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엿보기

-까치의 사랑/갈매기의 이혼

천지현황1 2005. 8. 5. 13:25
 
 -까치의 사랑/갈매기의 이혼
 

                                          

벽이 어슴푸레하게 열린다.잠에서 깨어난 회색도시가 갑자기 시끌벅적하다. 여느 때처럼 서너 쌍의 까치가 창가에서 늦잠 자는 인간들을 조롱하는 모습이 아니다. 50여 마리가 쌍쌍을 이루며 아파트 숲 속을 날기도 하고, 한 쪽 무리는 맞은 편 아파트 옥상에서 즐거운 합창대회를 연다.  “깍~” “깍깍깍” (“사랑해요”, “나도 당신을 사랑해”) 까치 부부들의 사랑 놀음이 적막의 새벽을 울린다. 어느 쌍은 아파트 옆 녹지 저편에 있는 늪지까지 공중회전을 하며 사랑 비행을 한다. 서로 멀어 졌다가 다시 한 몸으로 합치는 광경을 연출한다.


 골에서나 보던 까치들이 요즘엔 도심까지 진출하여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릴 적 시골 집 감나무에서 울던 그 까치가 그립다. 시골 집 마당둘레에 20여년 된 고목 감나무가 서 있었다. 빨간 감이 익어도 장대로 감을 따기도 어려운 큰 감나무다. 나무 기둥을 붙들고 다람쥐처럼 기어올라 큰 가지에 기대서서 감을 땄다. 감을 다 따고는 까치밥이라 하여 몇 개를 남겨둔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 도심에서 사는 까치는 뭘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 피자 조각을 주워 먹는 건 지, 아니면 먼지만 마시고도 생존하는 지 궁금하다. 음식 쓰레기도 분리수거하고, 농촌처럼 벼 알곡이 떨어져 있지도 않은 황량하고 인색한 도시에서 용케도 살면서 인간들의 늦잠을 깨울 수 있단 말인가.


 리 선인들은 아침에 까치가 울면 좋은 소식이 있다는 등 까치를 길조(吉鳥)로 인식하고 보호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 까치는 시골 농사를 망치는 흉조의 표본이 되기도 하고, 전봇대에 까치집을 지어 잦은 정전사고를 유발하는 해조(害鳥)로 인식되기도 한다.

아마 세월이 까치의 변이를 가져 왔는지, 아니면 인간의 간사함이 의식의 흐름을 바꾸었는지 그저 씁쓸할 뿐이다. 까치들의 합창 경연대회를 한참을 구경하다 며칠 전 부부싸움 하던 까치를 떠 올렸다. 까치 두 쌍이 건너 편 아파트 옥상에서 서로 상반되는 모습을 연출한다. 한 쌍은  아파트 옥상 피뢰침에 나란히 앉아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며 스킨십을 해댄다. 다른 한 쌍은 1~2 미터 간격을 두고 서로 으르릉 대며 상대방 외도를 까발리는지 항아리 깨지는 소리를 내며 등을 서로 돌리고 목청을 돋운다.


 들도 인간과 다름이 없다. 사랑은 즐거움과 배반의 슬픔을 항상 동반하고 있다. 자연 동물 중에서 인간처럼 새들도 일반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한다. 갈매기부부도 이혼한다는 어느 생태학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갈매기들은 암 수가 번식기가 되면 제 짝을 찾아 둥지를 찾는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여 태어난 새끼들을 아빠 갈매기와 엄마 갈매기가 서로 교대하며 먹이감도 물어 오고 새끼들을 키운다. 다 키운 새끼들과 바다 여행이 시작되어 각 각 제 삶을 즐기다가 번식기가 다가오면 지난 번 만난 짝이 가사 내조를 잘 했다고 생각되면 다시 한 쌍을 이루지만, 상대 갈매기가 뺀질뺀질 놀기만 했다고 생각하면 다시 만나지 않고 영영 이혼을 한다는 얘기였다.  동물의 세계도 우리 인간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 나도 앞으로 뺀질뺀질 놀지만 말고 더욱 가사 내조에 힘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200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