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필(落筆)

숲 속에 이는 바람

천지현황1 2011. 5. 24. 12:14

 

숲 속에 이는 바람  

 

 

 

 

바람을 았는가? 흔들리는 나뭇잎을 통해서 바람을 보았습니다.직장에서 퇴근한 아내가 검단산 둘레길을 가자고 조릅니다.보통 때 같으면 저녁식사후 한강둔치 산책을 한시간 정도 합니다.그런데 오늘은 산문에 들고 싶은 가 봅니다.대상포진으로 3주간 산행을 쉬어서인지 종아리 근육이 간질거리는 모양인지도 모릅니다.저녁식사도 거른 채 오후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배낭에 물 한 통을 챙깁니다.가는 길에 빵집에 들러 도너츠와 앙꼬빵을 사서 배낭에 넣습니다.낮이 많이 길어져 2시간 정도의 둘레길 걷기는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그래도 산길이라 후래시를 휴대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혹시 모를 야등에 대비해서입니다.

 

저녁시간대인데도 햇볕은 따갑습니다.아직은 태양이 성질을 부리지 않습니다.그러나 곧 여름이 오면 태양은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불볕을 토해 놓을 것입니다.산아래까지 집에서 걸어서 10 여 분가량이면 도달합니다.여기까지 도로변을 걷기 때문에 매연을 조금 마시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창모루에 도착하여 숨겨 놓은 길로 들어섭니다.금낭화 군락이 우리를 반깁니다.곧 이어 아카시나무 꽃 향이 진하게 코끝을 간지럼태웁니다.잇 사이에서 솟는 침도 달짝지근합니다.연초록 이파리를 만져 보니 손녀 볼을 만지는 듯 부드럽습니다.거기다가 휘파람새가 휘파람을 불어대니 발걸음도 가볍습니다.옆 산의 산비둘기도 '구우구우'응대합니다.종달새 한 마리가 머리 위에서 솔로 곡을 부릅니다.계곡 건너 숲 속에서 이름 모를 새들의 합창이 뒤를 잇습니다.산 속의 고요는 이미 깨졌습니다.우리는 관객이고 청중입니다.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모두 열어 놓습니다.우리는 오감을 열어놓고 산길을 오릅니다.그것도 아주 느린 걸음으로 말이지요.자연과 하나된 기분이라 기쁜 얼굴표정을 서로 짓습니다.산길을 오를 땐 아내는 조강지처 형으로 오릅니다.외길 오솔길이라 그렇게 걷는 것이 순리이지요.내가 앞장서고 그녀가 서너 발자국 뒤에서 따르는 행보입니다.

 

요즘 들어 과거 생각을 많이 합니다.나쁜 습관을 후회도 해 봅니다.이젠 사사로운 일상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그렇다고 꽉 짜여진 계획된 일상은 더욱 싫습니다.가끔 습관처럼 가던 길을 버리기도 합니다. 오늘처럼 때와 장소를 바꿔도 기분전환이 되는 것을 잘 알기때문입니다.아내는 산에서 바지 단을 걷어 올리고 걷는 습성이 있습니다.얼굴이나 팔뚝은 햇볕에 노출하기를 싫어합니다.대신 비타민 D합성을 위해 꼭 종아리를 활용합니다.반면 필자는 종아리가 근육질로 뭉쳐 있어 남한테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대신 반팔을 즐겨 입습니다.팔뚝을 통해 비타민 D를 합성시키기 위해서 입니다.그래서 팔뚝과 얼굴은 여름이 되기 전에 벌써 까맣게 그을려 있습니다.그녀는 나의 까맣게 그을린 피부가 흉스런가봅니다.간혹 피부관리를 조언합니다.그러나 젊을 때 부터 스킨로션이나 크림도 잘 바르지 않던 사람이 이순에 피부관리한다고 알루미늄 그릇이 구리 놋그릇 되겠습니까.

 

숲 속에 바람이 일어납니다.시원한 바람입니다.나뭇잎을 통해서 우리는 바람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검단 숲 속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의 행선지를 우리는 모릅니다.그저 고르게 기압을 퍼 나르는 것일 겝니다.산 아래쪽에선 아까시나무 꽃향이 그윽했었는데 고도를 높이자 이젠 솔 향이 이를 대신합니다.아직도 태양은 서산마루를 넘을 생각을 하지 않고 멈춰 서 있습니다.작은 능선 쉼터에서 한 숨을 돌립니다.물 한 모금과 빵 한 조각을 먹습니다.출출한 때에 상큼한 공기를 소스로 발라 먹으니 맛이 더욱 좋습니다.그녀도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안부에서 약수터까지 길을 그녀에게 선을 보였습니다.뒤 따라 오며  한국의 차마고도 같다고 쫑알댑니다.대여섯 개의 작은 능선을 거의 수평으로 파도타기 하며 넘는 길입니다.아주 한적하고 상큼한 길이지요.이렇게 좋은 둘레길을 왜 오늘에서야 선보이는지 의아해 했습니다.숨겨두고 가끔 홀로 명상하며 걷던 길입니다.오늘 그녀는 대박을 만났습니다.늘 습관처럼 걷던 때와 늘 가던 길을 버리고 새로운 때와 길을 선택한 것은 그녀에겐 하나의 기분 좋은 사건인가 봅니다.산을 내립니다.이번에는 그녀가 앞 장 섭니다.혹시 어둠 내린 산 길에서 멧돼지의 공격이라도 받으면 안되니까요.앞서 가는 여인의 콧노래가 달콤하게 귀를 파고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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