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검단산 등로에 서 있는 세한송(歲寒松) 한 그루 (검단산-용마산)

천지현황1 2005. 12. 18. 18:00

                                           검단산-용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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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18 (일) / 홀로

* 안창모루(10:05)-유길준묘소-검단산-고추봉-용마산-엄미리(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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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가는 버스 차창에 흰 눈발이 비치기 시작한다. 서울 아침 기온은 영하 13도다. 제법 날씨가 차다. 안창모루 들머리에 들어선다. 눈발이 제법 굵어졌다. 유길준 묘소를 지나 쉼터에 다다르니 산길엔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귀를 에이는 바람을 모자 귀막이로 내려 막아본다. 그래도 바람이 얼굴을 사정없이 공격을 한다.  팔당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칼바람이다. 바람과 함께 미끄러운 산 길을 동행한다.

 

 쉬지않고 검단산 정상까지 내닫는다. 정상엔 산님들이 추위 속에서 휴식을 하고 있다. 눈발은 이내 가늘어진다. 그래도 시야는 트이지 않는다. 용마산자락도  보일듯말듯 눈발 속에 숨어있다.  

 

 마산 내림길로 들어선다. 사방이 고요하다. 오직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만 되돌림되어 올 뿐 적막하다. 새소리마져 눈 속에 파묻혀 들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다. 가끔 엄미리나 은고개 쪽에서 역 종주하는 산객들을 드문드문 만난다. 한결같이 추워서 인지 인사하는 목소리조차 개미소리만큼 작다.

 

 왜 아내는 나보고 '산중독에 걸렸다'고 말할까?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조심 걸으며 자신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해본다. 맞다. 일년동안 산중독에 걸린 마음을 해독하기에 바쁘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다보니 어느덧 발길은 날머리인 엄미리에 닿는다.

 

 

검단산 등로에 서 있는 세한송(歲寒松) 한그루

 

완당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

 

 필자는 오래 전 부터 검단산의 노송들을 많이 보아 왔다. 등로에 세월만큼이나 휘어진 이 소나무 한 그루를 오며 가며 보는 즐거움은 크다. 그래서 검단산을 자주 찾는지도 모른다. 이름하여 세한송(歲寒松)이라 붙여본다. 완당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歲寒圖 )가 생각난다.

 

 몇 년전 학고재화랑이던가. 세한도 진품이 경성대 교수였던 후지츠카의 손에서 소전 손재형 선생이 간청하여 우리나라로 돌아와 화랑에서 전시된 적이 있었다. 이를 놓칠세라 화랑에 들른 적이 생각난다. 눈이 짓물나도록 보고 또 보고 했던 추억이 있다. 간결한 붓 터치가 많은 사연을 함축하고 있음을 본다.  작품 사연에서 경외심이 우러나왔던 기억이 있다.

 

 세한도는 설경의 고적한 소나무를 배경으로 한다. 완당 김정희 선생이 그의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묵화다. 이 작품은 그의 걸작중 걸작으로 꼽힌다. 추사는 탐관오리를 탄핵하다 순조의 미움을 받는다. 내려진 형벌은 두차례 유배의 길 뿐이다.

 

 두번째 유배지 제주도 대정에서 8년간 유배시절은 처절하다.  그는 철저하게 고독과 친구한다. 그러나 그의 제자 이상적때문에 그는 결코 고독하지 않다. 권세로 부터 멀어지면 시체에서 이 빠져 나가듯 주위 사람들도 슬슬 멀리한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현상일 것이리라.

 

 그러나 완당의 제자, 이상적은 예외의 인물이다. 역관이 되어 중국을 드나들며 스승 완당에게 귀중한 책을 구해다 유배지까지 내려 보낸다. 완당은 제자가 얼마나 고마웠울까. 이에 그의 고마움을 담아 제자에게 그려 보내준 묵화 한 점. 세한도는 이렇게하여 세상에 태어났다.

 

 벼락을 맞았는지 본 둥치가 꺾인 노송 한 그루는 완당의 유배 모습을 간접적으로 나타낸걸까? 잣나무 세 그루와 단아한 초당 한 채가 그림 소재의 전부다. 간결명료한 것이 아름답고 현대적이다(Simple is beautiful and modern.)라는 명제를 다시 한번 세한도에서 느낀다.

 

 화제를 세한도라고 예서체로 쓰고 발문 294자 중엔 "권세와 이득으로써 야합하는 자는 권세와 이득이 없어지면 그 교분이 성그러진다"는 사마천의 글을 인용하고 제자 이상적의 지조와 절의를 설파한다.

 

 검단산 등로의 세한송이 매서운 바람에 맞서며 고고하게 서 있다. 그 자태가 더욱 아름답게 빛춰지는 이유는 완당의 세한도 그림 속에 깃든 사연때문인가? (2005.12.18)   

 

 

585봉에서 바라 본 검단산 자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