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페로 들여다 본 들풀세상
폭염주의보를 내렸다는 소릴 들었으나 게의치않습니다.일을 대강 마치고 루페를 목에 걸었습니다.모자와 디카와 작은 물병 하나를 배낭에 챙겨 땡볕 속으로 들어갑니다.한 번 미치면 한 2년은 갑니다.테니스와 골프 그리고 등산은 각각 10년 쯤 미쳐 본 경험이 있습니다.그 외 서예,탐석(수석) 등은 정확히 2년 정도의 기간을 빠져들었습니다.그래서 그걸 미루어 짐작컨대 아내는 이번 숲 공부도 한 2년은 미칠거라고 지레짐작을 하고 하는 말입니다.사실 한 달 전만 해도 나무와 들풀들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줄 수 있는 갯수가 과일나무를 빼고,장미,코스모스 등 유명세를 탄 꽃들을 빼면 열 손가락을 넘을똥 말똥 했지요.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도 며칠 사이에 장족의 발전을 이뤘습니다.참으로 기특한 일입니다.
땡볕이 사정없이 내려쬡니다.오후4시의 한강둔치는 적막강산입니다.왜가리,백로도 오수를 즐기는지 뵈질 않습니다.다만 지난 여름 수해로 둑이 무너져내린 산곡천을 보수하는 포크레인 기사와 내가 이 공간의 유일한 대표인간입니다.자전거 전용로에 얼핏 또 한 사람이 지나가긴 했습니다.맹렬하게 땡볕이 내려쬐는 오훕니다.그러나 나에게는 꿀꿀한 오후가 아닙니다.가슴이 콩당콩당 뛰는 설레이는 오훕니다.
그동안 그림이나 산책길에서 수없이 스쳐 지나간 나무와 들풀들입니다.그러나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른 채 내외하듯 그냥 지나쳤습니다.무조건 주인 허락없이 디카를 들여댑니다.초상권 침해로 고소를 당한다 할지라도 이 순간을 아무도 말릴 수 없습니다."허허~이렇게 아름다운 네 얼굴을 왜 큼지막하게 내 보이지,꼭 확대경을 통해야만 보여주느냐?"고 물었습니다.너무 예쁩니다.혼자 보기가 아깝습니다.누가 옆에 지나가면 소리쳐 불러 함께 보자고 권했을 것입니다.작업거는 것이냐고 또는 미쳤다는 소릴 들어도 관계치 않았을 겁니다.한 참을 들여다 보다가 온통 땀으로 젖었습니다.길섶에서 민들레 열매 달린 대 하나와 토끼풀 한 대를 허락받지도 않고 꺾어 들고 버드나무 아래 벤치로 피서를 갑니다.땡볕이 너무 뜨겁습니다.물 한모금 마시고 병아리 흉내를 냅니다.하늘이 뱅뱅 돕니다.갑자기 바람이 살랑댑니다.땀을 식혀주는 고마운 바람입니다.
먼저 민들레 대를 집어들었습니다.루페로 들여다 봅니다."와~,너는 이런 세상에 사는구나".꽃씨가 수십개의 프로펠라를 돌리는 폼이 가관입니다.말미잘의 촉수처럼 흐느적거리며 추는 춤은 누구도 흉내내지 못 할 듯 합니다.골프공처럼 생긴 표면구멍(딤플)에 모를 심어 놓았습니다.딤플 갯수가 400여개인데 딤플이 많은 이유는 공이 나를 때 공기저항을 줄여주어 멀리 날기 위함입니다.아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민들레 열매에도 그 정도의 표면구멍이 있는 것 같습니다.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골프공을 만든 사람이 아마 민들레 열매를 나처럼 먼저 보고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나 싶습니다.가끔 이가 빠진 구멍도 있습니다.이미 바람 타고 비행한 것들 자리입니다.우주를 연상케 하는 겉모습 속에 작은 소우주 수십개가 모여 사는 모습이 이 우주를 닮았습니다.허리를 곧추 세우고 이번에는 지름 1cm의 토끼풀을 집어들었습니다.어~,이것 또한 별천지입니다."세상에~,세상에~".감탄사만 연발합니다.땡볕아래서 거의 시들었다고 생각한 작은 꽃 속에 이런 다이내믹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에 또 놀랍니다.육안으론 보이지도 않았습니다.루페로 들여다 본 그 속에는 깨알보다 작은 개미 두마리가 분주하게 꽃잎 사이 작은 등산로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그런데 이건 또 왠 일인가요?그 개미보다 반 쯤 되는 크기를 가진 날개 달린 곤충 한 마리가 꽃잎 속에 앉아 졸고 있습니다.날개가 제 몸통보다 깁니다.그 옆에 또 한 마리가 쉬고 있군요.노린재를 닮았습니다.
"세상에~,세상에~".
위대한 발견입니다.경의롭습니다.자연의 오묘하고 위대한 질서에 고개를 숙입니다.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입니다.앞으론 결코 오만하지 않겠습니다.그리고 잡초라고 함부로 뽑지도 않겠습니다.저 개미와 곤충들은 내가 50여 m를 옮겼지만,그들 가족으로부터 그들은 수만리를 떨어져 영영 이산가족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다행히 페르몬 분비로 그 가족을 찾아 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그렇다면 다행입니다.하지만 찾아 가기에는 너무도 많은 세월이 걸릴 것 같습니다.뽑은 자리에 되돌려 놓고 오지 않은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저 옛 로마의 초대 왕,카이자르의 '공존공영'의 세상살이 원칙이 생각나는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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