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바람따라

-간송미술관-길상사-최순우 옛집을 다녀와서 (성북동의 명소)

천지현황1 2006. 5. 29. 16:34

 

간송미술관-길상사-최순우 옛집


 2006.05.20-06.03 , 2주간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에서 간송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대전을 연다. 해마다 봄 가을에 2주간씩 미술전람회를 여는 간송미술관을 찾는 일이 연레행사가 되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아내와 함께 서둘러 집을 나선다.  성북동에 가는 길에 아예 최순우 옛집과 길상사까지 들릴 작정이다. (2006.05.28)


1.간송미술관

 

# 한자리에서 국보급 10 여점 등을 관람하느라고  눈이 호사하던 날


 아침 일찍 서둘러 미술관에 도착했으나 일요일이어서인지 관람 줄이 30여 m나 두 줄로 늘어서 있다. 기다린지 한시간 20분만에 전시장에 입장한다.


 전시장 1층에는 그림과 서예가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명필 안평대군의 글씨와 한석봉의 글과 완당 김정희의 '차를 들며 선정에 든다'는<명선>에 이르기까지 조선후기의 명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글씨에서 내품는 기는 압권이다. 복사본은 많이 보아왔지만 원본을 관람하는 마음은 작은 흥분까지 인다.


 겸재 정선의 <청풍계>도 전시장 한벽에서 우뚝 진경산수의 진수로구나.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도 미소를 짓고 서있다.


 2층 전시실엔 국보급과 보물급들이 자태를 드러내는데 그져 감탄스러울 뿐이다. 국보제68호인 <청자상감운학매병>에서 우아함의 극치를 본다. 국립박물관에서도 상감청자매병을 여럿 보았지만 이 상감청자매병은 최고의 우아미를 선사한다.


 원숭이형 연적, 오리형 연적, 청자 기린 향로 모두 한결같이 섬세하고 우아하다. 이 모든 국보, 보물들은 간송선생이 식민지시절 거금을 들여 사들인 그의 혜안에 존경심을 느낀다. 금동삼존불상도 전시장 한편을 환하게 밝힌다.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도 간송미술관 수장고에 깊숙이 보관해 오다가 전시되었다. 간송미술관에서 여러 국보급 문화재를  관람하는 기회는 우리에겐 행운이다. 간송 선생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훌륭한 문화재가 과연 우리나라에 남아 있었을까 생각하니 더욱 숭모의 정이 든다.

 

# 간송미술관 정원에 서 있는 간송 선생 흉상과 보물 등

 

 

 

 

 

 

 

# 간송미술관 소개

 

- 간송은 누구인가?

 

 본관 정선(). 호 간송(). 서울 출생. 1926년 휘문()고보를 거쳐 1929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오세창()의 지도로 민족문화재를 수집하는 데 힘쓰는 한편, 한남서림()을 지원·경영하며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1940년 경영난에 빠진 보성()고보를 인수하여 교주()가 되었으며, 1945년 광복이 되자 보성중학교 교장직을 1년간 맡았다. 1954년 문화재 보존위원이 되고, 1956년 교육공로자로 표창을 받았다.

 

 수집한 문화재는 그의 개인 박물관인 보화각(葆:현 간송미술관)에 보존하였는데, 수집품 중에는 1942년 일본인 몰래 안동에서 거금 2,000원을 주고 구입한 《훈민정음()》 원본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서적·고서화·석조물·자기 등이 있으며, 10여 점 이상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1962년 문화포장, 1964년 문화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미술관 소개

간송미술관

주소: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97-1 전화번호: 02-762-0442

미술관소개

간송미술관은 전형필(全鎣弼)선생이 1938년에 설립하였다. 대지가 4,000평으로 도시속에 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주위가 한적하고 조용하다. 미술관의 중심건물인 보화각에는 전형필 선생이 평생동안 수집한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는데 소장 유물이 대다수 국보급들이다. 우리나라 제일의 고서화 소장처로서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로서 발족한 이래 1971년 10월부터 매년 5월과 10월에 각가 2주씩 소장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으며, 전시회 개최시에 『간송문화』라는 도록을 발간하고 있다.

간송미술관에는 국보로 지정된 『훈민정음』(70호), 『동국정운』권1,6(71호), <금동계미명삼 존불>(72호), <금동삼존불감>(73호), <청자압형수적>(74호), <청자기린유개향로>(65호), < 청자상감포류수금문정병>(66호),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149호), 혜원 신윤복의 <쌍검대무 >(135호) 등의 9점과 보물로 지정된 <백자박산향로>(238호),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 >(376호), <금보>(283호), <금동여래입상>(284호), <금동보살입상>(285호), <청자상감포도 동자문매병>((286호), <분청박지화문병>(287호), <분청사기모란문반합>(348호), <청자상감 모자합>(349호),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241호), <괴산 외사리 석조부조>(579호), (전 문경오층석탑>(580호) 등 12점이 있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에서 1974년 5월12일에 지방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삼층석탑>(28호), < 석조팔각부도>(29호), <석조미륵불입상>(30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31호) 등 4점이 정원 에 각각 세워져 있다.

*교통편
시내버스 85번 이용 성북초등학교앞 하차
지하철 4호선 한성대 입구역 하차 10분 도보    (네이버에서 발췌)


2. 길상사

 

 한시간 이상 특별대전 관람을 마치고 칼국수 한그릇을 들고 도보로 10-15분 거리에 있는 법정 스님이 회주로 있는 길상사에 들린다. 도심 속의 사찰이 한가롭다. 절집을 여유롭게 산책을 하며 강원도 산골에서 사시는 법정스님은 지금쯤 점심 공양 마치고 무엇하고 계실까하고 생각하니 ...

 

 

 

 

 

 

 

 

 

 

 

3, 최순우 옛집

 

 다시 발걸음을 최순우 옛집으로 옮긴다. 혜곡 최순우 선생은 1984년에 작고하시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셨다. 선생이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저물어가는 소백산맥을 바라보며, 사무치는 소마움으로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하셨다는 글 생각이 났다.

 

'사람은 아는 것 만큼 느낀다'는 명언을 선생의 글에서 확인한 기억이 있다. 그의 눈에 비친 우리 조상들의 조형예술품은 살아 숨쉬는 지고지순의그의 심미안을 통하여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아름다움에 대한 선생의 천부적인 안목과 혜안에 그저 놀랍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선생이 작고하시고나서 뜻있는 모임에서 사셨던 가옥이 전통 한옥으로 그 보존가치가 있어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사 보존 관리해 오고 있다. 그래서  '시민 문화유산 1호'인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ㆍ1916~1984)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옛집(서울 성북2동 126의 20)이 전시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혜곡이 1976년 사들여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이 집은 그의 대표적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최순우 옛집은 1920년대 지어진 전통 한옥으로 120평 대지에 ‘ㄱ’자형 본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마주보고 있는 튼 ‘ㅁ’자형이다. 혜곡이 수집한 석조물과 소나무 등 각종 나무가 배치된 뒤뜰이 특히 운치가 빼어나다.

 혜곡이 직접 쓴 서재 현판 ‘두문즉시심산(杜門即是深山ㆍ‘문을 닫아 걸면 이곳이 바로 깊은 산중’이라는 뜻)’에서는 집필에 몰두하던 그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고, ‘매죽수선재(梅竹水仙齋)’ ‘오수당(午睡堂)’ ‘매심사(梅心舍)’등 단원과 추사의 글씨를 집자한 현판에서 그의 심미안을 가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