했다.
셋째날,힐레(1480m)에서 하룻밤을 잤다.간밤에 폭우가 숙소 양철지붕을 세게 두드린다.밤하늘의 별을 기대했으나 죽죽 내리는 비가 방해를 한다.대신 앞 산 산별을 조망하며 잠자리에 들었다.여기에서 산 별이란 산 속 마을의 전기불이 운무속에 너울너울 춤을 추며 밤새도록 산 별 굿판을 펼친다. 아침식사후 우리는 마을어귀를 돌아 가파른 된비알을 오르기 시작한다.된비알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힐레숙소와 간간이 산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민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올려다 보이는 울레리마을(1960m)까지 오르는 길에 전통 상여꾼들을 만난다.
우리나라 만장에 해당
대나무발에 시신을 꽃으로 장식하고 둘이 메고 상주와 동네 조문객들이 화장시키기 위해 장작더미를 메고 뒤따르는 광경
네팔의 장례문화는 화장방식이다.산위에 사는 사람들은 산 아래에 가서 시신을 화장한다고 한다.큰 도시에서는 상여를 4인이 메지만 비탈길에서는 이처럼 둘이 상여를 멘다.상여줄에는 노자돈 지폐가 몇 장 걸려 있었다.우리나라의 장례문화와 비슷했다. 다시 오름길을 오르며 뒤돌아보니 힐레마을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숙소 위로 학교가 보이고 이곳 산골마을 학생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10시 등교시각에 맞춰 산을 내려오고 있다. '나마스테'(안녕)하고 인사들이 교환된다.학생 거의 슬리퍼를 신고 산을 내린다.간혹 간편한 운동화를 신은 학생도 있다.트레킹을 하면서 기능성 고급옷과 값비싼 등산화로 치장한 우리네 모습이 너무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레리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고라파니(2750m)까지 산골마을을 구경하며 길을 오른다.울창한 밀림지대를 지나고 계곡을 건넌다.수백년된 네팔의 국화(나무)인 난리구라스 숲길이 길게 이어진다.장관이다.
군락을 이룬 난리구라스 숲은 청량감을 선사한다.아내는 신이 나는지 콧노래를 부른다.그녀는 오래전부터 네팔 트레킹을 꿈꿔왔다.더 나이들기 전에 황금연휴를 맞이하여 결행한 셈이다.올 겨울방학엔 또 다른 해외 명산을 가자고 조른다.
고라파니는 높은 산골마을이다.여기에서 푼일전망대가 한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내일 일출을 보기위해 이곳에서 1박을 한다. 아내와 선두로 도착하여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한다.상큼하다.고산에서는 음주를 삼가하라고 하지만 술꾼(?)에겐 마이동풍이다. 후미와의 격차가 두시간 이상 벌어졌다. 갑자기 쏟아지는 장대비에 후미팀들은 비를 맞아야했다. 과연 내일 일출을 볼 수 있을까?
넷째날, 꼭두새벽에 랜턴을 키고 푼일전망대로 향한다.
고산이라 운무가 춤을 추고 간간이 비를 뿌리기도 한다.50분만에 전망대에 오르니 운무에 가려 일출보기는 틀렸다.이곳 전망대에선 서쪽으론 다올라기리,북쪽으론 팡봉,안나푸르나 사우스봉,히운출리와 마차푸차레가 조망되는 곳이지만 운무에 쌓인 높은 봉우리들은 꽁꽁 숨어 그 자태를 드러내지 않는다.간혹 희미하게 살짝 얼굴을 드러내다가 다시 운무속에 숨는다.포기하고 산을 내리는데 후미팀들이 늦게 오른탓에 내려오는중에 그네들의 탄성어린 함성을 듣는다.그네들은 우리보다 좀 더 뚜렷한 고봉들의 얼굴을 본 모양이다.우리도 내려오는 도중에 다울라기봉의 얼굴을 살짝 보았다.
(동행했던 권ㅇㅇ님이 메일로 보내온 사진)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전망대를 내린다.숙소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날이 맑아진다.숙소에서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히운출리,마차푸차레 고봉들을 조망한다.
