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동박새의 천국, 선운사 동백 숲 (고창 선운산)

천지현황1 2005. 8. 2. 15:23

                 -동박새의 천국, 선운사 동백 숲 (고창 선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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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4.10 (일) / 황금오리 부부와 함께

*선운사 매표소;(08:45)-석상암-마이재-도솔봉(수리봉)-참당암-소리재-개이빨산(국사봉)-용문굴-낙조대-배멘바위-청룡산-쥐바위-도솔암-선운사-선운사 매표소(15:30)

 

*문화유적과 볼거리 :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 도솔암 마애불상(보물1200호), 동백 숲(천연기념물 제184호),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금동보살좌상(보물279호), 백파대율사 부도탑(문화재), 배멘바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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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과 혁명의 땅, 고창은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눈물과 회한으로 점철된 고을이다. 선운사 동백꽃이나 꽃무릇 그리고 서정주님의 시향으로 서정적으로 마음에 다가오는 고장이기도하다. 그러나 수려한 산세와 서정적인 속세의 모습 속엔 120여년 전의 성난 민중의 함성이 숨어 있기도 한 고을이다. 동학혁명의 발상지, 고창은 새 세상 건설의 꿈을 안고 발버둥쳤던 민초들의 함성이 봉두난발의 녹두장군, 전봉준의 지휘아래 메아리쳤던 역사의 고장이다.

 토요일 오후 빗속 남도 산행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하다가 시골 성묘도 할 겸해서 차를 몰고 익산 영모묘원에 들러 성묘하고 정읍에 도착했다. 정읍엔 절친한 친구 황금오리 부부(*황금오리란 부인이 예쁘게 잘 생기고, 돈 잘 벌고, 음식 잘하는 아내를 뜻하고, 이와 반대되는 아내를 탐관오리라 한다나)가 산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가까이 보이는 산마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연분홍 진달래꽃 무리가 봄을 노래한다. 버스 차창에 스쳐가는 붉은 황토의 땅빛은 민중들의 설음이 베어 붉은 빛으로 화했는가. 역사 속의 회상도 잠시 접으니 여행길은 초등학생 시절이나 중장년의 나이인 지금이나 언제나 한결같이 마음은 설레고 들뜨기만 한다.  

 일요일 아침 일찍 친구 부부와 선운산 일주 산행길에 나선다. 선운산은 경수산, 개이빨산, 천마봉등을 올망졸망 거느리며 그리 높지 않은 산봉우리들로 빙 둘러 어깨동무하며 선운사와 도솔암을  품고 있어 도솔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운사는 577년 (백제 위덕왕 24년)에 승려 검단(黔丹)선사가 창건하고 1354년(고려 공민왕 3년)에 중수하였다. 정유재란때 소실되어 다시 1613년(광해군 5년)에 중창하였다.  서울 근교 하남의 ‘검단산’(黔丹山)은 선운사를 창건한 바로 그 검단선사가 은거하며 지냈는데 선사가 은거했던 바로 그 산을 ‘검단산’(黔丹山)이라고 후세인은 부른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기도 하여 검단산을 자주 오르는 나로선 검단선사가 친숙하게 마음에 다가온다.

  특히 고찰 선운사는 동백 숲을 갖고 있어 봄철 상춘객을 부르고, 여름철엔 도솔 계곡 길에 ‘꽃무릇’군락지가 지친 나그네의 발길을 잡기도 한다. 또 가을철엔 내장산 단풍보다는 못하지만 선운사 단풍도 꽤 즐길만하다. 이 고장의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로는 풍천장어와 복분자술이 궁합이 맞는지 세인의 입맛을 돋운다.

 철따라 산행도 하고 관광도 하며 문화유적 답사지로는 이만한 곳도 드문 것 같다. 선운사 관광호텔 해수사우나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고창 석정온천이 있어 산행 후 피로를 풀기에도 그만이다.

 

 산행코스를 처음에는 경수산을 들머리로 해서 수리봉, 개이빨산, 낙조대, 천마봉을 거쳐 배멘바위, 청룡산으로 해서 삼인초등학교를 날머리로 긴 종주코스를 계획했다. 그러나 빗길 산행과 귀경 길도 감안하고 아내와 친구 부부와 함께 무리한 산행보다 실속 있고 여유로운 코스로 다시 수정한다. 수정한 코스로도 선운산의 종주산행 못지않게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문화유적을 다시 볼 수 있어 차라리 이 코스를 택하길 잘한 듯싶다.

