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상해 소주 항주를 다녀와서

천지현황1 2005. 7. 27. 17:11

                             -상해 소주 항주를 다녀와서

예원 담장위의 용과 발톱

  

 지난 연말부터 정월까지 두 달 간 이이화 선생의 <한국사 이야기> (통권 22권) 글 속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내다 2월을 맞이한다. 지난 겨울에 동해안과 제주도 그리고 남도 쪽엔 폭설이 내렸다는데 내가 사는 서울엔 눈다운 눈이 내린 기억이 없다. 단지 서울 근교 산행 시 한 두 번 눈을 밟아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눈 구경도 할 겸해서 강원도 내륙지방이나 동해안 또는 제주도 우도 여행을 마음속에 계획했다.


 

 그런데 아내는 황금 같은 방학이 다 지나기 전에 해외여행 병이 도지는지 중국여행을 하자고 졸라댄다. 일찍부터 중국을 한번 다녀오고 싶긴 했는데 이상하게도 선 뜻 나서지를 못했다.  여행비를 아내가 댄다니 몸만 따라가면 된다. 마음은 벌써 상해에 가 있지만 아내에겐 내 마음을 숨긴 채 “제주도 우도에 가서 일주일 쯤 지내다 오고 싶은데...”하며 능청을 떨어본다.


 

*은하철도 구구구, 아내 따라 3만리


 

 2005. 02. 03 10:15  KE 893 편에 몸과 마음을 싣고 인천공항을 이륙한다. 해외여행 시 마다 늘 공항까지 차를 몰고 와 장기 주차를 하곤 했는데, 이번엔 아예 집에다 차를 버려두었다. 요즘 들어 달라진 생활 단면중의 하나이다. 많이 걷고 대중교통 잘 이용하는 것이 조금씩 생활화가 되어간다. 창밖 창공엔 흰 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내 마음엔 가벼운 흥분이 스쳐간다.


 

 서해안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던 비행기가 지리산 상공에서 난기류를 만나 좌우로 동체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기내 안내 방송이 나오고 좌석 벨트를 다시 멘다. 전 직장에선 당시 출장이 잦았는데, 국내 여수 출장시엔 6인승 회사 경비행기(코플래인)를 자주 이용했다. 그 때 지리산 상공에서 에어 포켓을 자주 만나 수직으로 50m 쯤 수직 강하를 당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회상됐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새만금 방조제가 바닷물을 3km쯤 아직 막지 못한 채 들어간 공사비를 원망하며 길게 누워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세상엔 옳고 그름을 시비하는 두 부류가 있다. 소송의 판결을 담당한 판사는 어떤 마음으로 명 판결을 내릴까하고 고민했을까?  90%의 물막이 공사 진행을 이제 와서 중단시키는 마음은 흰 마음일까 아니면 녹색 마음일까? 지구촌 환경보존에 앞장서며 100일 단식을 하던 비구니 스님은 비몽사몽간에 무슨 생각으로 지냈을까?  인간의 편리함 추구와 자연 환경의 보존이라는 두 명제는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 이어지리라. 1960년대 “하나 뿐인 지구를 보존하자”는 환경운동의 시작이 50여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비행기는 상해 푸동(Pudong)공항에 착륙하고 있다. 시계를 보니 인천공항을 이륙한지 한 시간 50분이 흘렀다.


 

*황포강은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 동방명주에서 내려다본 황포강과 상해 신시가지

 

 푸동공항에서 상해 시가지까지는 대충 한 시간이 소요된다. 구시가지를 지나며 흐린 날씨 속에 아파트 베란다에 널린 세탁물이 이채롭다. 흐린 날이 많기 때문에 빨래 건조에 애를 먹는다는 표시리라. 세계 어느 도시를 가 보아도 교통 혼잡은 비슷한 것 같다. 상해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멀리 황포강을 사이에 두고 신시가지 쪽엔 빌딩 숲이 뉴욕의 맨하탄 같다. 음~ 상해는 역시 듣던 대로 국제도시로고.