아침식사후 다시 반단티까지 가는 길은 한적하다.또 난리구라스숲을 만나고 폭포와 밀림지대같은 숲을 만난다.운무에 쌓인 길을 걷다가 오던 길을 돌아보기도 한다.또 폭우를 만난다.폭우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천경개를 즐긴다.반단티에서 점심을 들고 하염없이 긴 내림길을 걷는다.바티(Bati,찻집)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쉬다 걷다를 하다가 긴 울창한 숲 길을 만난다.선두 산행가이드를 바티에 남기고 선두팀 여섯명이 팀을 이루어 산을 내린다.숲 속 입구에 경고판이 걸려있다.'숲 길이 위험하니 단독으로 걷지 마시오'
트레킹 하면서 현지 가이드의 통제가 심하다. 속도를 좀 줄여달라는 것이다.우리는 한국 산들의 산행속도의 70%정도로 걷는데도 후미와는 한나절에 두시간의 시차가 났다.아무리 트레킹이라고 하지만 이번 트레킹팀에 초보자들이 여럿 끼어 속도가 너무 느리다.진행을 매끄럽게 하지 않아 조금은 짜증스럽기도 하다.
선두팀은 가이드없이 일찍 숙소인 간드롱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기분 좋게 맥주 한 잔을 하고 있었다.두시간이 넘어서야 걷기가 힘든 모자 트레커가 말을 타고 다른 샛길로 도착했는데 오다가 낙상하여 다리를 절고 있다. 날은 이미 어둡고 후미조는 오지 않는다.그런데 우리가 오다보니 산사태가 나 위험구간이 있었다.일행들이 랜턴이 있는지도 궁금했다.대전에서 함께 한 김선생과 나는 랜턴을 들고 그들을 마중하기 위해 미끄러운 산길을 오른다.20여분 오르니 멀리 랜턴 불빛이 보인다.반은 랜턴도 없이 후미들이 절뚝거리며 오는 사람도 있다.무사히 숙소로 와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작은 해프닝이 일어났다.
인솔자가 현지가이드하고 방 배정을 하면서 화를 내며 험담하는 소리가 들린다.내가 일찍 도착한 여섯명의 방을 샤워하고 쉬느라고 숙소주인한테 미리 배정받았기 때문이었다.통제가 안된다는 뜻이리라. 나는 그에게 항의차 큰 소리를 내어 잠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해프닝이었다.서로 사과하고 다시 평온을 되찾았지만 조금은 찜찜하다.다시 맥주 한 병을 시켜 마음을 다스린다.내 나이에 여기까지 트레킹을 즐기러와서 그네들의 매끄럽지 못하고 느려빠진 진행에 통제를 받아야하는가.여행사에서 장사속으로 산행초보자도 고객으로 끌어들인게 잘못된 점이다.한 부부는 트레킹이 어려워 하루 전에 나야폴로 하산하고, 선두와 후미가 한나절 트레킹에 두시간 이상까지 산행속도 차이가 난다면 이건 분명 문제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우리 산 다니듯 속도전을 한 것도 아닌데.그러나 곧 마음을 다스렸다.그리고 억지 웃음을 지었다.마치 네팔의 바보처럼.
다섯째날,
오랫만에 숙소다운 숙소에서 잠을 잤다.간드롱에 있는 롯지는 전망도 좋고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있다.간드롱 숙소는 A급이다.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나 안나푸르나 사우스,히운출리,마차푸차레가 위용을 드러낸다.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고봉들이 눈에 시원하다.
안나푸르나 사우스 / 히운출리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사우스 / 히운출리 / 마차푸차레
간드롱에서 바라보이는 란드롱마을이 아름답다.긴 계단길을 내려 모디코라강을 건넌다.강을 건너기 전 시골학교에 지갑을 열고 몇 장의 루피지폐를 도네이션 박스에 넣는다.아내는 학교에 올라가는 초등학생 셋에게 초콜렛을 나눠주며 양해를 구한 뒤 가방 속 책을 좀 보자고 한다.
교육자이어서 그런지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간드롱에서 빤히 바라다 보아는 앞 산 마을 란드롱은 꽤나 큰 마을이다.란드롱(1565m)에서 톨카(1700m)까지 산길이 이번 트레킹코스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4시간을 걸어 톨카에서 점심을 든다.점심은 감자와 삶은 달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한국의 신라면이다.먼저 도착하여 맥주 두병을 비웠는데도 라면 맛이 일품이다.
