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신령스런 빛의 땅 (영광 불갑산)

천지현황1 2009. 9. 7. 10:15

-신령스런 빛의 땅 (영광 불갑산)

 

* 2009*.09.06 / 불갑사주차장(09:50)-덫고개-노적봉-장군봉-불갑산 연실봉-구수재-용천사(13:10)

 

 

 오랫만에 산문에 든다. 한 달여 전 건강 검진에서 몸 속 작은 폴립 하나를 떼내고 의사 선생님의 충고따라 격한 운동을 삼갔다. 세월은 어찌할 수 없나보다.관절도 서서이 노화되고 얼굴은 더욱 나잇살을 찌운다.'오직 세월에 순응하고 슬퍼하지 말지어다'.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나이 듦'의 내 생활법칙이기도 하다.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점점 엷어진다.그저 활기차게 현실을 즐기다 보면 그것이 바로 생의 젊음 아니겠는가.

 

 남녁으로 달리는 차창가를 스치는 벌판따라  둥근해가 동행한다.엊그제 모내기를 하던 들판에는 벌써 벼가 자라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며 인간에게 겸손과 성숙을 가르친다.고마운 사시변환의 자연법칙이다.꼭두새벽에 깬 잠이 스멀스멀 밀려올 시간이련만 차창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않다.자연의 오묘함 속에 나를 침잠시키기 때문일 것이다.이윽고 눈을 돌려 그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그림 읽어 주는 남자,'레스카페의 주인장'인 선동기님이 아마추어로서 미술사 화가들의 그림 감상담을 그림과 함께 해설해 놓은 책이다.상상의 나래와 오감을 통하여 느낀 그대로의 감상담이 순박하다.

 

 나는 산행시마다 배낭에 책 한권을 넣어  두고 장거리 이동시간에 지루함을 달래는 습관이 베어 있다.책 속에 빠저들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가 가깝고 오늘처럼 편도 4시간의 버스타기도 지루함이 없어 좋다.그러나 흔들리는 차 속에서 깨알같은 글씨를 읽는다는 것이 가끔은 눈을 피로케 한다.그래서 앞으론 시집이나 그림책 위주로 바꿀 생각이다.

 

 아파트를 출발한 버스가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 민자고속도로,공주-서천 도로를 넘나들며 다시 서해안고속도로를 통하여 목적지 불갑사주차장에 산객을 내려놓는다.불갑사는꽃무릇(상사화)군락지로 유명하다.붉은 꽃이 이파리를 하나도 달지않고 꽃대에 올라타 우아한 맵씨를 자랑한다.절집을 빙 둘러보고 덫고개를 오른다.초가을 날씨가 바람 한 점 불지않고 비지땀을 흐르게 한다.오랫만의 입산이라 발길이 무거우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가벼운 발걸음과 오감을 열어 놓고 불갑산의 맑은 정기를 호흡한다.바로 이 맛 때문에 산을 찾는데 그동안 얼마나 답답한 생활이었는지 실감한다.산꾼이 산을 못 가는 신세는 술꾼이 술을 참는 것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는 것 같다.감사한 마음으로 산 길을 오르며 많은 생각이 중첩되어 간다.발목 인대 부상으로 동행하지 못한 아내도 빠른 시일내에 완쾌되어 함께 즐기기를 소망해본다.

 

 전라도 영광 땅은 고을 이름이 풍기듯 '신령스런 빛'의 땅이다.우리나라 신흥종교인 원불교의 발상지이기도하다.소태산 박중빈님이 지금부터 100여년 전에 영광 백수면 길룡지에서 태어나 대각(大覺) 후 원불교를 창시한 곳이기도 하다. 정관평 둑을 쌓아 우리나라 최초의 방언공사를 통하여 자립의 터전을 마련하는 등 '불법시 생활(佛法是生活)'을 실천한 곳이다.

 

 불갑산의 주봉은 연실봉이다. 원래는 아늑한 산의 형상이 어머니와 같아서 '산들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모악산이라고 불렀는데, 백제시대에 불교의 '불()'자와 육십갑자의 으뜸인 '갑()'자를 딴 불갑사가 지어지면서 산이름도 불갑산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용천사 뒤 봉우리를 모악산으로 이름하기도 한다.숲이 울창하고 산세가 아늑하며, 참식나무와 꽃무릇 등 희귀식물들이 자생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꽃무릇군락지로 유명하고 인파가 북적이지 않아서 조용한 산행을 하기에 좋다.  

 

 

 

 

 

 

 

 

 불갑사의 창건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며, 중국의 승려 마라난타가 서해를 건너서 맨 처음 도착한 법성포와 가까운 이 산에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불교와의 깊은 인연 때문인지, 산은 그리 크지 않아도 불갑사를 중심으로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830), 팔상전, 칠성각, 일광당, 명부전, 만세루, 범종루, 향로전, 천왕문(전남유형문화재 159) 등 수십 점의 문화재가 있고, 또한 절 뒤에는 각진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700년 정도 된 참식나무(천연기념물 112)가 있다. 산행은 불갑사에서 시작하여 저수지·동백골·해불암을 거쳐 정상에 이른 다음 노루목·법성봉·전일암을 거쳐 참식나무 군락을 따라 불갑사로 원점회귀 코스가 있는데, 산행시간은 3시간 30분 걸린다. 우리는 불갑사에서 덫고개를 거쳐 여러 봉우리를 거쳐 정상에 이른 다음 귀목재를 거쳐 용천사로 하산한다. 

 

 

 

 

 

 

 

 불갑사 전경

 

 

 

 

 

 

 

 

 용천사

 

 

 

 

 

 

 하산 후 영광 007식당에서 굴비정식을 즐긴 뒤 고창 학원농장 메밀꽃들판을 거쳐 귀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