 

 옛 상해도심에 무궤도전차가 오토바이와 자전거 부대를 이끌고 달리고 있다. 도심 간판의 색깔이 붉은 색이 많아 호화롭다. 간판엔 한문 파자가 많이 눈에 띈다. 보행자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버스로 사정없이 뛰어든다. 아슬아슬하다. 관광버스 속에서 “저런~ 저런~‘ 외마디 신음소리가 간간히 흘러나온다. 버스 기사는 당연하다는 듯 표정이 없다.

 

↗ ↘ 태가촌 음식점에서


 태가촌에서 ‘타이타이’족 소녀들의 무대 위 춤사위를 보며 현지식으로 중식을 든다. 음식점엔 중국인들은 드물고 한국인 관광객이 우리 팀 말고 두 팀이나 함께 자리를 하고 있다. 8가지 요리가 기본인 현지식은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 녹차로 위벽의 기름기를 씻어낸다.


 

 상해는 관광코스로 임시 정부 청사방문과 상해 유일의 명원인 ‘예원’ 그리고 ‘동방명주’ 관광과 윤봉길 의사가 순직한 ‘홍구공원’(지금은 ‘노신공원’이라 명명)방문과 유럽풍의 거리 ‘외탄’과 번화가 ‘남경로’의 관광이 계획되어 있다.  


 

*16세기 남방정원 예원(豫園)과 동방명주탑

 

  

  

송수나무로 만든 욕심나는 의자

 

 명나라 관료였던 반윤단(潘允端)이 부모님을 위해 지은 중국 남방 전통의 정원으로 아기자기하다. 송수나무로 만든 의자는 예술적인 공예품이었다. 예원 관광후 1994년 세운 동방명주탑에 올랐다. 현판에 강택민의 이름이 나란히 조각되어있다. 파리의 에펠탑처럼 상해 도심에 우뚝 서 있어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포강은 휘어 감고 지나는 곳마다 가지각색의 다양한 모습의 건축물을 배치하여 상해를 국제도시라고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그 때 그 시절의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며

 

윤봉길의거현장 표지석


 

 한국인에게는 홍구공원으로 더 알려진 노신공원을 찾았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거현장’을 기념하는 표시석이 비를 맞으며 공원 한켠에 쓸쓸이 서있었다.  원래 의거 현장은 공원 안쪽으로 300여 미터 들어간 곳이었는데 <아큐정전>의 저자인 노신(魯迅) 선생의 묘비가 차지하는 바람에 옮겨 왔다는 설명이었다. 세월은 흘러도 역사는 말이 없이 후손을 부르고 있었다.


 

*상해 써커스 관람


 

 홍구공원의 겨울비를 맞으며 어둠을 뒤로하고 늦은 저녁식사를 마친다. 스케줄대로 상해 써커스를 관람하고 늦은 시각에 한시간 반가량이 걸린다는 소주(蘇州)로 향한다. 차창엔 겨울비가 내려 시야를 흐린다. 버스 기사의 길 미숙으로 밤길을 3시간 정도 헤메다가 12시가 넘어서 호텔에 도착했다. 첫 날부터 강행군 한 탓으로 피곤이 엄습하여 쉽게 꿈나라로 들었다.


 

*누가 소주(蘇州)를 ‘동양의 베니스’라 하였는가

 

 

 

  

 

 

 

 

 

 

   


 중국에서 자연경관이 가장 아름답다하여 ‘동양의 베니스’라 하였는가. 중국인들은 ‘소주에서 태어나, 항주에서 살고, 광주에서 요리를 즐기고 산세 좋은  유주에서 죽고 싶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를 한다나.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소주에 234개의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고 한다. 소주는 정원의 도시인 셈이다. 그 중에서도 중국 4대 정원중의 하나인 졸정원(拙政園)은 16세기 초에 왕헌신이 지은 개인 별장이라는데 그 규모나 아름다움에 입이 딱 벌어진다. 기기묘묘한 태호석(太湖石)의 기암괴석의 정원석은 수석을 즐기는 필자의 넋을 빼앗았다.  우리의 오석(烏石)처럼 경도가 단단하지 않아 기기묘묘한 투(透)를 만들어 낸다.


