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와 천반산 그리고 정여립 (진안 천반산)
* 2009.04.19 / 천반산휴양림(10:20)-천반산(11:05)-천반산성터-한림대터-할미굴-천반산성터-송판서굴-뜀바위-죽도-장전마을(14:10)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전국의 산을 답사하면서 느끼는 감회다.금강의 발원지 장수 뜬봉샘에서 흘러 온 한 물줄기는 장수천을 이루며 흘러오고 다른 한 줄기는 동쪽과 북쪽에서 무주를 지나온 물줄기가 구량천이 되어 이 천반산 아래 죽도에서 서로 몸을 섞는다.합수 후 잠시 숨을 고르며 흐름을 멈추고 천반산을 올려다보며 죽도선생 정여립을 추모하며 잠시 흐름을 멈춘다.조선시대 걸출한 사상가이자 비운의 혁명가 정여립은 실패한 혁명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이 죽도에서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이다.시계추를 잠시 조선시대로 돌려 정여립을 조명해보자.
정여립(鄭汝立),그는 과연 누구인가?
아마도 조선왕조에서 최초의 공화주의자(共和主義者)로 불릴 만한 사람이 아닐까? 천하는 공물(公物)이라는 지금의 인민주권설에 해당되는 사상을 주창 하였고 누구든 능력에 따라 임금도 될수 있다는 혁신적 사상의 소유자였다.어찌보면 당시로서는 너무도 앞서간 사상가 라고도 할 수 있다.그를 일컬어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보다도 50 여 년 앞선 공화주의자 라고 평가할 만 하기도하다는 학자도 있다.그는 기축옥사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1589년 10월2일, 정여립이 모반했다는 황해감사(종2품) 한준의 고변으로 기축옥사는 시작된다.지금도 학계에서는 여전히 이 기축옥사에 대해 진위 논쟁이 치열한데 이제는 기축옥사가 소위 조작이라는 데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상황이다.
어쨋든 한때는 율곡 이이도 칭찬해 마지 않을 정도로 당대의 천재라 불리웠던 정여립, 당시 임금이던 선조 앞에서도 두 눈을 부릅뜨고 선조를 쳐다 보았다고 할 정도로 기개가 당당했다.그는 정말 모반을 했을까? 그러나 분명한건 기축옥사로 인해 정여립뿐만이 아닌 최영경,이발, 정언신 등과 같은 진보적이고 유능한 인사들이 대부분 죽거나 유배를 갔다.이들은 바로 동인(東人) 이었다.일각에서는 이때에 죽거나 다친 자가 무려 1천여명에 가까웠다고 한다.그래서 흔히 기축옥사를 조선조의 광주항쟁에 비유하기도 한다.이때에 호남 인사들이 많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만약 그의 혁명이 성공했다면 우리 역사는 보다 일찍 민주주의를 맞이했을 것이다.
죽도,천반산 그리고 정여립
죽도를 에워싸고 도는 물줄기가 잠시 천반산을 올려다본다.그 때 그 시절을 회상하는 듯 사색에 잠겨 있다.그리고는 이내 금강 옥류가 되어 길을 떠난다.'가자,바다로' 그곳엔 양반 상민도 없고 왕후장상의 씨도 다르지 않은 평민의 세계다.또한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 듯 순리의 세계이기도 하다.천반산 아랫동네는 십승지에 버금가는 천연요새 마을같다.그래서 정여립이 천반산에서 군사훈련을 시키고 숨어들었던 곳 같기도하다.
죽도 옆 신기마을은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의 하나라고 한다.그러나 십승지의 정확한 위치는 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십승지를 언급한 책은 <정감록>, <남서고 비결>, <남격암 산수 십승보길지지>, <감결>, <징비록>, <운기구책>, <유산록> 등 60여종이 있다.그런데 정감록상 십승지엔 이곳 언급이 없다.십승지에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십승지를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하여 흉년, 전염병, 전쟁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십승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등 명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이 높고 험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어 있는 곳이다. 십승지는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가 대개 한 곳 밖에 없는데 물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다또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공간에 수량이 풍부한 평야가 있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여 1년 농사지어 3년을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개 십승지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는 곳으로 발전이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도 적들의 접근이 전혀 없다.
참고로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위치이다.
1. 영월 정동 상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2. 봉화 춘양 일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3. 보은 속리 난증항 일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일대)
4. 공주 유구 마곡 두 강 사이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5. 풍기 차암 금계촌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6. 예천 금당동 북쪽 (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7. 합천 가야산 남쪽 만수동 일대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8.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아래 방음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9. 부안 변산 동쪽 호암 아래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남원 운봉 두류산 아래 동점촌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숨어있는 보석 같은 산
들머리를 오를 때 조금 된비알일 뿐 순한 길이다.구량천의 굽이굽이 도는 물길이 가늘고 희미하다.가뭄 탓으로 강물도 매말랐다.진달래꽃이 지면서 쩔쭉에 꽃을 교대해 줄 차례인가보다.산벚꽃이 점점점 연둣빛 신록 속에 흰 물감을 풀었다.나무 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사행천과 시골 길이 구불구불 정겹다.산 속 시간은 정지한 듯 적막하다.지금부터 420 여 년 전으로 돌아가 정여립이 이곳 천반산 성터에서 군사 조련에 비지 땀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정상에 서서 동서남북을 조망해 본다.서쪽으로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산님들의 두런대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아니 세운 듯 서있다.요즘 세간에 지긋지긋한 배드 톱 뉴스, 전직 대통령 가족에게 건네졌다는 돈 이야기를. 구량천 넘어로는 운장산이 희미하게 마루금을 긋고 동남쪽으로는 남덕유산이 희미하게나마 능선을 거느린다.할미굴과 송판서굴까지 둘러보고 죽도로 산을 내린다.가뭄으로 물이 줄어 구절양장의 물줄기는 약하고 죽도의 작은 봉우리만 푸르다.죽도는 정여립을 기억하고나 있을까? 지난 세월만 아득하다.
*포토기행
들머리:천반산휴양림
죽도
실패한 혁명
진안으로 점심먹으로 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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