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 갈대와 억새
한강둔치를 산책하다가 갈대와 물억새 군락지를 만납니다.사람키를 훌쩍 넘습니다.둔치에서 능수버들을 빼고나면 제일 키 큰 식물이지요.강가에 키 큰 나무가 살지 않는 이유는 강풍이 생육을 방해하기 때문일겁니다.저 지난 여름 태풍에 둔치 능수버들이 30여 그루나 허리가 꺾였습니다.그러나 갈대와 물억새는 꿋꿋하더군요.갈대와 물억새는 아무리 세 찬 바람에도 끄떡없습니다.바람 부는대로 제 몸을 휘어댑니다.갈대와 물억새 줄기 속은 비어 있습니다.부러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줄기 속을 비우면 바람 피해만 막는게 아니라 에너지도 절약할 수가 있습니다.절약된 에너지는 키를 키우고 튼실한 이삭을 만드는데 사용됩니다. 아무리 키를 키워도 부러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은 마디를 만들어 놓습니다.놀랍습니다.경의롭습니다. 얼마나 멋진 생존전략입니까?닮고 싶습니다.
갈대와 억새는 우리에게 친근한 감정으로 다가오는 추억의 들풀입니다.갈대의 순정으로 다가오고,으악새 슬피 우니로 떠나갑니다.지난 가을 강바람이 억새밭을 훑고 갈 때가 생각납니다.듬성듬성 억새밭 속 갈대는 서럽도록 머리 풀고 가을 하늘을 향한 몸짓으로 갈대의 순정을 불러댔지요.꼭 말 없이 떠나보낸 연인을 생각하며 못 잊어 우는 모습이었습니다.♬~'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바로 그런 모습으로 말입니다.지금은 줄기와 잎이 생장 중이어서 새 꽃 이삭은 아직 매달려 있지 않습니다.다만 작년 이삭이 바람에 꺾이지 않고 억새밭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끼와 까투리의 파수꾼 노릇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억새도 노랫말을 낳았습니다.♬~'아~으악새 슬피우니~~'의 노랫말입니다.으악새는 "새(鳥)"가 아니라 '억새'를 가르키는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러니까 '으악새가 슬피 운다'는 것은 '새가 구슬프게 우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억새에 스치는 구슬픈 소리를 풍류적으로 비유한 것입니다.얼마나 멋집니까?'으악새'노래 제목이 '짝사랑'이던가요?이 노래 작사자이신 박영호 선생이 무슨 뜻으로 '으악새'를 썼는지가 진짜 답일 겁니다.으악새가 진짜 새면 어떻고,억새면 어떻습니까?한 잔 술에 녹아 들 듯 우리 가슴 속에 녹아든 으악새, 새로도 풀로도 연상케 하는 넉넉한 선생의 창의가 돋보입니다.갑자기 강가에 왜바람이 불어댑니다.가을이 라콤파르시타를 부르며 저만치 떠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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