 

 졸정원의 건물 창살모양도 제각기 다르게 만들어 빼어난 조형미를 선사한다. 5만 평방미터의 정원 면적의 반 이상을 연못이 차지한다. 그리고 정자와 태호석이 군데군데 있을 곳엔 어김없이 조화롭게 서 있다. 아~ 이 정원이 개인 별장이라니! 정원 바닥의 공기돌 들의  조화로운 박힘에 또 한번 혀를 내 둘린다.  명나라 시대의 건축물인 이 졸정원은 10여년을 걸려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참으로 인상 깊은 곳으로 각인될 것이다.

 

  

소주시내 교차로 신호등- 우리나라와는 달리 신호등에 45초 또는 80초 등의 초침 시간이 표시되어 교차로 통행에 안심하고 건널 수 있음 .  교차로 신호등 아이디어가 아주 좋음


 

*한 여인이 두 남자를 출가시켰다는 전설의 한산사(寒山寺)

 

 남조 양 천감 연대에 고승 한산자(寒山子)가 지은 절로 한산자가 젊은 시절 약혼녀가 결혼 전날 한산자의 절친한 친구와 만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고백하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된다. 결혼은 한산자와 하지만 가슴엔 한산자의 절친한 친구를 품고 일생을 살 것 같아 그만 한산자가 출가를 결심한다. 친구도 염치는 있었는지 한산자를 따라 출가를 한다. 그녀는 결혼 상대도 불가로 보내고 마음속에 사랑하는 연인도 또 출가시키고 대단한 여인이었나 보다. 한산사의 부처님은 배가 작은 동산처럼 불룩하게 나왔다. 그리고 빙그레 웃는 모습이다. 아마 속세의 질긴 인연을 여인은 어떻게 승화시켰을까? 자못 궁금하다.


 

*중국에도 피사의 탑이?

 

 

 

 960여전 전에 지었다는 호구탑도 아름다운 정원 속에 15도쯤 기울어 중국의 피사탑이 되어 관광객을 부른다. 언덕에 45.7m의 높이로 서 있어 시내에서도 눈에 잘 띄었다. 소주는 곳곳이 정원이라 아름다운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도 소주에 와서 호구(虎丘)를 구경하지 않은 일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아쉬워했다는 말이 전해온다.


 

*중국 총각이 아내의 발 맛사지를


 

 맛사지를 하는 상술도 그럴 듯 하다. 남자 손님은 처녀 맛사지사가, 여자 손님은 총각이 각각 맛사지를 담당한다. 그래야 기(氣)를 받아 좋다나. 원래 성(性)이란 다 그런 거니까. 50여분 간 중국처녀가 스킨쉽을 해 대는데도 감각이 없다. 아마 아내가 옆에 떡하니 누워 감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항주에서 송성(宋城)쇼를


 

 소주에서 항주로 이동하는 고속도로는 2002년에 개통되어서인지 깨끗하다. 광활한 땅에 사통팔달로 길들이 시원하게 뚫려있다. 나는 여행 중 차 속에서 가능하면 졸지 않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견문을 넓히려고 애쓰는 편이다. 항주 가는 고속도로변은 넓은 땅과 운하들이 자주 눈에 띈다. 소주외곽엔 2층 가옥이 항주 외곽엔 3층 가옥이 많다. 아마 항주가 소주보다 부유한 티가 난다. 길가엔 뽕나무밭이 많다. 북경에서 항주까지 ‘경항대운하’를 만들어 수로를 활용하고 있다. 항주 가는 길에 운하가 곳곳에 흐른다. 아마 관개 수로로 사용도 하고 수로로 이용되기도 하는지 운하마다 배들이 많이 떠 있다. 


 

 중국은 요즘 춘절 직전이라 인구의 대이동이 시작되어 시내 거리에선 선물 꾸러미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그리고 관광지엔 내국인 관광객은 안 보이고 관광버스 10대에 한 대꼴로 일본 관광객이 보이고 아홉 대는 한국인 관광객으로 붐빈다.


 

 항주 가는 차 속에서 현지 가이드는 조심스럽게 계획에는 없는 옵션 상품 ‘송성쇼’ 관람을 권유한다. 입장료는 한화로 @28,000 인데 관람 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서 너 번 강조하며 자신 있게 권한다. 출국 전 옵션상품은 절대사양 할 것이라는 마음이 현지에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아직도 나는 내 주관대로 살고 있지 못하구나하고 실감하는 순간이다.


