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빗 속의 소백산 철쭉은 고개를 숙이고...(소백산)

천지현황1 2006. 5. 28. 18:09

-빗 속의 소백산 철쭉은 고개를 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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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5.27 (토) / 아내랑

* 풍기 삼가리 매표소(10:40)-비로사-비로봉 정상- 제1연하봉-천문대-희방사(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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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록에 대한 그리움은 사무치게 그립다. 연초록 나무 이파리 색깔은 청순한 소녀의 마음을 닮아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그 이파리 사이를 날며 작은 산새 암수가 사랑을 고백하는 숲 속 길을 걷고 싶었다.  실바람 속에 살랑거리는 그 이파리 사이로 간간이 쏟아지는 봄 햇살 또한 싱그러울 것이다. 난 그런 숲 속을 괴테처럼 사유하며 마냥 거닐고 싶다.


 그러나 모로 돌아누운 잔인한 세월은 이를 허락하질 않는다. 주말이면 아내와 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놓은 지도 20여일이 지났다. 작은 수술 후 한 달간 요양을 명받았기에 산행을 삼가는 중이다. 아파트 발코니에서 바라보이는 산 그림은 연초록에서 이젠 온통 진초록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내도 나와 보조를 맞추느라고 그동안 산행을 접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퇴근길에 금주 말에 소백산에나 다녀오자고 제의한다. 소백산 비로봉이 갑자기 보고 싶단다. K산악회에 자리 예약을 하고 나니 주말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뜬다. 비 오는 소백의 모습이 그리워 예약을 취소하지 않고 강행하기로 한다.

 

# 진초록 숲길을 들어서며

 

 하염없이 내리는 빗 속을 뚫고 산길을 오른다. 비로사 갈림길을 뒤로하고 비로사는 먼 발치로 곁 눈질한다. 초록세상에 들었다는 즐거움하나로 아직은 빗길이 싫지않다. 산길을 오르는 산님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산길을 오른다.

 

 30여분 올랐을까. 갑자기 어지럼증때문에 오르던 길가에 장승처럼 우뚝 길가에 멈춰섰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인지 현기증때문에 가던 길을 잠시 잠시 멈추고 안간힘을 쏟으며 신갈나무에 기대는 횟수가 많아졌다.

 

 우중산행을 즐기던 과거의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는 불안한 눈초리를 보낸다. 중도에서 산행을 포기할가도 생각해보지만 이미 산악회 버스는 날머리인 희방사 주차장으로 기수를 돌렸으리라.

 

 간간이 산길에 연분홍 철쭉꽃의 우아한 자태에 감탄사를 쏟다보니 현기증도 사라졌다. 고도를 높이자 철쭉꽃도 사라지고 키 작은 풀들이 강풍 속에 드러 눞다가 일어서곤한다. 안개와 운무 속에 몸을 맡기고 길을 재촉하니 어느덧 비로봉 정상이다.

 

 한 겨울 소백산의 칼바람을 맞아보았는가. 지금은 초여름인데도 소백산 정상엔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비로봉 정상에 5분도 머물러 있지 말라고 비바람을 동반한 강풍은 산객들을 밀어낸다. 

 

# 연하봉으로 내려서며

 

 운무 속에 속살을 들어내지 않는 연하봉을 향하여 긴 계단길을 내린다. 주목 군락지도 안개와 운무 속에 숨는다. 가끔 흘러가는 운무 속에 주목이 살짝 얼굴을 내밀다가 이내 곧 운무 속으로 숨바꼭질을 한다.

 

 시장기가 돈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나 비를 피할만한 곳도 없다. 능선에 불어제끼는 칼바람은 한 겨울의 소백산 칼바람이 어느정도 일까를 짐작케 해주기에 충분했다. 키 큰 철쭉 숲 길엔 연분홍 꽃망울이 맺어져 있을 뿐 만개하기엔 일주일도 더 소요될 듯 싶다.

 

 강풍과 계속되는 빗줄기는 아내의 입까지도 자물쇠를 채우고 만다. 어느덧 현기증도 사라져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와 가끔 뒤돌아보며 질퍽거리는 팟죽길을 안전하게 내려서라고 눈으로 안부를 확인하곤한다.

 

 사방을 조망할 수 없는 여건때문에 능선길이 얼마나 지루한지 처음으로 우중산행이 싫어졌다. 비바람을 그을 만한 곳이 없어 계속 시장기를 안고 산을 내린다. 제1연하봉을 지나 철쭉 숲길에 비를 맞으며 선채로 점심을 든다. 아내가 꼭두 새벽에 정성들여 준비해 온 찰밥을 빗물에 적셔가며 먹는데도 꿀맛이다. 

 

# 희방사 폭포소리에 안도의 숨을 쉬며

 

 천문대를 지나 산길을 내리는데도 비는 그칠줄을 모른다. 조금은 짜증스럽기까지하다. 몸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탓인지 우중산행이 즐겁지않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된 산행탓에 피로도 겹쳐오는듯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두개의 스틱으로 겨우 몸의 균형을 잡고 산길을 내리니 평소보다 두배의 힘이 드는 듯하다. 운무 속에 희방사 대웅전의 용마루가 보일 때쯤 계곡의 물 소리도 힘차게 들려왔다. 절집도 주마간산식으로 둘러보고 만다. 숲 길로 난 희방폭포 앞에 서니 이제야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의사 선생님의 권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건강만 자신하고 감행한 초록산행 맛이 이토록 힘 들 줄이야...상경 길 내내 차창에 부딪히는 세찬 빗 줄기와 비로봉-연화봉 능선의 연분홍 철쭉 꽃망울이 오버랩되는 잔잔한 잔영을 즐기며 눈을 감는다.  (2006.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