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필(落筆)

정인호의 <화가의 통찰법>을 읽고 (2017.09.07)

천지현황1 2017. 9. 7. 13:14

정인호의 <화가의 통찰법>을 읽고 (2017.09.07)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느낀다'는 명언은 예술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통하는 말이다.나의 무식과 편견 그리고 오만으로 내 정체성에도 혼란이 왔다.세상을 잘 못 살아온 것 같아 요즘 혼란스럽다.좌와 우,보수와 진보 보다는 균형감각을 중시했다.소통 보다는 침묵을 지향했다.그러다보니 촛불이니 태극기니 하는 열정 보다는 방관자적 태도를 견지했다.


정인호의 <화가의 통찰법>을 읽다가 나의 무지와 편견이 부끄러웠다.저자는 경영평론가답게 화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그들의 통찰력을 기업경영에 접목하여 평론하기도 한다.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끌어내어 내 편견을 바로 잡아준다.두 그림을 다시 살펴본다.


<그림1> /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


위 작품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피터 파울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라는 작품이다.그림을 보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했다.벌거벗은 노인과 발칙한 여인의 애정행각을 그린 작품일까.본질을 알고 보니 나의 무지가 들통났다.작가는 설명한다.이 그림을 로마의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가 쓴 <고대 로마인들의 기억될 만한 행동과 격언들>이라는 책의 제4권 제5장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이란다.내용인즉슨 "옛날 로마시대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죄를 짖고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굶겨죽이는 형벌을 언도 받았다.이 노인에겐 페로라는 딸이 있었는데 면회를 갔다.형벌이 굶겨죽이는 벌이기에 먹을 것을 가져갈 수 없었다.굶어 죽어가는 아버지를 차마 볼 수 없던 딸은 아버지에게 젖을 물려 생명을 연장시켰고 딸의 효심덕분에 석방되었다"는 내용이다.그림의 본질을 알고 보니 이 그림은 외설스런 작품이 아니라 부녀의 사랑을 담은 숭고한 성화다.결국 외설과 성화는 한 그림의 겉과 속이구나.


 <그림2> /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


이 그림만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그림도 드물 것이다.서정적이고 목가적이어서 복사본 그림이 이발소나 음식점에 많이 걸려 있었다.서민풍이 물씬 풍겨 익숙한 그림이다.나는 여태껏 이 그림에서 이삭을 줍는 세 여인만 보았고 우리 어릴 적 농촌 모습이라고만 여겨 친근감이 들었었다.그런데 본질은 다르다.그림을 지세히 들여다보니 멀리 오른 쪽 후미에 말을 타고 쳐다보는 사람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밀레가 활동했던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농촌풍경인데 당시 이삭줍기는 최하층 빈민의 배를 채우는 농장주가 베푸는 일종의 시혜라는 것이다.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부르조아 계급인 농장주라고 해 비평가들이 불쾌하게 여겨 밀레를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한 작품을 보고도 자신이 처해진 입장에 따라 아전인수격으로 작품을 해석하기도 한다.나는 지천명이라는 이순의 나이를 넘기고서야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 그림에서 말을 탄 남자가 같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화가의 통찰법>이라는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저 목가적인 밀레의 그림이려니 하고 여겼을 것이다.


옳고 그름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편견과 오만을 갖지 말아야겠다.자신의 집착에서도 벗어나야 하겠다.소통을 할까,침묵을 할까 고민도 하지 말자.그저 본대로 느낀대로 소통하며 때론 침묵하며 살 것이다.누군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했다.누군 아내의 앞날이 걱정이 되어 자살을 했다.어떤 천재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린다.모두가 자신의 의지로 행하는 권능일 것이다.이젠 자살도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로 치닫고 있다.고령화시대에 더욱 주목해야 할 사회이슈임에 틀림없다.천재 화가들의 통찰법을 읽다가 갑자기 그제 삶을 버린 마광수 교수가 중첩이 되어 횡설수설해 본다.어쩌면 그도 시인 이상처럼 한 세대를 앞서 간 천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