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의 봄노래, ‘石立聽水聲’ (변산 관음봉)
▲세봉에서 관음봉가는 길에서 본 석양의 관음봉 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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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3.13 (일) / 아내와 함께
*서울(07:30)-우동제(11:00 )-와룡소골-전망대바위-세봉-관음봉-내소사(16:10 )-서울(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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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이 너무 길어서인지 앉아서 봄을 맞이하려니 좀이 쑤시는 것 같다.아내와 남녘으로 봄맞이 가는 가벼운 흥분과 함께 벌써 마음은 관음봉 정상에 섰다. 봄을 시샘이라도 하는 양 우수 경칩이 지났는데도 시절이 요즘 제 철을 잊었는지 가끔 하늘은 눈을 쏟아댄다. 오늘도 세봉가는 길엔 백설이 흩날린다. 그러나 이내 곧 멈춘다. 백설이 아무리 좋다한들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 그러나 변산의 봄은 서해바람을 두둥실 타고 넘실대며 산 계곡으로 밀려와 얼음장을 녹이고 물소리를 내며 콧노래를 부른지 이미 오래된 듯 대지는 촉촉하다.
내변산 산악은 의상봉에서 시작하여 상여봉과 옥녀봉을 거쳐 관음봉과 신선봉으로 그 줄기를 내리며, 직소폭포와 봉래구곡을 품고 남으로 곰소만을 바라본다. 북쪽으론 새만금 간척지 방파제 물막이공사장이 그리 멀지 않다. 그리고 능가산을 머리에 이고 천년도 넘은 신라고찰 내소사와 백학명 선사가 주석했던 월명암이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산행코스로 일반적으로 많이 이용되는 코스는 남여치를 들머리로 해서 쌍선봉, 낙조대, 월명암, 봉래구곡, 직소폭포를 거쳐 관음봉을 오른 뒤 내소사로 하산하는 코스가 일반적인 추천코스중 하나다. 그러나 오늘은 우동제를 들머리로 해서 와룡소골, 전망대바위, 세봉을 거쳐 관음봉으로 해서 내소사로 내려온다.
산 능선에 서면 시원한 바닷바람이 산바람이 되어 여인네 속살을 슬며시 파고들 듯 살랑댄다. 그러나 계곡의 잔설은 이젠 쓸쓸할 뿐 그 체온은 이미 봄바람이다. 이미 봄기운은 산 전체에 완연하다. 회암골 가는 길엔 산죽길이 아마 1km는 족히 되나보다. 겨우내 여윈 나목도 새순을 내기 위해 물이 제법 올라 있다. 자연에서 윤회(輪廻)를 본다. 자연의 사시순환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다만 인간만이 생로병사의 터널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다. 계곡 길을 오르며 고요한 숲 속 계곡 길에서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듣는다. ‘돌돌돌’ 흘러가는 물소리를 듣다가, 불현듯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朴重彬) 대종사의 봉래구곡을 지나다 쓰신 선시(禪詩) 한 수를 기억해낸다.
변산구곡로(邊山九曲路)
석립청수성(石立聽水聲)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
(변산 굽이굽이 구곡로에서 /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듣는구나 /
없다고 하는 것은 또한 없고 없는 것이며 / 아니다고 하는 것도 또한 아니고 아닌 것이로다 .) |
선지식(善知識)의 깨침이란 바로 이런 경지인가. 있고 없다고 하는 형상도 초월하고, 옳고 그르다고 하는 것도 본래는 아닌 것인가? 오직 여여 자연한 둥근 성품자리가 유무초월의 생사문(生死門)인가. 여러 생각에 잠기다가 비탈길에 선 나무를 본다. 그리고 숲을 본다. 숲 속에 들어서면 비탈길에 선 나무들처럼 나를 쉽게 버릴 수 있는데, 세간의 일상생활에서는 왜 나를 버리지 못하는가. 그 잘난 집착과 욕심은 왜 그렇게 나와 이 세상 끝까지 동행하자고 그러는지 그저 얄밉기만 하다. 세봉에서 관음봉 가는 길의 조망은 아름답다.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그림을 만든다. 관음봉 능선자락 저 멀리 흘러가는 한 조각의 구름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설법(說法)이나 청해 볼까. 구름은 길손에게 고려 말 선승 나옹선사의 시 한 구절로 화답하고 정처 없이 어디론가 길을 떠난다.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慾而無惜兮
如水如風而終我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발걸음은 어느덧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 섰다. 연꽃, 국화, 모란꽃 무늬의 꽃살문이 아름답다. 그 앞에서 두 손 모아 합장하는 아내의 뒷모습에서 그녀가 염원하는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리곤 다시 관음봉 정상을 비켜서서 흘러가는 한 무리의 구름 떼를 바라보며 선사의 시 구절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려본다. (2005.03.13)
★ 사진으로 본 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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