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방랑기

명함없는 산꾼과 술꾼 사이 / 제주 한 달 방랑을 마치며

천지현황1 2014. 10. 9. 19:05

명함없는 산꾼과 술꾼 사이 / 제주 한 달 방랑을 마치며

 

* 140911-141010

 

아내는 나를 '산꾼'이라 부른다.그렇다.나는 명함없는 술꾼과 산꾼 사이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며 산다.그래서 인생의 경계인인지도 모른다.인생이 별것이더냐.타인한테 폐 끼치지 않고 즐기며 살면 되는 것 아닌가.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월든의 저자)가 말한 '현자'의 정의를 마음에 새기고 좋아한다.그가 말했다.

 

"...삶의 종착역에서 누구나 깨닫는 진리가 있다.물질의 허망함이다.그것을 빨리 깨닫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그를 현자라 부른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제주살이 한 달 동안 한라산을  여섯 번 올랐다.생태숲을 걷고 곶자왈을 방문한 횟수도  일곱번이다.제주섬안의 또 다른 섬:우도,마라도,비양도,차귀도,추자도 등도 탐방했다.올레도 열개 코스를 돌았다.그 밖에 짬을 이용하여 수많은 오름을 올랐다.간혹 관광모드로 돌변하기도 했다.하지만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 볼 요량으로 많이 걷고 보고 체험하려 했다.하루 평균 14 km 이상을 걸었다. 한 달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걸었으니 400여 km를 걸은 셈이다.평생 줄지 않고 늘던 체중이 뱃살의 지방이 좀 빠진 탓인지 4-5kg 쯤 처음으로 줄었다.

 

처음 제주생활 시작 전 좀 더 느긋하게 즐기려던 계획은 몰입과 치열하게 즐기기로 나도 모르게 전환되었다.그저 산이 좋았고 곶자왈의 매력에 유혹되었다.중산간의 오름이 우릴 불렀고,섬속의 섬들이 유혹했다.우리 부부의 인생 중 최고의 삶의 여정이었다.아내가 힘들어하면서도 더욱 즐거워했다.

 

제주시내에 숙소를 잡은 것은 최상의 선택이었다.한라수목원이 가깝고 탐라도서관과 박물관,미술관이 모여 있어 언제든 바로 접근할 수 있어 좋았다.영화도 두 편이나 보았는데 둘 다 명화다.<비긴어게인>은 지금 공전의 히트작이다.<지상의 별처럼>은 내가 본 영화 중 눈물을 훔친 영화다.롯데마트가 가까워 가끔 신선한 재료를 사와 음식을 만드는 아내를 보조하는 역할도 재미가 났다.흑돼지 삼겹살을 사다가 푸짐하게 한라산 소주와 맛 있게 먹은 기억이 새롭다.은갈치구이는 모슬포 덕승식당에서 먹어 본 것 보다 더 맛 있었다.아내의 손맛으로 비용절감은 물론 왠만한 레스토랑 음식보다 근사했다.섬 생활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니 꿈만 같다.

 

가장 큰 수확은 이번 제주생활에서 맛 본 소꿉놀이다.작은 집,적은 생활필수품 등으로 소유의 개념을 변화시킨 점이다.우린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며 그것들을 상관처럼 모시고 살고 있다.밥그릇 두 개,코펠 하나면 부엌 살림도 해결되었다.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편한 생활에 익숙해지겠지만,이젠 정말 물질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은 설렘이고 한편으론 조금 불편한 인생길이기도 하다.오감을 활용한 여행은 비타민 같은 존재다.다시 또 여행을 꿈꾼다.제주가 그립고 한라산과 곶자왈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내일이면 한 달간 정들었던 섬을 떠난다.오늘 오전 한라수목원을 산책하며 제주 방랑을 결산한다.즐거웠다.그리고 행복했다.내 생의 가장 기억될 만한 방랑이었음을 고백한다.매사가 고맙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