 선운사 주차장에 도착하면 바위 암벽에서 자라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된 ‘송악’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를 맞으며 바위 암벽을 수놓은 멋들어진 그 모습이 푸른 그림으로 다가온다. 선운사에 올 때마다 느끼는 감회지만 도솔천을 끼고 숲 속 길을 걷는 운치 또한 멋스럽다. 오늘따라 우중에 황금오리 부부와 아내랑 도란도란 옛날 얘기하며 걷는 맛 또한 감상적이다.  

 이 고장 출신인 미당 서정주님의 <선운사 동구>라는 시비(詩碑)엔 선운사 동백꽃을 완상하러 왔다가 철 늦은 동백 숲만 보고 주막집 여인이 건네주는 막걸리 한잔과 그녀의 육자배기 한가락에 마음을 달래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실린 채 동구 밖 한 모퉁이에 비를 맞고 서 있다.(위 사진은 비가 그친 오후에 내려오는 길에 찍었음)

 

                   “선운사 골째기로 / 선운사 동백꽃을 / 보러 갔더니 /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원문 참조) 
 

 선운사 절집 바로 못 미쳐 오른쪽 석상암으로 오르는 마이재 길로 오늘 산행의 들머리로 삼는다. 이른 아침이라 우리 두 부부만의 빗속의 호젓한 산행이다. 마이재를 지나며 능선 산행길이라 트래킹 코스 같다.

 운무에 쌓인 산 능선길이 10여 m 앞 밖에 보이질 않는다. 수리봉을 지나 참당암으로 내려 가는 산길은 제 길을 못 찾고 선운사로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소리재 가는 이정표를 만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소리재로 가기 전에 참당암을 잠깐 들른다. 참당암 대웅전은 지금 보수 중이라 부처님도 옆 절 집으로 옮겨 모셨다. 이제야 비도 멈추고 운무도 점점 사라진다. 

 다시 소리재로 들어서니 ‘졸졸졸’ 계곡의 물소리가 1km쯤 우리와 산길을 동행한다. 고요와 적막강산이다. 지금까지 우리 일행이 선운산을 전세 내어 왔는데 개이빨산(국사봉)을 지나고야 반대편에서 오는 산객을 처음으로 만난다. 아직도 운무는 완전히 걷히지 않는다.

 

 용문굴에 잠시 들러 사진 몇 컷을 찍고 다시 발길을 낙조대로 뗀다. 낙조대에 서니 칠산 앞 바다의 모습들이 줄포만과 위도가 아련히 보일 뿐 시야가 흐리다. 낙조대의 일몰 광경은 또 하나의 아름다움일 듯 하다. 상상으로만 일몰 광경을 그린다. 그러나 서해 바다로 빠지는 일몰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언제 볼 수 있기를 소망해보며 발걸음을 천마봉을 비켜서고 배멘바위로 향한다.  

 선운산 줄기 중에서 하이라이트는 배멘바위가 아닌가 싶다. 철계단을 오르고 산길을 조금 지나 본 배멘바위 모습이 흘러가는 운무 속에 보일락 말락 그리는 바위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청룡산을 지나며 돌아 본 배멘바위 모습, 쥐바위에서 다시 본 모습의 배멘바위는 거북이 모습 같기도 하다. 비학산 못 미쳐 계곡길로 들어서니 또 호젓한 산길이다.  30여분을 내려와 만월대를 머리에 이고 앉아 있는 도솔암으로 다시 오른다. 도솔암을 끼고 100여m 가면 도솔암 바로 윗 쪽 산자락 칠송대 암벽엔 거대한 마애불상이 암각되어 있다.

