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연둣빛 숲 속 길을 걷던 기분 좋은 날 (부안변산 관음봉)

천지현황1 2009. 4. 27. 16:00

-연둣빛 숲 속 길을 걷던 기분 좋은 날 (부안변산 관음봉)

 

* 2009.04.26 /

남여치(10:40)-쌍선1봉(11:25)-월명암(11:45)-직소폭포(13:15)-재백이고개(13:40)-관음봉삼  거리-내소사-주차장(14:55) ........약10km / 4시간15분

 

 

음풍농월(吟風弄月).봉래구곡을 바라보며 월명무애(月明霧靄)의 비경을 품에 안고 월명암은 단아하게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절집 고사터를 지나 숲 속 산 길엔 연둣빛 세상이다.거의 한 세기 전 반선반농(半禪半農) 사상을 주창하던 백학명선사가 선정에 들었다가 막 잠을 깨고 상좌 한 명을 데리고 암자 텃밭으로 울력하러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그 상좌는 다름아닌 해안선사였을 것이다.학명선사는 얼굴 모습이 달마를 닮았다했다.그가 그린 달마도는 자신의 얼굴이었다.닮고 싶은 얼굴이었으리라.

 

1919년 봉래정사에 와 있던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은 아침에 눈을 떴다.그리고 눈을 들어 쌍선봉 능선을 바라보다가 월명암 산자락에 서기가 어려 있는걸 목격한다.19세 미소년 송규(훗날 원불교 제2대 종법사,법호:정산)에게 개나리봇짐 걸망을 지게하고 총총 걸음으로 봄소풍에 나선다.월명무애가 꼭 산상에서만 나타나는가.산 아래 계곡에서 올려다 본 그 구름 아지랑이가 더 아름답다고 느끼며 봉래구곡을 돌며 선시 한 수를 읊는다.邊山九曲路/石立聽水聲/無無亦無無/非非亦非非 .구곡을 돌고 숲 속 오솔길을 돌아 드디어 월명암 산문에 들어선다.암자 뒤뜰 텃밭에서 호미질하던 스님이 허리를 펴며 "어서 오시게" 반갑게 객을 맞이한다."차 한 잔 하시게나." 곡우 지나 딴 작설차가 툇마루의 한 구석에서 녹차 잎을 우려내고 있다."반선반농은 잘 되십니까?"소태산은 학명에게 요즘 그가 불교 개조론의 하나로 실천하고 있는 사상을 묻는다.24년의 나이 차지만 선지식들은 선문답을 해가며 교유하고 있었다.얼굴에 광체가 나는 미소년,송규는 선사에게 인사를 여쭙는다.소태산은 그를 학명 선사 상좌로 2년간 맡기고 총총 걸음으로 산을 내려온다.소태산은 학명선사로부터 불교 혁신에 대한 지혜를 배우게 하기 위해 송규를 선사에게 맡긴 것이다.이런 인연이 그들 사이에서 있어 왔다고 후세인들은 증언하고 있다.이로부터 4년 동안 봉래정사에서 원불교가 세상에 드러내는 회상의 법을 짜는 시간들이다.

 

숲 속 오솔길엔 연둣빛 세상이 펼쳐지고     

월명암을 지나 직소폭포로 내리는 오솔길엔 연둣빛 세상이다.상큼한 공기는 깊은 산 속의 숲 향하고는 또 다른 향을 선사한다.아마 서해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솔향에 더해 그 향이 더 진한 것은 아닌지 콧 속까지 시원하다.직소폭포의 물줄기는 갈수기인데도 '콸콸'소리치며 휘몰아쳐 내린다.중계계곡의 초록세상은 어찌나 상큼하던지 이곳이 바로 선계가 아닌가.내변산 산줄기들이 올망졸망 계곡을 품고 작은 호수는 산그림자를 품고 나그네는 평화로운 마음을 품는다.눈으론 초록을 보고 마음으론 시공을 날으며 학명선사와 소태산,해암과 정산 등 선지식들을 떠 올리던 날,나는 참으로 행복함이 스멀스멀 내 몸 속으로 스며드는 환희를 맛보았다.  

 

  

*포토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