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서울대공원 산림욕장둘레길 241110

천지현황1 2024. 11. 10. 14:54

서울대공원 산림욕장둘레길 241110

 

*대공원역(08;50)-산림욕장둘레길-대공원역(12:00) ... 10.5 km

 

열흘 전 친구와 단둘이 걷던 그 명품숲길을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 길을 서둘렀다.대공원역에 내리자 동물원에 가는 가족들로 길은 만원이다.지난 번처럼 입구 노점에서 번데기 한 컵을 사들고 공원길에 들어선다.한무리 유산객들은 동물원 매표소로 향하고 우린 산림욕장둘레길 입구로 들어선다.된비알 계단길을 올라서자 숲정이를 벗어난다. 아내랑 둘이 호젓한 숲길에 들어섰다."아니,이런 멋진 숲길을 이제야 걷다니".아내는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이런 좋은 숲길을 지척에 나두고 그렇게 멀리 전국을 헤매었단 말이지,명품숲길이네".

 

나는 이수정 철학 에세이,<하이델베르그와 프라이부르크의 사색일지>에서 많이 언급되는 독일 철학자,하이데거처럼 사색하며 걷는다.때론 괴테를 생각하며 괴테처럼 걷는다.가을은 깊었다.단풍은 낙하하고 낙엽은 구른다.등로 저편엔 일본목련 낙엽이 등을 히멀겋게 내놓고 전쟁터 병사처럼 널브러져 있다.일본목련 겨울눈이 붓끝처럼 뾰족하게 하늘을 쳐다보며 가지에 달려 있다.등로엔 가끔 갈참나무잎도 긴 잎자루가 달린 채 등로에 깔려 있다.누리장의 붉은 꽃은 까만 열매를 맺은 채 만추를 그린다.역시 간혹 남은 붉은 단풍은 길손의 가슴을 붉게 물들인다.

 

둘레길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동물원 방향의 숲은 평온하다.멀리 삼각산과 오봉이 아스라하다.사색하며 걷기도 하다가 무상무념으로 걷기도 한다.전망대를 지나 청계산 마루금을 올려다 본다.코앞 지척이다.산림욕장둘레길 중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이다.숲길엔 쉼터가 간간이 조성되어 있다.어느 쉼터엔 젊은 부부 한 쌍이 쉰다.또 다른 쉼터엔 나이 지긋한 노년들이 쉰다.우리도 산길을 걷다가 어느 조용한 쉼터에서 간식을 즐긴다.까마귀 한 마리가 집요하게 울부짖는다.통행세를 내라는 뜻일까.숲모롱이를 돌아 서니 바람이 풍탁을 치고 달아난다.멀리 숲 속에선 딱다구리가 목탁을 친다.아마 1초에 15번 정도 쪼아댄다지.묵언하며 걷는다.다시 숲은 조용해졌다.발에 밟히는 낙엽소리만 귓전을 울린다.결코 앗기고 싶지 않은 조용한 시간이다.계수나뭇잎이 향을 풍길 때에서야 고요에서 벗어났다.갑자기 동물원 가는 길에 많은 인간들이 오고간다.선계를 걷다가 인간계로 내려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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