 

 송성쇼는 무대장치며 300여명의 무대인원이 정성들여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베어난다. 지금까지 보아온 쇼 중에서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의 쇼가 끝나자 무대는 삽시간에 무희들과 즉석 사진을 찍느라고 제법 소란하다. 얼마나 꾸준히 반복된 훈련을 했으면 저런 현란한 묘기들을 자랑할 수 있을까. 피나는 연습만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수 있는 묘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참으로 인간의 힘은 무한하다.


 

*안개 낀 서호(西湖)에 소동파의 시상(詩想)이 안개되어 내리네

 

  

 

서호에 겨울비 안개비 되어 내리고 /

소동파의 시심이 눈물 되어 내린다 /

  강호에 유람선 띄우고/

장강의 일산(一山) 이제(二堤) 삼도(三島)를 바라보니/

 안개 속에 서시(西施)가 울며 /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품에 안기는구나

                                              (선상에서 시상을 메모)

 


 

 안개 낀 서호는 아름다웠다. 15.5km의 둘레를 외로운 산 하나와 언덕 두개 그리고 섬 세 개를 품고 있다. 외로운 산(孤山)의 높이는  38m이다.(현지 안내인의 설명)


 

*전당강(錢搪江)의 역류와 육화탑(六和塔)의 내력

  

 

 

전당강대교

 

 항주는 절강성의 수도로서 아름다운 도시다. 절강성은 산이 많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도시다.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폴로가 항주에 들렀다가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도시라고 했다한다. 서호가 있고 전당강이 흐른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전당대교는 중국에서 제일 먼저 세워졌다고 한다.


 

 전당강은 일년에 한번 역류가 되는데 (음력 8.14) 그 파도의 높이가 평균 5m 때론 8m가 넘는 큰 파도가 밀려오기도 한단다. 이 역류를 막고자 오나라 황제가 제방을 쌓아 보기도 하지만 곧 허물어지고해서 육화탑을 세워 역류를 막고자했다. 육화탑의 외관은 13층이나 내부는 통제구역으로 입장이 불가해서 탑돌이로 만족했다.


 

*중국의 명차인 용정차 농원을 둘러보고


 

 10여분 버스로 터널을 지나니 용정차 농원이 나온다. 농원입구엔 <다경>을 지은 육유의 흉상이 제작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엔 육유의 <다경>에 버금가는 초의선사(속명:장의순)의 <동다경>이 있다.


 

 <동다경>엔 우리나라 산에서 나는 차를 정밀 분석하고 차에 대한 지식을 쓴 책이다. 초의선사에 의하면 차의 맛과 향을 높이려면 <다경>엔 찻잎을 곡우 전 5일간이 제일 좋은 때이고, 5일후가 그 다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국과 기후가 달라 곡우 전후는 너무 빠르고 경험칙 상 입하 전후가 적기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도 고장에 따라 조금씩 시차가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초의선사는 절후의 날짜보다는 찻잎의 생김새에서 적기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참고로 일창이기(一槍二旗)나 이기 때가 가장 좋다고 한다. 일창이란 찻잎이 뾰족한 창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일기란 돋아난 찻잎이 깃발같다고 하여 일기 이기라 한다. 결국 잎이 돋을 때 한 줄기에서 두 세잎 정도 날 때가 명순이라고 보면 된다.


 

*경주 남산의 부처님들이 잠깐 KAL기 타고 비래봉 영은사의 석불로 오셨나?

