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바람따라

-오원 장승업 화파전 (간송미술관)과 한옥마을 나들이

천지현황1 2008. 5. 24. 18:48

-오원 장승업 화파전 (간송미술관)과 한옥마을 나들이

 -----------------------------------------------------------------------------------------------------------------------

* 2008.05.24 / 우리두리, 남산에서 딸아이 조인

* 간송미술관(09:50)-남산 한옥마을(14:05)

------------------------------------------------------------------------------------------------------------------------

            

 

 해마다 5월이면 기다려지는 전시회가 하나 있다. 1년에 딱 두번 봄 가을에 2주간의 일정으로 일반에게 공개되는 간송미술관의 연례행사다. 이번 전시되는 작품은 오원 장승업의 화파전이다. 모든 사물이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느낀다' 는 말은 일상적인 생활에서 늘 체험하는 일이지만 특히 음악감상이든 미술감상이든 예술 분야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물론 여행할 때도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느낀다. 조선 3대 천재화가중 한명으로 알려진 오원 장승업이 어떤 인물인지 모른 채 간송미술관에 들러 그림을 감상해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 하지만 오원은 '취하선'이라는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때문에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물임엔 틀림없다. 선시대 화가 중엔 삼원(三園) 삼재(三齋)로 불리운 화가들이 있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오원 장승업을 일컬어 삼원이라 칭했고, 현재 심사정,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을 일러 삼재라 일컬었다.

 

  이번 전시에는 장승업의 작품 40~50점과 그의 제자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ㆍ1853-1920),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ㆍ1861-1919), 백련(白蓮) 지운영(池雲英ㆍ1852-1935), 위사(渭士) 강필주(姜弼周ㆍ생몰연대 미상)의 총 100여점의 작품이 함께 소개되고 있다. 문외한의 눈엔 그리 격조 높게 보이지 않는 작품앞에서도 한 참을 꼼작하지 않고 그림 감상에 열중하는 관람객들 역시 오원 장승업의 취중에 그린 듯한 조금은 서툴은 듯한 필치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론 오원의 그림 중 화조도 보다는 산수화가 더 발 길을 붙들었다.

 

  화가들이 산을 많이 답사 했을텐데 내가 아는 심산유곡의 모습이 아니다. 작은 화폭에 그 큰 산을 압축해서 담다보니 압축미가 뛰어나다. 큰 산 아래 시냇가에서 한가롭게 자리한 마을이 있다. 이름하여 계산무진(溪山無盡 : 시내와 산이 끝이 없다)이라는 그림에는 위창 오세창의 제발이 함께 한다. 전시장을 다시 한바퀴 돌아 그 자리에 서니 그 그림이 낯설지 않고 충청도 어디메쯤의 전경처럼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줄지어 두시간 동안 그림 앞에 섰다가 도록 한 권을 사들고 전시관을 나왔다. 땀으로 밴 더위를 뜨락에서 조각을 감상하며 씻고 곧 발길을 돌려 지하철역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탑승해서 남산 한옥마을로 향한다. 

 

오원 장승업은 누구인가?

 조선 후기에 태어난 장승업(1843~1897)은 본관은 대원(大元). 자는 경유(景猷), 호는 오원(吾園)·취명거사(醉瞑居士)·문수산인(文峀山人). 이나 우리에겐 오원으로 익숙한 화가다.윗대땐 무반(武班)이었으나 어려서 머슴살이를 했다고 한다. 서울에 정착한 후 수표교에 살던 이응헌(李應憲) 또는 역관 출신의 변원규(卞元奎)로 알려진 사람의 집에 기식하게 되면서 어깨너머로 글공부와 원(元)·명(明) 이래의 명적들을 접하고 스스로 익혀 어느날 문득 화리(畵理)를 터득하고 그림을 능숙하게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화명은 날로 높아져 왕실에서는 그를 대령화원(待令畵員)으로 불러들여 그림병풍을 제작하게 했으며, 이때 감찰이라는 정6품 관직을 임시로 제수받기도 했다. 그러나 술과 여자를 몹시 좋아했고, 특히 어떤것에도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궁궐에서 3번씩이나 도망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40대 무렵부터는 오경연(吳慶然) 등의 역관 중인계층과 김영(金瑛) 등의 여항문인(閭巷文人)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창작활동을 했으며, 녹청색 창의(彰衣) 차림의 특이한 모습으로 그림 판 돈을 술집에 맡겨놓고 매일 들러 마시면서 취한 상태로 지냈다고 한다. 이러한 기질은 강렬한 필법과 묵법, 그리고 과장된 형태와 특이한 설채법(設彩法)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출처 :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

간송미술관은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은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으로 고 전형필 선생이 1938년에 설립하였다. 대한민국 제일의 고서화 소장처로 《훈민정음》(70호), 《동국정운》 권1,6(71호), 금동계미명삼존불(72호), 금동삼존불감(73호), 청자압형수적(74호), 청자기린유개향로(65호), 청자상감포류수금문정병(66호),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149호)등의 국보급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97-1
  • 관람시간 : 10:00 ~ 18:00 연2회(5월,10월)의 정기전시회 이외 휴관
  • 문의전화 : 02-762-0442
  • 찾아 가는 길: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 성북초교 방향으로 도보 15~20분 거리 혹은  Bus 1111. 2112번 성북초 교정류장 하차

                  

 미술관 뜰에 서 있는 간송 전영필 선생 흉상

 

 

 

 

 

 남산골 한옥마을 포토기행

(찾아 가는 길 : 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 하차/3,4번 출구 도보로 5분 거리)

 

 

 

 

 

한옥마을 청학지

 

 

 

 

 

 

 

 

 

 

 

 

 

 전통찻집 간판을 단 이 집은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였던 이승업의 가옥으로써 1860년대에 지은 집으로 중구 삼각동 32-6번지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한 것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36평 규모이다.그러나 지금은 전통차집으로 임대 사용되어 그 보존이 허술하다.필자도 이곳에서 가옥 구조를 사진 찍으며 대청마루에서 동동주와 옛날국수로 점심을 들었다.

 아자창 (亞字窓)

 

부억 천장선 외부에 선반을 메고 이렇게  까치발을 달았다

 

난간 완(卍)자 난간

 

 박쥐 모양의 하방 통풍공

 

 처마서까래 부연

 

 불밝이 창

 

 

 

 

 

 

 

 

 

 때마침 외국인과 한국인 신부가 전통 혼례를 올리고 있어 한 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