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단상(斷想)

-부처님이 춤 추는 산이라고? (포천 불무산)

천지현황1 2010. 2. 21. 19:27

-부처님이 춤 추는 산이라고? (포천 불무산)

 

* 2010.02.21 / 야미리 삼거리(09:15)-불무산--648봉-횟가마골-축사-삼거리(13:20)

 

 

 

 늦은 출발(08:00)때문인지 일요일 아침이 느긋하다. 북으로 달리는 버스 차창가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유랑의 꿈을 꾸며 상념에 잠긴다.요며칠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낭만과 감성의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를 재미있게 읽었다.그가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에 동갑내기 아내와 일본을 훌쩍 떠나 3년동안 로마와 그리스에 거주하며 그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를 집필한다. 일본에서 일백 몇십만부가 팔려 일약 베스트 작가로 발돋음했다. <먼 북소리>는 3년 로마 거주동안 틈틈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그리스,북유럽 등을 여행하며 지낸 여행 에세이다. 그의 철 지난 글에서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 삶을 영위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이고, 여행하듯 유랑하듯 사는 방법도 앞으로의 내 삶의 방식에 힌트를 준다. 내가 생각해 왔던 유랑의 삶을 그는 이미 20여년 전에 실천한 셈이다. 나는 유랑의 삶을 아내가 퇴직할 때까지 미루어 온 터라 5년 후에나 실현될 소망사항이다. 그래서 지금의 현 내 생활에서 조금만 미리 비틀어보자고 결심한다.  

 

 차는 진접을 지나 포천가도를 달린다. 포천을 에워싼 산들엔 잔설이 남아있다.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야미리와 대회산리 경계에 있는 불무산이 시야에 다가온다. 한북정맥상의 광덕산에서 남서쪽으로 분기한 지맥이 각흘산과 명성산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사향산에서 방향을 서쪽으로 틀어 관음산을 넘어 도내지고개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친 산이다. 주능선 곳곳에는 암릉과 기암들이 있다. 정상에 서면 명성산, 사향산, 관음산, 보장산, 종자산, 지장산 등이 시원스럽게 바라보인다. 북서쪽 아래에는 한탄강이 흐르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영평천이 감싸고 있다.주능선 좌우에는 횟가마골과 큰골 등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계곡이 있으나 오늘따라 옅은 운무에 쌓여 가물가물하다.

 

 불무산 등산기점은 야미리 광산입구 버스정류소에서 야미교를 건너 횟가마골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대회산리에서는 상촌마을을 거쳐 오르는 길이 있다. 주변에 미군부대가 있어 1992년에야 개방된 산이기도 하다. 들머리 야미리는 큰 논배미라는 뜻인데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옛날엔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밤이면 이곳에 도둑이 창궐했단다. 그래서 밤이면 도둑들이 꽤 재미를 본다고 하여 야미리(夜味里)라 명명했다는 얘기가 전해오는 곳이기도하다. 

 

 지금은 나무 숲이 홑바지를 입고 추위에 떨고 있는 형상이다. 하지만 봄 여름철엔 울창한 숲 길일 것이다. 횟가마골,큰골,개죽은골 등 계곡 이름들이 재미있다. 잡초만 우거진 묵정밭이 산 아래에는 많다. 산 능선길엔 벙커들이 많고 지뢰 위험 푯말이 길손을 긴장케한다. 근교산이지만 찾는이가 적어 포천군에서는 등로도 제대로 정비해 놓지않아 길이 험하다.조용하던 마을에 낯선 객이 떼를 지어 올라가니 마을에 있는 개 모두가 '컹컹'짖어대 사방이 시끄럽다. 하늘에는 까마귀떼까지 우리를 침입자로 치부한다.

 

 마을 초입을 지나 능선으로 달라붙자 잔설이 발목까지 빠진다.선등자의 발자국도 없는 것으로 보아 한적한 산임에 틀림없다.5부능선을 넘자 차마고도보다 더 위험한 비탈길의 연속이다.지그재그로 길 아닌 길을 오른다.눈과 얼음과 미끄러운 낙엽과의 접촉이다.전국의 여러 산을 다녀 보았지만 불무산만큼 등로가 정비되지 않은 산은 없는 것 같다.일행 중 여러명이 미끄러지고 엎어지고 힘든 산행이다.겨우 정상에 다달았을 땐 옅은 운무가  멀리 명성산을 가린다.정상엔 벙커가 외게인이 타고 온 물체처럼 떡 버티고 앉아 있다.정상행사를 마치고 서둘러 남서능선을 탄다.능선길은 고약하다.미끄럽고 길 같지도 않은 오르내림 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또 미끄러지며 엎어지며 내림길 역시 오름길과 마찬가지로 사납다.

 

 산을 다니며 사색하며 걷는 즐거움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미끄러지지 않고 엎어지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조금은 짜증스럽기까지도 하다. 불무산(佛舞山)에서 춤추는 부처를 찾으려한 내 처음 의도는 물 건너 간지 오래다. 그러다 횟가마골로 내리면서 나는 춤추는 부처님을 보았다.앞서가던 산님 한 분이 된통 미끄러지며 또 엎어졌다. 그 모습이 꼭 조지훈 시인이 쓴 '승무'의 한 모습으로 비춰졌다.산의 모습에서 춤추는 부처님을 찾으려 했던 나는 '춤추는 중생'을 보았다. 중생도 한 마음 잘 먹으면 부처이지 않은가. 

 

 

 

 

 

 

                                                                                                                                                    (ㅈㅎㅅ님 촬영 펌)