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중에서
-냉이와 씀바귀 (2002.03.02)
아침 식탁에서 봄을 먹었다. 어제 속리산 문장대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마을 모퉁이 길에서 장터를 만났다.시골 할머니가 팔던 봄 (냉이와 씀바귀)을 단돈 3,000원에 샀다.
늘 여행길 버릇처럼 온천을 찾는다.아내와 나는 화양구곡에 있는 화양온천에 들러 선녀처럼 천상락을 즐기고 귀경하였다.
*분원-청원IC-속리산(140km, 60km-2시간20분 소요)
-금싸라기 같은 하루 (2002.03.17)
아침 일찍 집 뒷산 금봉산에 톱을 들고 올라간다. 늘 산책길에 보아온 칡넝쿨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멀쩡한 소나무들이 칡넝쿨에 한번 휘감기면 영락없이 죽는다. 말라비틀어진 모습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한참을 정신없이 정리한다. 땀이 송송 배어 옷을 적신다. 점심 직전 산을 내려온다. 텃밭에서 씀바귀 한줌을 캔다. 흐르는 물에 씻어 나물 무침을 해 먹으니 봄 맛 또한 상쾌하다.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이조시대의 풍속화가 들을 만났다. 혜원 신윤복, 긍재 김득신, 겸재 정선 그리고 작자 미상의 해학적인 그림들 속으로 푹 빠진다. 그 한 나절, 참으로 나를 버린 행복한 순간이었다. 밤늦은 귀가 길에 중앙병원에 들러 이O윤 씨 조모상을 문상하고 귀가했다. 금싸라기 같은 오늘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두릅정식 조반 (2002.04.16)
어제 오후 퇴근 후 늦게 직장 동료들과 집 근처 팔당호반도 구경 시킬 겸 분원 고향매운탕집에서 붕어찜을 곁들여 소주 한잔을 했다. 여느 때처럼 술을 마신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일찍 일어난다. 기상 시간이 평소보다 빠른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냉수 한 잔을 들이킨다. ‘우암 송시열’책을 읽다가 빗소리에 현관문을 연다. 희미한 금봉산 안개자락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또 빗소리를 듣는다. 안개비 속을 우산을 받고 아침 산책을 한다. 집 울타리가의 두릅나무 몇 그루에서 파릇파릇 어린 새 순이 밤사이 비를 맞고 돋아나 있다. 두릅정식 조반이 먹고 싶다. 적당히 자란 새 순 몇 순을 꺾는다. 울타리가의 4-5년생 두릅나무 몇 그루가 지난봄에도 입맛을 돋우더니 금년에도 식탁에 두릅 향을 선사한다. 봄 비 탓인지, 금봉산의 아침 안개 탓인지 두릅 향이 진하고 그윽하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나왔으니 자연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법, 요즘처럼 자연과 벗하며 지내는 삶이 그져 마냥 즐겁기 만하다. 한 쌍의 원앙의 삶이 이보다 더 행복할까?
-이사 유감 (2002.05.12)
오늘은 조선시대 말 130여 년 동안 마지막 이조백자를 구웠던 도요지, 분원 땅에서 1년 2개월 동안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하남으로 이사를 한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팔당호를 바라보며 산책하고, 금봉산을 오르내리며 듣던 소쩍새, 분원새 (이름 모르는 새의 울음이 구슬프고 독특하여 새 이름을 분원새라 명명했음)의 울음소리 듣기를 멈추어야 하는가! 텃밭에 상추, 오이, 고추 심고 가꾸며 농사짓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전원생활을 연습한답시고 학교 사택이 비어 있어 수리를 하고 둥지를 틀었으나, 도중에 타의로 전원생활을 접어야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무엇보다 채소 등을 가꾸며 풋내기 농사꾼의 연습에 막 재미가 붙는 순간 인지라 더욱 서운하다.
지난 가을엔 배추 50여 포기, 무 100여개, 상당량의 고추를 수확했다. 동생네, 동서네 그리고 직장 동료 김O호, 강O철 등 여러 곳에 수확물을 나누어 주었을 때의 작은 기쁨은 시골 큰집 역할을 한 것 같아 흐뭇했다. 먼 훗날 기회가 닿으면 다시 전원생활을 기약하며 하남 검단산 아랫마을 신안아파트에 둥지를 튼다. 이젠 전원생활은 접었다. 아내는 사택보다 집도 넓고 산도 가깝고 한강도 가까워 좋다고 나를 위로한다. 하지만 큰 맘 먹고 결행한 전원생활 연습이 이렇게 짧게 막을 내려야하는 현실이 아쉽다. 기회가 오면 다시 텃밭을 가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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