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욕심과 숲 탐구심이 충돌하던 덕유 산행길 / 꽃쥐손이
경희궁에서 들여다 본 들풀세상은 내겐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60여 평생을 살아 오며 들풀이라곤 애기똥풀,개망초,민들레 등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무지의 삶을 살았습니다.부끄러운 과거입니다.민들레와 노랑선씀바귀의 구별도 힘듭니다.그 꽃이 그 꽃 같고,이름 또한 어제 처음 들은 들풀들이 허다합니다.꼭두서니,개갓냉이,명아주,며느리밑씻개,서양등골나물,개불알꽃 등 등,30여종 이상의 들풀세상을 체험했지만 워낙 이 분야에 무지하여 구별이 쉽지 않을 뿐더러,그 예쁜 들풀 이름도 많이 생소합니다.그러나 길섶이나 산책길에서 눈에 익숙한 들풀들도 많았습니다.다만 무관심과 무지의 소치로 그들과 친구삼기를 못한 탓이 큽니다.세상 거칠게 살았다는 핀잔을 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인문의 숲에서 허우적대다 이제야 자연의 숲에서 쉬고 싶습니다.말이 좋아 인문의 숲이지 그 세상은 살벌한 세상입니다.무한경쟁의 세상이라고 보면 딱 맞습니다.하지만 내가 막 입학한 자연의 숲은 무궁무진한 지혜의 보고이자 상생의 세상입니다.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열망이 샘 솟습니다.E.F.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글에서 용처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대중 속에 살면서도 은자처럼 살며 영원한 구도자의 모습으로 탐구하며 살 것을 주문합니다.사실 필자가 갈구하는 세상이 이런 세상입니다.
오늘은 덕유평원을 걸으며 들풀과 친해 보고 싶습니다.그래서 루페(loupe)도 목에 걸었습니다.설천봉에서 향적봉 오름길 여기저기서 들풀들이 인사를 나누자고 합니다.관심을 가지고 보니 이곳 또한 들풀세상이었습니다.꽃쥐손이가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이름을 아직 모르는 작은 꽃도 길섶에 피어 길손의 시선을 잡아끕니다.
깨알 보다 작은 꽃에 루페를 갖다 댔습니다.앙증맞게 작은 꽃이 확대경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경의롭습니다.작은 꽃봉오리를 말아 올려 그 안에 암술과 수술을 담았습니다.육안으론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루페를 통해 보는 들풀세상은 놀랍고 아름답습니다.아내에게 루페를 건넵니다.그녀도 들여다 보고 신기하고 아름답다고 감탄합니다.신갈나무잎이 선명합니다.참나무6형제가 헷갈리지만 이젠 어렴풋이 구분이 갑니다.산행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길도 외길이지만,들풀만 보면 들여다보니 걸음이 느립니다.산행시 한 가지 즐거움이 늘었습니다.
향적봉에 올라서니 만감이 교차합니다.몇 년 전 그 때가 떠 오릅니다.구천동계곡길을 돌아 백련사 뒷 등로를 타고 오른 기억입니다.그 때도 아마 초 여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향적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중봉은 코 앞에 서 있습니다만 그 뒤로 삿갓을 쓴 산봉우리는 삿갓봉입니다.그 뒤로 병풍처럼 남덕유산과 서봉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며 서 있네요.한 숨에 달려가기는 틀렸습니다.이젠 들풀과 인사도 튼지라 자꾸 발걸음이 멈춰집니다.노랑선씀바귀인지 가락지나물인지 헷갈립니다.그러나 지난주 운문산에서 1촌맺기를 한 함박나무의 꽃은 이름표 없이도 그 꽃인지 알 수 있군요.반갑다고 숲 속에서 뛰쳐 나와 다소곳이 인사합니다.순백의 꽃이 녹색의 숲에 잘 어울립니다.백당나무도 동구릉에서 통성명을 한 후 이곳 덕유 능선길에서 반갑게 조우합니다.역시 헛꽃이 더 아름답습니다.시집을 갔는지 물었습니다.어느 자매는 갔고 아직 가지 않은 자매도 있답니다.벌,나비 중매쟁이가 바쁜 모양입니다.아내는 마음이 조급한지 멀리 달아나 시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단체산행이라 날머리시각에 늦지 않아야 귀가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자꾸 뒤돌아봐지지만 발걸음을 재촉해 그녀를 따라 잡습니다.그녀가 말합니다."요즘 당신 꼭 15세 소년 같아".칭찬으로 알아 듣습니다.아마 숲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거스르고 잠까지 줄이는 모습이 기특한가 봅니다.아니면 산책길에서 틈만 나면 전달교육을 받아 기분이 좋은 지도 모릅니다.여하튼 좋은 표정을 짓습니다.거기다 가끔 '김에우니케'라고 불러주니 기분이 더욱 좋은가 봅니다.에우니케는 뒷 태가 매혹적입니다.'쿠오바디스'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 중 한 명입니다.정말 뒷 태가 곱습니다.파리 루부르박물관에서 본 비너스 조각상의 뒷태도 이보다 매혹적이진 못합니다.
중봉을 넘어 동업령 아래 숲 속에서 도시락을 까먹습니다.꿀 맛입니다.여유를 즐기고 싶지만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정해진 산행시간에 맟춰 하산해야 일행들이 기다리지 않고 예정대로 귀가할 수 있습니다.예전에 2년 동안 산행대장직을 봉사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산길에 대한 속성을 알고 있어 산행구간 시간조절에 조금은 익숙합니다.미리 가 보지 않은 산은 도상 연습으로 거리와 시간을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 둡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상과 그리 큰 차이 없이 하산시각에 맞춥니다.오늘도 날머리 숲 계곡에서 알탕을 합니다.그렇게 시원할 수 없습니다.시원한 알탕을 권유해 보지만 쑥쓰러운가 봅니다.아내는 탁족으로 만족해 합니다.예정시각 5분 전에 날머리에 도착하니 일행들은 느티나무 정자 아래서 후미를 기다리며 시원한 맥주로 뒤풀이를 하고 있습니다.후래삼배로 벌컥벌컥 들여 마십니다.마치 생수마시 듯.15km 이상의 산길을 급하게 걸어서인지 아내는 무릎이 뻐근하다고 즐거운 투정을 하는 사이 버스는 금산의 원조삼계탕집에 일행을 내려 놓습니다.인삼주에 삼계탕 한 그릇을 비우고 귀경길에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하루 일과가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잠깐 코를 골며 즐거운 꿈 속으로 빠져듭니다.한 잔 술이 귀경길을 이렇게 지루하지 않게 인도합니다.깻잎처럼 생긴 들풀이 아마 서양등골나무라고 헸던가.아니 서양등골나물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가물가물합니다.돌아서면 잊습니다.돌아서지 말아야 할텐데 또 돌아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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