 

 홍준 교수(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보면  이 불상은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불상인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적기에 의하면 고려 충숙왕 때 효정(孝正)선사에 의해 선운사가 크게 중창되었는데 바로 그 때 제작된 것으로 추론하고 있었다. 마애불상 머리위 암벽에 구멍이 여러 개 흔적이 있는데 이는 닫집의 흔적인데 기록에는 인조 26년(1648년)에 붕괴되었다고 한다. 다른 여러 불상과 달리 이 마애불상의 인상이 자애롭게 생기지는 않아 조각한 사람의 성품과 개성이 독특하지 않았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선운계곡을 내려오는 길목 진흥굴 앞에 늘름한 기상으로 서있는 ‘장사송’ 한 그루는 참으로 아름답게 자랐다. 선운계곡 길엔 야생화 단지와 녹차 밭이 있고, 특히 7~8월경에 피는 ‘꽃무릇’ (상사화) 군락지는 아직은 춘란처럼 푸른색의 줄기만 나와 있다. 여름철에 본 선운사 꽃무릇은 절집에서 본 것 중 제일 화려하고 아름답다. 상사화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이파리가 다 지고나면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운다. 그래서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하여 그리움만 키울 뿐이라 상사화라고도 불린다.  계곡과 산자락에 핀 꽃무릇 군락은 절간의 고요와 꽃의 사연과는 달리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준다. 작년 여름 도솔암 가는 길에 온통 붉은 색으로 치장하고 나그네를 맞이하던 그 꽃이 아직은 제철이 아닌지라 꼭꼭 숨어 여름에 다시 와서 만나자고 한다.

 선운사 경내에 들어오니 대웅전 뒤 산자락엔 동백 숲 (천연기념물 184호 지정) 군락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동박새가 봄을 노래하며 꽃봉오리를 터트린다. 선운사 입장권에 보니 동백 숲은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5천여 평에 자란다고 소개되어 있다. 선운사의 동백꽃은 남도의 동백꽃보다 거의 한 달여 늦게 핀다. 남도의 동백꽃이 질 때쯤 이곳 동백은 꽃망울을 터트린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동백 숲엔 동백꽃이 아직 만개하지는 않았다. 일주일 후쯤 만개할 듯 하다. 

 

 운사 경내를 둘러보고 길을 내려오면 입구에서 여러 고승들의 부도탑을 만난다. 어느 절마다 절 입구든 옆이든 그 절에서 돌아가신 고승대덕의 부도전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백파 대율사의 부도비가 발걸음을 잡는다. 백파대율사의 부도비는 1858년 (철종 9년)에 건립되었으며 완당 김정희 선생이 비문을 썼다.

 백파대율사는 조선 후기의 승려로 불교 중흥에 이바지한 고승이다. 여행지에서 고승의 부도를 만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행운이다. 아무런 예비지식이 없이 선운사를 온다면 백파선사의 부도탑은 그냥 지나칠 수 있다. 다행히도 선운사 절집의 최대 명물이 백파선사의 부도탑이며 이 비문을 완당 김정희가 썼다는 유홍준 교수의 글을 읽고 부터는 선운사에 들릴 때마다 이 비문을 살펴보는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다.

 

 참고로 유홍준 교수가 지은 <완당평전>에는 ‘백파선사와 완당 김정희의 왕복 서한 논쟁’이 재미있게 실려 있다. 백파가 선사상 이론서인 <선문수경>을 세상에 내 놓자 대흥사의 젊은 스님 초의선사가 반박논리를 편다. 이 와중에 초의와 절친한 벗인 완당 김정희가 이 논쟁에 끼어들어 그들은 서로 서한으로 갑론을박 논쟁을 벌인다. 당시 백파는 화엄종의 종장으로 나이는 77세, 완당은 58세였다. (아마 필자의 기억으론 초의도 완당과 동갑네기로 알고 있음). 아마 이 인연으로 백파선사의 비문을 완당이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차장에 내려와 선운사 관광호텔 해수사우나에서 피로를 풀고 차를 줄포만에 있는 심원으로 차를 몰아 바다가 보이는 음식점에서 풍천장어와 복분자술로 입가심을 하고 정읍에서 19:00시에 아내에게 핸들을 맡긴 채 귀경 길에 오른다. 복분자 술에 취해 꾸벅 꾸벅 졸다 깨보니  22:30분인데  서울톨게이트가 보인다. 오늘 선운산 산행은 빗속에 시작해서  운무를 타고 배멘바위를 지날 때 쯤 쨍하고 해뜬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추억을 안은 산행이었다. (200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