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의류에게 지혜를 빌리자
2011.06.22
바둑 촛자 시절,누우면 온통 천장에 바둑판이 그려집니다.나도 몰래 단수(아다리)칩니다.지금 현재의 내 처지가 바로 그와 같습니다.예전엔 그냥 무심코 지나던 길을 걷다가 멈춰서서 나무와 들풀을 살펴봅니다.그리고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나무와 들풀들이 하나씩 시야에 들어옵니다.그리고 대화를 시작합니다.오늘은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비가 스륵스륵 내립니다.요즘 디카가 습관처럼 몸을 따라 다닙니다.느티나무에도 벚나무에도 지의류가 보입니다.평소에도 비 오는 날 보였겠지만 그냥 관심 밖이어서인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의류는 45억년 전 부터 살아온 생물입니다.우리 인류의 조상격인 호모사피엔스의 등장이 대략 10만년 전이니까 인간이 살아온 역사와 비교가 되지 않는군요.지의류는 조류와 균류가 공생하는 관계로 음지나 습도가 높은 곳 그리고 덜 오염된 곳에서 삽니다.그래서 공기청정도를 알아보는 지표식물로도 활용되지요.이때 균류는 수분을 제공하고 조류는 광합성 작용을 하며 공생합니다.수분이 없는 상태에서 35년이나 버티고 살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그만큼 인내심이 강한 식물이지요.
관심을 가지고 눈을 들어 나무를 쳐다보며 빗속을 걸으니 여기저기서 지의류가 발견됩니다.문제는 관심입니다.관심이 없을 때는 하나도 보이질 않습니다.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10분 걸려 걷던 길이 배로 시간이 걸립니다.그래도 마냥 기쁩니다.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하는 셈입니다.급할게 하나도 없습니다.그저 배움이 우선하니 그 외 다른 것은 종속적이 되어 여유롭습니다.그리고 모든 것에 조금 너그러워집니다.'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리입니다.정말 아는 것 만큼만 보이고,느낍니다.뭘 모르고 한 세상 살아가도 그만이지만 이왕 이 세상에 와서 충만한 삶을 사는 게 좋지않겠습니까?
파스테르나크가 '닥터지바고'에서 '사람은 살기위해서 태어나는 것이지,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 태어나지는 않소'(Man is born to live,not to prepare for the life)라고 남자 주인공인 유리지바고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우리의 삶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지바고는 혁명을 지지하면서도 혁명이 이루어진 현실을 거부합니다.왜 거부하느냐는 여주인공 리라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자연스러운 분출로써 혁명은 선(善)이었으나,그 뒤 벌어지는 이데올로기의 개입은 폭력을 불렀습니다.세상을 노예로 살것인지,아니면 주인으로 살것인지는 각자 자신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도서관 가는 길 숲 속으로 여름비가 내립니다.이념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족을 살상하던 잔인한 시대는 동서고금을 통해 여럿 있었습니다.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한국전쟁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일 것입니다.미국의 남북전쟁은 노예해방이라는 거창한 대의명분이 있었나요?길을 걸으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왜 인간은 이데올로기를 먹고 사는가?숲 속 세상처럼 왜 공생하지 못하는가?서로가 돕는 상생의 세상은 만들기가 어려운가?정의는 어쩌면 조화롭지 못할지도 모릅니다.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위장하기 때문이죠.실천하기가 어려운 이념이기도 하구요.포퓰리즘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인간이 나무와 들풀 그리고 지의류에게 지혜를 빌려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나무 숲이 보입니다.언제부터 여기에 서 있었냐고 물었습니다.대답이 걸짝입니다."당신도 이제 철이 들어가고 있군.나는 당신이 이 길을 오고갈 때 언제쯤 나에게 말을 걸어줄까 기다리고 있었다오.우린 언젠가는 만날 줄 알았지.이걸두고 필연이란게야.".빗속에서 우린 친구가 되었습니다.(필자 주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본 '전나무'숲은 '메타세콰이어'숲 길이었기에 바로 잡습니다. 201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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