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필(落筆)

함박웃음 짓는 꽃에게 물었다,"네 이름은?" / 함박꽃나무

천지현황1 2012. 7. 2. 21:38

함박웃음 짓는 꽃에게 물었다,"네 이름은?" / 함박꽃나무

 

 

아내랑 도란도란 얘기하며 숲 길을 걷습니다.숲 속에서 귀를 쫑긋 세우니 나무들의 수런거림이 들리는 듯 합니다.새벽 6시에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우리 둘을 밀양 호박소계곡의 삼양교에 내려놓고 그들은 석남고개로 달아납니다.오늘은 가지산-운문산 종주산행길입니다.오늘은 왠지 단체산행이 싫군요.우리 둘은 호박소계곡을 들머리로 해서 조용한 입산을 택하기로 합니다.날머리 석남사주차장에서 오후 5시에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싱그러운 초록의 산빛이 눈을 찌릅니다.왼편으로 백운산 마루금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백운이라는 산 이름처럼 흰 구름을 기대했으나 흰구름은 없습니다.하지만 깍아지른 절벽이 절묘하게 초록 산과 잘 어울립니다.초입 계곡물은 갈수기인데도 졸졸졸 옥구슬 소리로 구릅니다.산까치 한 마리도 숲 속 교향악단의 일원입니다.다만 바람소리만 침묵을 지키고 있네요.풀벌레 소리마냥 작은 소리로 합창단의 일원인 작은 산새가 물푸레나무 작은 가지 뒤에 숨어서 웁니다.아직은 목청자랑하기가 수줍은가 봅니다.사뿐사뿐 걷는 걸음인데도 이마엔 땀방울이 송송 맺힙니다.초여름 날씨입니다.숲 가족들이 반기니 그래도 기쁨이 넘쳐납니다.

 

숲 길을 걸으며 어제 받은 숲 생태교육 강의 전달교육을 실시합니다.청강생은 오직 한 사람 뿐입니다.강의가 시작되자 숲 속 가족이 하나 둘 시야에 들어옵니다.호랑나비 애벌레가 길섶에 누워 딩굴고,풍뎅이가 작은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산새도 우짓다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잠시 휴식에 들었나 봅니다.그들도 조용히 내 강의를 청강중일지도 모릅니다.생태와 환경차이부터 소나무의 지혜까지 강의 전달폭이 꽤 넓습니다.예전에는 아내는 교육자라서인지 이 분야에 조금은 예비지식을 갖고 있어 꽃 이름이며 나무 이름들을 필자에게 알려줬습니다.그러나 오늘은 스승과 제자가 바뀌었습니다.순간 숲 안내인인양 신이 났습니다.그녀는 흥미를 갖고 경청합니다.가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난해한 질문을 던지면서 몰입합니다.공자 앞에서 문자쓴다던가.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고 열강에 흐뭇해하는 모습에 스스로 신이났습니다."여보,밭갈이 하는 곤충을 포함한 동물군은 무었이 있나요?"그녀는 대답합니다."응,두더지,땅강아지...굼벵이".그래도 예상했던 것 보다 제법 대답이 길게 이어집니다.지렁이를 빼 먹자 곧 바로 "밭갈이 1등공신에 지렁이도 있지,그 넘(놈)은 땅 속 7m까지 공기구멍을 낸다는 설도 있다네".'우하하',마치 내가 선생같습니다.재밌습니다.역할분담이 바뀐 숲 속 강의 전달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고개마루를 올라서자 가지산-운문산 갈림길이 나타납니다.산행개념도를 들여다보니 원래 계획했던 산길을 벗어나 가지산 정상에 가깝게 올라섰습니다.아마 지금쯤 일행들은 가지산 정상에 섰을겝니다.지척에 있는 가지산 정상을 외면합니다.가지산은 영남알프스군의 맞형격입니다.해발 1,000M이상 높이의 7개 산군 중에서 제일 높은 산이지요.가지산 정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발길을 운문산으로 돌립니다.눈을 들어 멀리 바라다봅니다.어깨동무하고 강강술래하는 영남알프스 산군이 시야에 들어옵니다.훗날 아내가 퇴직하고 나면 며칠 머물며 환종주하자고 기약하니 조금은 덜 서운합니다.능선길을 내 딛자 곧 숲 속입니다.운문산을 훔쳐보며 방향을 잡습니다.안내 표시판이 있어야 할 곳 한 두 군데가 없어 길이 헷갈립니다.능선길에서 어림잡아 한 200여M는 아래로 떨어진 듯 합니다.혹 산길 방향이 옳은지 의심이 듭니다.종주길인데 산길도 좁고 표지기도 거의 붙어 있지 않아 불안감은 커집니다.아내에겐 불안한 얼굴 들키기가 싫어 태연히 길을 내립니다.'아랫재'안내표시판을 만나고서야 속으로 안도의 한 숨을 쉽니다.가슴까지 후련합니다.옳은 방향의 산길을 걷는 것이 확인되는 찰라입니다.적당한 숲 길에서 '덕산 더덕주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도시락을 까먹습니다.꿀맛이란 이런 맛인가 봅니다.

 

다시 운문산 정상까진 2~300M는 치고 올라야 할 듯 싶습니다.못다한 숲 속 강의는 계속됩니다.흥이 났습니다.경청을 해 주는 청강생이 있고,숲 속 가족의 응원이 있으니 최고조의 흥이 산길을 인도합니다.운문산 정상을 찍고 상원암 내림길에 산목련이라고도 불리는 함박꽃나무 군락을 만났습니다.행운입니다.푸른 산 녹색바탕에 그 꽃은 군계일학으로 우뚝 다가왔습니다.너덜길을 조심조심 내려오자 이번엔 때죽나무꽃이 낙화해 카핏길을 만들었습니다.이제까지 무심코 다닌 산길이 더 즐거워졌습니다.오늘따라 숲 속 친구들이 한 가족으로 맞이하는 듯 합니다.나도 정식으로 숲 속 가족이 되었습니다.함박꽃에게 '너는 누구냐?'물었던 하루가 행복한 순간으로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