  

  

  

영은사 대웅보전- 천왕전과 마주보고 있는 절

  

중국인 젊은 연인이 영은사에서 향을 사르며 그들의 소원을 비는 모습

  

비래봉 돌 부처님 338상- 경주 남산엔 여기저기 석불이 흩어져 있으나 여기 비래봉에는 처마 바위 속에 양각으로 부처님을 새겨 놓고 비래봉 바위마다 석불을 새겨 놓음 그리고 부처님 모습이 제 각각 얼굴모습을 하고 있음

 

 영은사는 동진시대 혜리선사가  지은 절로 중국 선종 10대 사찰중의 하나이다. 1600여 년 전에 세워졌으니 소림사보다 170여년 앞선다. 천왕전, 대웅보전,약사전 그리고 500 나한당 등의 건축물이 배치되어 있다. 천왕전 벽면의 조각들이 재미있다. 500나한당을 둘러보다 미남 부처님 한분이 눈에 띈다. 중국 부처님들은 일반적으로 두리뭉실(실례의 표현?)하며 뚱뚱한 느낌이다. 그런데 나한당 뒤켠의 부처님 한 분은 생김새도 미남 형 일 뿐더러 친화력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신라의 왕자 출신 김교각(?) 지장보살님이시다.


 

 영은사 앞산이 비래봉인데 입구에서 부터 돌 부처님 조각상이 338개나 널려 있다. 바위를 처마 삼아 양각으로 정성들여 조각해 논 석불을 보니 우리나라 경주 남산의 부처님들이 눈에 선하고 화순 운주사 천불이 비교된다.


 

*항주에서 상해가는 길에서 본 중국 농부는 5명


 

 항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창가엔 또 겨울비가 내린다. 일년 365일 중 150일 정도의 우기가 햇빛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연 평균 강수량이 1,600 mm정도라니 우리처럼 한꺼번에 큰 비는 내리지 않는 모양이다.


 

 항주 시내를 막 벗어나자 상해로 가는 고속도로엔 주말이어서 그런지 통행량이 많다. 항주 외곽엔 공장이 몇 개 보이더니 곧 넓은 밭만이 보인다. 농가주택은 3층이 많다. 중국이 빈촌일거라는 내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시내에서 멀어질수록 농촌 모습이 전개된다. 비닐하우스도 보고 밭엔 야채도 파릇파릇하다. 항주에선 이모작이 가능하단다.


 

 우리나라 국토 남한의 98배나 되는 광활한 나라, 중국이 최근에 점점 경제력이 커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사통팔달로 뚫린 도로망이 물류혁명을 그리고 경제발전의 인프라 역할을 톡톡히 해 낼 것이다.  차가 밀려 3시간 반만에 상해에 닿는다. 오는 길에 농부는 통틀어 5명도 채 못 보았다. 농한기라서 그런지 밭에서 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옛 상해시가지의 임시정부청사

 

 일제의 만행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의 본산으로 우리는 상해임시정부를 든다. 당시 하와이와 상해를 중심으로 망명 정부와 독립운동이 진행되었던 곳이다. 옛 시가지 마당로에 허름한 3층 벽돌집이 그 당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청사이다.


 

 임시정부청사에 들르니 만감이 교차한다. 단군조선 이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거쳐 통일신라와 발해의 남북국시대 그리고 고려 이조시대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흥망 영고성쇠의 변화를 본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고대 중국과 일본의 잦은 침략을 받아 조국 강산은 피폐해지고 수많은 민중은 파괴, 수탈, 징발, 전쟁포로 그리고 성추행등으로 온갖 설움을 받은 슬픈 사연을 안고 살아간 조상들의 한 맺힌 삶이 그려진다. 어리석은 지배자들이 당파싸움등으로 순진무구한 민중들의 삶을 어둠의 질곡으로 밀어 넣었다. 고난의 역사가 현재와 미래를 담보하는가. 역사를 열심히 배우자.


 

 저녁식사후 상해 야경을 보러 외탄으로 갔다. 황포강을 사이에 두고 갖가지 스카인 라인을 그리며 동방명주탑과 건물들이 야경을 뽐내고 서 있다. 혹자는 상해야경이 홍콩야경보다 열배는 아름답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뉴욕의 야경과 홍콩의 야경이 가슴에 더 남는다. 아내는 라스베가스의 야경이 제일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강행군을 해서인지 몹시 피로하다. 황포강 유람선을 탈까하다 비가 내리는 선창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황포강을 바라보며 내일 귀국 비행기를 탄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허전하다. 다시 멀지 않은 날에 북경 쪽을 둘러보고 싶다. 양자강 줄기 따라 7박8일의 기차여행도 하고 싶다.   (2005.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