(톨카의 여인들과 함께)
다시 식후 비축 데우랄라(2100m)까지 오르막이다.다시 포타나(1900m)까지 내리막을 내린다.6시가 다 되어 숙소 담푸스에 도착했다.저녁식사후 캠프파이어가 열렸다.현지인들과 어울려 흥겹게 그네들의 춤사위를 흉내내며 흠뻑 취했다.
여섯째날,
담푸스에서 일출을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으나 흐린 날씨탓에 접어야 했다.전망대를 보러갔다가 아내와 나는 현지가이드 미스터 다와의 안내를 받아 시골 초등학교를 방문했다.등교시각 10시가 다 되었으나 선생님은 아직 출근 전이고 아이들 몇 몇이 공기놀이를 하고 있다.우리나라 공기놀이하고 똑 같다.아내는 아이들 앞에서 공기놀이 시범을 능숙하게 보여준다. 어릴 적 솜씨가 그대로 살아있다.
10시가 다 되어 보조 선생님이 출근하여 우리를 안내한다.작은 산골 학교라 시설이 초라하다. 아내는 10불을 꺼내어 건네주며 아이들 공책을 사주라고 건넨다.교실을 살피다가 아이들의 눈동자와 마추치자 내 지갑을 달라고 하더니 다시 100유로(ER)를 꺼내 덜컥 기증함에 넣는다.내 의사도 무시한 채. 그러는 사이 두명의 선생님이 출근하고 아직 교장선생님은 출근전이다.학교 주소를 건네받고 숙소로 돌아와 산행 종착지 나야풀로 향한다.
나야폴에서 현지가이드와 키친보이들 그리고 포터들과 헤어진다.서운하다.며칠간 산에서 정이 많이 들었는데.팁 몇 불은 너무 작은 정성의 표시다.자꾸 그네들과 헤어지며 흔들어대는 손길이 무겁다.4일 동안 트레킹을 하며 60여 km를 걸은 것 같다.순박한 민심을 만나고 아름다운 산천을 만났다.비가 간혹 많이 내려 거머리에 자주 물어 뜯겼지만 그래도 즐거운 트레킹이었다.
일곱째날 / 여덟째날,
포카라로 귀환하여 풀바리리조트에서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폐와호수에서 보팅을 즐겼다. 돌아오는 길에 포카라에 있는 티벳 난민촌을 둘러보고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탄다.
(동행했던 권ㅇㅇ님이 보내온 사진)
카트만두 시내관광중 화장터를 들렸다.그네들의 장례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파슈파티나트 : 힌두교 최대의 성지, 인도의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서 처럼 네팔에서는 파슈파티나트 사원 앞 바그마티(Baghmati)강가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광경을 본다. 강가에서 화장하고(왼쪽 사진) 그 앞쪽에서는 망자를 위해 제사지내는 풍경.
사두 : 세상에서 가장 편히 사는 사람들, 수행한답시고 화장터에 앉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포즈 취해주고 1$ 정도 사레비를 받 는 수행자들,윗자리에 앉아 있는 사두의 머리카락은 1m가 넘는다
화장터옆 제주들이 제사지내고 간 자리에서 남은 음식으로 식사하는 원숭이 가족
사두(삼륜 자전거타고 포즈 취하는 수행자)
카투만두에서 전통 민속무용을 즐기며 네팔 전통음식으로 저녁을 들었다.다음날 아침 카트만두 시내관광을 하며 타멜시장에서 티셔츠 한 장을 사 바꿔입고 한국행 비행기 KE696을 타니 7박8일의 네팔 트레킹일정이 바람같이 빨리 지나갔다.
바람같이 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다.덧 없는 인생일 수도 있고,자기만족의 삶일 수도 있다.나는 네팔 트레킹을 하면서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됐다.항상 자기 성찰을 하며 산다고 생각하면서도 지나고 보면 아쉽다.쉰을 넘기면서 남은 인생은 덤이라고 생각했다.지금까지 살아 온 삶에 큰 후회는 없다.그렇다고 자랑스럽지도 않다.그저 소시민적 삶을 산 것에 만족한다.욕망을 줄이고,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그것이 무지와 집착에서 벗어나는 삶이 아니겠는가...................................................'나마스테,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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