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겨울 산이 걸어오네 (검단산) / 갈참나무

천지현황1 2012. 2. 4. 09:29

 

불현듯 일을 하다 고개를 들자,검단산이 창 밖에서 성큼성큼 걸어 사무실로 들어온다.사무실이라고 해 봤자,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서재 겸 거실이 사무실로 변한다.그리고 곧 긴장모드로 전환된다.사무실 임차료가 무료이고,교통비가 절약되니 한결 주머니 걱정이 덜해 좋다.무엇보다 출퇴근 시간이 없어 시간을 늘여 쓸 수 있어 좋다.그리고 보다 현실적으로 좋은 게 하나 더 있다.맨 발에 헐렁한 편한 바지와 셔츠차림으로 생활하니 몸이 우선 편하다.주위 그림도 편안하다.멀리 예봉산 산마루금도 하얀 소복을 입은 채로 다가온다.오늘은 서둘러 일을 접고 배낭에 물 한 통을 달랑 넣고 현관문을 밀친다.바깥 바람은 차지만,오후 햇볕이 따사롭다.공짜로 마시는 공기가 달다.우주를 포함한 삼라만상이 모두 내 소유가 된다.

 

 오늘은 기필코 정상을 밟으리라.제반 여건도 좋다.눈이 싸여 겨울눈(冬芽)에 눈길 줄 일도 없다.정상까지 한 눈 팔지 않고 오를 수 있을 것 같다.겨울나무 공부를 하면서 산 정상을 밟기란 여간 어렵다.산 언저리에서 뱅뱅 돌다보면 시간이 휘익 하고 바람처럼 지나가기 일쑤다.오늘은 며칠 전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아 나무가지에 소복하게 싸여 있다.나목의 겨울나무만 먼 발치에서 보기로 마음 먹는다.

 

 오직 눈을 아래로 깔고 산을 오르다 초입에서 커다란 참나무류 한 그루를 만난다.고개를 뒤로 젖히고 나무를 올려다 본다.이파리를 낙엽으로 모두 떨어뜨리고 빈 가지 줄기엔 고독만 베어있다.이파리가 있어야 바람도 살랑댈 것이다.마침 산을 내리던 중년의 산객 한 분이 발길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건다."뭐 있슈?" "예,나무 좀 바라보고 있습니다". 산객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아무 말 없이 가던 길을 내린다.'나 원,별스런 사람 다 보겠네.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을 본다는 사람은 들었어도,나무바라기별을 본다는 사람은 처음 보네". 그 산객의 뒷태가 독백을 하는 듯 하다.발 아래 눈 쌓인 곳에서 반 쯤 목을 내 민 낙엽 하나를 빼내어 손에 들었다.'음,잎자루가 있군.떡갈,신갈장군은 아니네.'다시 나무껍질을 쳐다본다.수피가 희끗희끗한 세멘팅한 모습이 아니다.'졸참도 아니고 코르크도 없으니 굴참도 아니네.'다시 잎을 들여다 보니 잎 가장자리가 파상 물결모양이고,잎 모양이 주걱형이다.'아~그래,이 친구는 갈참나무다'.재미있는 복기를 해 보고 산 길을 다시 오른다.

 

 '눈을 찔끔 감고 앞만 보고 걷자'.된비알을 오르며 다짐을 한다.검단산 세한송을 만난다.눈을 함초롬이 뒤집어 쓰고 나를 바라본다.'오랫만이군,잘 지냈나?'디카를 꺼내어 '찰칵'하고 인사를 건넨다.이곳 세한송 길 모퉁이를 돌면 바위에 바위채송화가 살았고,그 이웃 집에 남산제비꽃이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말라비틀어진 모습으로 눈 속에 파 묻혀 있을 것이다.

 

 설한풍에 부는 한강 바람이 능선을 기어 오른다.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꽤 차다.그러나 등 줄기에는 땀이 쪼르르 흐르고 있음이 감지되어 겉 옷을 벗어 배낭에 넣는다.발걸음이 빨라졌다.천천히 오르리라는 처음 생각과 달리 나도 모르게 옛날 산행 버릇이 툭 튀어나온다.서봉 전망대를 만날 때까지 빠른 발걸음은 계속된다.박새 한 마리가 모이를 달라고 접근한다."미안하다.네 몫을 챙겨왔어야 했는데."

 

 

 

 

 

 

 

 

 팔당댐의 가둔 물이 얼음으로 덮여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멀리 다산 정약용 선생의 묘역도 흰 눈으로 치장되어 선생의 유택이 동화나라 그림 속에 들어 앉아 있는 듯 하다.그 뒤 중미산도 흰 골격을 드러낸 채 근육질을 자랑한다.잠시 쉼을 뒤로하고 마지막 산 길을 오르내린다.드디어 정상에 섰다.먼저 올라 온 산객 몇이 다리 쉼을 하며 두물머리를 내려다본다.직바구리 한 마리와 여러 마리의 곤줄박이가 또 곁으로 다가와 양식을 내 놓으란다.눈이 내린 겨울 산에서 그들은 양식을 구하는 방법이 오직 산객들에게 얻어내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다.미안한 마음을 안고 아이젠만 하고 자리를 얼른 뜬다.

 

 약수터 아래 계곡에서 작년 여름에 피었던 산수국을 만난다.헛꽃 몇 잎을 매단 채 눈 속에 쓸쓸히 서 있는 모습을 디카에 담는다.허리를 펴니 호국사에서 저녁 공양을 알리는 종소리가 '떠~어엉,떠~어엉'귓전을 파고 든다. (201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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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단산 세한송

 

 

검단산 서봉(585봉)에서 바라 본 두물머리 / 박새도 폼을 잡고

 

 

하얀 반달도 하늘에 걸리고

 

 

북한강,남한강,팔당댐 모두 꽁꽁 얼고

 

 

 

 

 

정상엔 직바구리와 곤줄박이가 등산객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르고

 

 

 

 

산을 내리자 지난 여름 청초하게 피었던 산수국이 헛꽃 한 두송이와 열매를 달고 서 있고 그 옆엔 깜찍한 겨울눈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 아래 내려서자 일본잎갈나무 숲에 함초로이 쌓인 겨울눈(雪)이 산길을 인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